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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않기 전략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한국경제연구원장)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한국경제연구원장)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조기 타결의 소식을 접했다. 협상이란 주고받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안전·규제기준을 완화해 미국산 자동차 수입 확대가 전망되지만, 민감 분야인 농축산물 시장 추가개방, 미국산 자동차부품 의무사용 등은 우리 입장을 관철했다.
 
이처럼 긍정적 측면도, 부정적인 면도 있는 듯하지만, 필자는 ‘조기 타결’을 끌어냈다는 포인트에 좀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미국 우선주의’를 들고나온 트럼프가 취임하기 직전 미국을 잘 아는 지인들 사이에선 ‘앞으로 양국 간에 폐기까지 염두에 둔한·미 FTA 재협상,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 등 골치 아픈 논란거리가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는 한숨 섞인 우려가 나왔었다. 결과적으로 방위비 분담 문제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는 상황이고, 한·미 FTA 재협상은 조기 타결로 매듭지었다.
 
경제효과나 협상 자체를 떠나 이번 타결에는 국제정치·외교 차원의 득도 있었다. 격랑의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이번 조기 타결의 의미가 크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세계 질서에 다가올지 모르는 태풍의 눈이다. 이번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북한은 수차례에 걸친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를 긴장 국면으로 끌고 갔다. 하지만 평창올림픽, 문화교류 등을 거치며 이제 남·북, 미·북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있다.
 
미국과의 공조가 너무나도 중요한 역사적 시점이다. 그렇기에 FTA 재협상을 매듭지음으로써 한미 양국이 북핵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은 다행이다.
 
또 다른 연결고리는 미·중 간에 벌어지고 있는 무역 전쟁 상황이다. 총성 없는 전쟁이지만 돈이 걸린 싸움이기도 하고 서로 기선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치열한 느낌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은 곤란하기에 미국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조기에한·미간 논란의 불씨를 잠재운 것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구한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비참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반도를 무대로 1894년 6월,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1904년 2월엔 조선과 만주에 대한 지배권 다툼으로 일본이 중국의 뤼순 항에 주둔해 있는 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대한제국은 이 두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반세기가 지난 1950년 6월 25일. 공산주의 확대를 추구하는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3년간에 걸친 처참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냉전의 서막이었다. 필자 나이 일곱 살이 되던 1955년, 부모님과 두 살배기 여동생까지 네 식구가 처음 서울로 상경했다. 그때 필자가 본 것은 폐허가 된 서울의 길거리였고, 수많은 고아와 걸인들이었다. 학교에 가서도 영양실조에 걸린 친구들이 부지기수였고, 우리나라는 국가 세입의 절반을 미국이 보내온 밀·보리·쌀을 판 돈으로 충당했다.
 
어두운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생존전략은 힘없는 약소국이었기에 칼날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처럼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그래도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인 데다가 세계 무대에서 예전보다는 발언권이 강해진 것 같다.
 
바다 생물에 조예가 깊은 한 친구에게 물었더니 크기로 따지면 바다 생물 중 남방코끼리물범 정도가 대략 11위 정도(?) 아닐까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참고로 1위는 몸무게 150톤에 달하는 흰긴수염고래(대왕고래)라고 한다. 고래들 싸우는데 등 터지던 새우였던 우리나라도 이젠 이 물범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지만 강대국들의 각축을 벌이고 있는 역사의 한복판에선 여전히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택을 해야 할 듯하다. 마키아벨리가 말하길 지도자(군주)는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간악한 지혜를 갖춰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 상황에 더 필요한 건 여우의 지혜일 듯하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한국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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