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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리 모두가 자살 생존자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이 기억에 생생한데 충북 증평에서 모녀가 사망 후 두 달이 지나 발견됐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족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남편이 숨진 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혼자 살기 어려워 딸을 데려간다”는 유서를 남긴 여성은 지난해 9월 남편을 자살로 잃은 자살 유가족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증평 사건을 ‘동반 자살’로 서술하는 건 잘못이며, ‘살해 후 자살’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번 사건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고위험군인 자살 생존자 가족에게 일어났다. 자살 생존자라는 단어는 자살 시도 후 생존한 사람이라고 잘못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정확히는 자살 유가족을 포함해 자살로 인해 주변의 중요한 사람을 잃고 심리·사회적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사람을 뜻하고, 넓게는 타인의 자살에 노출된 경험을 가진 이를 의미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자살률을 가진 우리 사회는 자살에 노출되는 자살 생존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일 테다. 지난해 서울대 의대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자살 사망자 1명당 5~10명의 가족을 가정할 때 매년 8만 명 이상의 자살 유가족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 연구실의 자살 생존자 조사에서도 일반 성인의 약 30%가 평생 한 번 이상 가족·친척·친구·동료 등의 자살에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생존자는 사별의 슬픔과 상실감은 물론 죄책감과 분노, 사회적 낙인, 관계 단절 등 복합적인 어려움을 경험한다. 그들의 자살 생각은 일반인보다 3.7(친구·동료)~4.5배(가족) 높았다. 친밀도가 높거나 자주 만난 관계에서의 정신적 고통은 더 심각했다.
 
이번 증평 모녀 사건에서 우리 사회의 1차 안전망(사회보험), 2차 안전망(저소득층을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 3차 안전망(긴급구호 제도)은 모녀가 자살로 떠밀리는 것을 지켜주지 못했다. 현행 복지제도가 놓치는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4차 안전망이 새로운 차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필요한 사람을 먼저 찾아가는 정밀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살 예방을 위한 정신건강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자살 예방을 국정과제에 포함하여 자살예방국가행동계획을 수립하고 전담부서를 신설하는 등 새로운 차원의 노력을 시작하였으나 갈 길은 멀다. 자살 생존자를 위한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 관심이 필요하다.
 
시론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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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공적 자살대책으로서 자살 생존자 지지 시스템이 필요하다. 서울시와 중앙심리부검센터, 한국생명의전화를 비롯해 각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자살예방센터에 14개의 자살 유가족 자조 모임이 진행되고 있으나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전국적 확대가 시급히 필요하다. 또 관계별 특성과 생존자의 상황을 고려한 다양한 형태의 자조 모임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생존자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통해 관계별·지역별로 특성화된 모임을 구성하며 자살 생존자의 필요에 따라 개별적으로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를 이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 특별히 자살 유가족이 직면한 심리적·경제적·법적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종합지원제도가 필요하다. 일차적으로는 유가족을 긴급 지원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생존자 스스로가 다른 생존자를 돕는 것은 물론 자살 예방 정책 수립에 참여함으로써 자살 예방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편견을 감소시켜야 한다. 자살 생존자가 심리적 어려움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자살 예방 공익 캠페인이나 게이트키퍼 양성 교육 등이 방법일 것이다. 미국 자살예방재단은 ‘세계 자살 생존자의 날’을 통해 1년에 한 번씩 모여 회복 경험을 나누고 자살생존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넷째, 미디어는 간접적인 자살 노출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도 있으나 대부분 언론계의 자발적인 참여로 ‘자살 보도 권고 기준 2.0’이 성공적으로 준수되고 있다. 문제는 드라마 등 예술의 영역이다. 최근 종영된 인기 TV 드라마 2편이 자살로 마무리되었다. 자살이 마치 하나의 문제 해결 방법인 듯한 장면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예술적 상상력을 사용해 다른 방식으로 제작하기를 강력히 요청한다.
 
토인비가 말했듯 죽음은 죽은 사람보다도 남겨진 사람에게 더 날카로운 아픔을 남긴다.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자살로 떠나보내는 우리 시대, 우리는 절망에 전염되지 않도록 견디며 현실의 고통을 함께 극복하고 있다. 서로의 아픔에 대해 무심치 말자.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 모두는 자살 생존자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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