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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와 나치·독일의 공통점은

[윤석만의 인간혁명]민주주의의 완성은 성숙한 시민
정의의 전사 제디아였다 악의 화신이 된 다스베이더. [영화 스타워즈]

정의의 전사 제디아였다 악의 화신이 된 다스베이더. [영화 스타워즈]

“I'm your father.”
 영화 ‘스타워즈’의 최고 명대사를 꼽으라면 다스베이더의 이 말 아닐까요? 절대악인 다스베이더와 맞서 싸우던 주인공 루크의 팔이 잘렸을 때 나온 말입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다스베이더라고 생각하며 복수와 정의의 칼을 갈아왔죠. 다스베이더가 루크에게 던지는 충격적 한 마디. “내가 너의 아버지다.” 도저히 믿기 힘든 이 말에 루크는 혼란에 빠집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절규하지만 루크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싸웁니다.  
 
 SF의 명작 ‘스타워즈’는 선과 악, 그리고 속죄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괴물과 맞설 때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말처럼 선과 악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때가 많습니다. 다스베이더 역시 한때는 정의의 기사 ‘제다이’였습니다. 어느새 조금씩 악에 물들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었죠.  
 
  그의 아들 루크는 다릅니다. 루크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반성과 성찰을 거듭하며 다스베이더에 대항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다시 ‘선한 포스’의 힘으로 제다이가 돼 돌아오길 기다립니다. 한편으론 아버지 죗값을 치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죠. 루크가 진정한 영웅인 것은 이점 때문입니다. 
왼쪽부터 정의의 전사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 레아 오르가나 공주(캐리 피셔), 한 솔로(해리슨 포드). [영화 스타워즈]

왼쪽부터 정의의 전사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 레아 오르가나 공주(캐리 피셔), 한 솔로(해리슨 포드). [영화 스타워즈]

 영화는 ‘악행(惡行)’을 극복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부자(父子)의 기막힌 운명을 통해 진정한 용서는 가해자의 속죄뿐 아니라 후대의 ‘대속(代贖)’에 이르러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죠.  
 
  인류 역사에선 가해자로 기록됐지만, 그 기억조차 잊고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일본의 지도자들이죠. 우리에겐 35년간 일제의 식민수탈이나 강제적인 위안부 동원 등 풀지 못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일본은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는 독도에 대해서도 역사까지 왜곡해 가며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충분히 사과했다고 이야기 하죠. 사죄엔 피해자의 용서가 전제돼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일본과는 반대로 수십 년이 지나도록 선조들의 잘못을 끊임없이 반성하며 진정한 사과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나라도 있습니다. 독일입니다. 세계인들은 한 장의 흑백사진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1970년 폴란드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벌어진 일이죠. 서독의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는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며 진심 어린 사죄를 했습니다. 세계대전 때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의 악행을 ‘대속’한 것이었죠.  
1970년 12월 7일 게토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과거를 사과하며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

1970년 12월 7일 게토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과거를 사과하며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

  독일 지도자들의 사죄와 반성은 계속됐습니다. 2013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유대인 수용소를 찾아 희생자들 앞에 사죄했습니다. 그는 “나치의 만행은 아무리 사과해도 지나치지 않고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고 말했습니다.
 
독일의 진심 어린 사죄와 반성은 이웃 나라들로부터 진심 어린 용서를 끌어냈죠. 히틀러가 죽고 70여년이 지난 지금 독일은 유럽을 대표하는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모두에서 독일은 명실상부한 유럽의 리더입니다.  
 
 독일은 현재 28개 유럽연합(EU) 국가 중 가장 많은 분담금(2015년 기준 156억 유로)을 냅니다.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은 EU 전체의 21%를 차지합니다. 영국의 ‘브렉시트’가 완료되는 시점엔 25%까지 올라갈 전망이고요. 실업률은 4.6%(2017년)에 불과해 10%대에 육박하는 EU 전체와 비교하면 ‘완전 고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EU 전체 및 독일과 비교한 비세그라드 국가 현황

EU 전체 및 독일과 비교한 비세그라드 국가 현황

 하지만 독일의 진짜 실력은 ‘소프트파워’입니다. 코트라(KOTRA) 조사에 따르면 기능이 비슷한 제품이라도 한국산이 100달러면 독일산은 149달러입니다. 일본산(139달러), 미국산(135달러)보다 훨씬 높죠. 김종영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신뢰와 성실 등 독일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독일 제품에 ‘국가 프리미엄’이 붙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같은 소프트파워의 밑바탕엔 독일 국민에 대한 호감과 믿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5년 중앙일보·경희대는 성인 3068명을 대상으로 가장 매력적인 국민과 그 이유를 물었는데 독일인(23.6%)이 압도적 1위였습니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관용 정신이 그 이유였습니다. 실제로 2015년 난민 사태 때 넓은 포용력을 보인 독일은 편협성을 보인 다른 유럽 국가의 반면교사가 됐습니다.
 
  독일이 종전 반세기 만에 유럽의 리더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황준성 숭실대 총장은 독일 지도자들의 계속된 ‘전쟁 사죄’에서 보듯 성숙한 시민의식이 답이라고 말합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황 총장은 “자신과 다른 의견도 존중하고 수용하는 포용과 개방의 정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제 역할을 다하는 책임감이 오늘날 독일을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품격과 교양을 갖춘 시민들이 독일을 매력적인 나라로 키웠다는 이야기죠.   
2차 세계대전의 주범인 히틀러. [중앙포토]

2차 세계대전의 주범인 히틀러. [중앙포토]

  독일의 시민의식이 처음부터 높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독일도 한국처럼 민주주의를 ‘수입’한 나라였기 때문에 원래부터 성숙한 시민이 존재하진 않았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스스로 ‘시민’이란 개념을 발명하고 혁명과 투쟁을 통해 이를 학습한 영국·프랑스 등과는 여건이 달랐던 것이죠.
 
 한 세기 전 독일은 한국처럼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흉내는 냈지만 그 내용까지 완벽하진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나치의 집권입니다. 나치는 민주주의 꽃인 선거를 통해 제1당이 됐고, 당수인 히틀러는 국민투표에서 88.1%의 압도적 지지로 총리와 대통령을 겸하는 ‘총통’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히틀러는 인류 역사에서 씻기 힘든 비극을 저질렀습니다.
 
 전후 독일 지식인들의 가장 큰 고민도 이 부분이었습니다. “나치의 역사적 만행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란 질문이 1950년대 독일 사회의 가장 큰 화두였죠. 독일인들은 그 답을 ‘깨어 있는 시민’에서 찾았습니다. 시민의식이 살아있었다면 선거와 투표에서 나치와 히틀러의 집권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죠.   
 정진영(국제정치학) 경희대 부총장은 “전후 독일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갖추는 것 못지않게 그 제도를 운용하는 시민의 역량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히틀러의 집권과 독주에 대한 책임을 다른 데 떠넘기지 않고 자신들의 책임으로 인정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반성에서 독일은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초중고교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시민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1970년대 독일의 보수·진보를 대표하는 정치인·지식인이 모여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는 시민교육 3원칙’을 합의했죠. 회의가 열린 도시의 이름을 따 ‘보이텔스바흐(Beutelsbach) 협약’이라고 부릅니다.  
 
 3가지 원칙은 ▶강압적인 교화(敎化)와 주입식 교육을 금지해 학생의 자율적 판단을 중시하며 ▶논쟁적 주제는 수업 중에 다양한 입장과 논쟁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하고 ▶학생의 상황과 이해관계를 고려해 스스로 시민적 역량을 기르도록 돕는다는 것입니다.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했던 독일 출신 다니엘 린데만이 독일의 시민교육을 소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했던 독일 출신 다니엘 린데만이 독일의 시민교육을 소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시민교육의 핵심 목표는 ‘선입견이 없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Unvoreingenommen’이란 단어로 압축됩니다.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교 졸업 때까지 시민교육을 의무로 하고 있습니다. 
 
 공식 교과목명은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이지만 내용은 영미권의 시민교육(Civic Education)과 같습니다. 과목명에 ‘정치’가 들어가는 이유는 ‘시민이야말로 정치의 주체’라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김종영 교수는 “민주주의 핵심은 엘리트의 통치가 아니라 능동적 시민들의 ‘협치’다, 독일 시민교육의 핵심은 협치할 수 있는 시민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시민교육은 계속됩니다. 정치·사회·환경·노동 등 실생활과 밀접한 이슈의 강의가 개설된 시민대학과 정치교육원이 전국에 1000여 개에 달합니다. 이런 교육기관들은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지역 현안을 다룹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시민대학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언 중인 주민들. [중앙포토]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시민대학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언 중인 주민들. [중앙포토]

 예를 들어 2014년 벤츠의 본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 지역에선 ‘중앙역 지하화’를 놓고 주민 간에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그러자 이곳의 시민대학에선 이 문제를 놓고 공개 토론하는 수업을 개설했습니다. 수업엔 시민 200여명이 참여했죠. 중앙역 지하화를 찬성·반대하는 전문가가 먼저 논거를 제시하면 수강생들끼리 자신의 논리를 다듬어 토론을 벌였습니다.  
 
 토론회에는 주 정부와 의회 인사들도 참여해 주민 의견을 경청했습니다. 자유롭게 개진되는 이야기 중 의미 있는 것은 정부의 의사결정에 반영되기도 합니다. 시민교육과 주민들의 정치참여가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죠. 2014년 기준 슈투트가르트에선 전체 주민 60만여 명 중 약 4만여 명이 시민대학이 개설한 시민교육에 참여했습니다.   
 이처럼 시민교육은 책을 외거나 앉아서 수업을 듣는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직접 현실에 참여하고 자신의 결정에 책임질 때 습득 가능한 것이죠. 선거 때만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만으론 성숙한 국가 체제와 문화를 갖출 수 없습니다. 담론·이념 중심의 엘리트 정치가 주민 중심의 생활정치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민주주의를 이식받았습니다. 시민이란 개념을 스스로 발명한 게 아니라 짧은 압축성장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득했죠.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 기틀을갖췄지만, 내실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내실은 시민의 성숙을 통해서만 채울 수 있고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한국과 외국 초등학생의 시민교육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질서와 규칙을 학교에서 배우고 실천하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었죠. 여기에 ‘그렇다’고 응답한 한국 학생은 18.4%에 불과했습니다. 영국(54.3%)·프랑스(63%)의 3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학교에서 배우고 실천하느냐’는 물음에는 15.9%만 긍정적 답변을 했습니다. 영국·프랑스에선 각각 60%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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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요. 공동체 안에서 타인과 더불어 사는 능력 아닐까요. 그런데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 어디서도 이를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더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입시교육과 경쟁만 있을 뿐이죠. 이런 교육만으론 우리에게 밝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시민의 교양과 지혜를 갖고 있을까요. 우리 정치인들의 의식은 잘못을 사죄하지 않고 망언을 일삼는 일본의 지도자들과 비교해 훨씬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매주 일요일 아침 업데이트 됩니다.
 
#홈페이지(http://news.joins.com/issueseries/1014)
윤석만 기자는
 윤 기자는 2010년부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특히 인성·시민 교육 및 미래와 관련한 보도에 집중했다. 앞으로는 성적과 스펙보다 협동과 배려, 공감 같은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이란 책을 냈다. 유네스코가 15년마다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에서 세계시민교육 심포지엄의 기조발표자로 나서기도 했다. 중앙인성연구소 사무국장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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