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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빠 되기 싫어서" 美공화당 1인자의 은퇴 선언

지난 2012년 미트 롬니의 러닝메이트(부통령) 지명 당시 아내, 자녀와 기쁨을 누리고 있는 폴 라이언 하원의장.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2년 미트 롬니의 러닝메이트(부통령) 지명 당시 아내, 자녀와 기쁨을 누리고 있는 폴 라이언 하원의장. [로이터=연합뉴스]

“가정에 충실하고 싶다”…‘美 공화당 1인자’ 정계은퇴에 트럼프·공화당 비상
 
 ‘미 공화당 의회 1인자’가 정계 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권력 투쟁 때문도, 스캔들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가족을 위해서였다.
 
지난 20년간 10선 하원을 역임한 폴 라이언 하원의장(48ㆍ위스콘신) 얘기다.  
그는 1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자녀에게 ‘주말 아빠(weekend dad)’가 아닌 ‘풀타임’ 아빠가 되어주겠다”며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사실상의 정계 은퇴다. 이어 그는 “우리 의회가 성취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나 역시 의장직을 맡은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미 공화당 폴 라이언 하원의장.

미 공화당 폴 라이언 하원의장.

 
 라이언 의장은 공화당 내 대표적인 ‘40대 기수’로, ‘보수의 목소리를 중량감 있게 대변했다’고 평가받는다. 내년 1월 의회를 떠난뒤 ‘남편’과 ‘아버지’로서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그는 “세 자녀의 어린 시절은 빠르게 저물 것이다. 이들이 10대일 때 곁에 있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라이언이 정계에 입문(1999년)한 이후 태어난 그의 자녀들 나이는 각 16세, 14세, 13세다.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라이언 의장은 최근 가족과 유럽에서 2주간 보낸 부활절 휴가에서 이런 결심을 내렸다고 한다. 그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가족과 온전히(uninterrupted) 5~6일 가량을 함께 보낸 적이 드물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12년 부통령 후보 지명 당시 가족과 함께 한 폴 라이언 하원의장. 오른쪽은 대통령 후보였던 미트 롬니.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2년 부통령 후보 지명 당시 가족과 함께 한 폴 라이언 하원의장. 오른쪽은 대통령 후보였던 미트 롬니. [로이터=연합뉴스]

 
 라이언 의장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직(職)을 희생하게 된 배경에는 그의 불우한 유년 시절이 있다. 아일랜드계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6살 때 알콜중독자였던 아버지를 여읜 뒤 사회보장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10대 시절의 상당 기간을 아버지 없이 보낸 것이다.
 
 
 
중ㆍ고교 시절엔 알츠하이머를 앓는 할머니를 돌보는 동시에 맥도날드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또 오하이오주 마이애미대에 입학한 뒤엔 웨이터, 피트니스 트레이너 등을 학업과 병행하며 학비를 마련했다.
 
 
 
라이언 의장은 1998년 위스콘신주 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지난 2012년 대선에는 미트 롬니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면서 당 내 ‘40대 기수론’을 이끌었다. 3년 뒤엔 당 내 강경파와의 갈등으로 돌연 정계를 은퇴한 존 베이너 전 하원의장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외신들은 라이언 의장의 은퇴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뼈아픈 손실이라는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라이언은 같은 당 소속인 트럼프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난 2016년 미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가 히스패닉계, 여성, 성 소수자 등에게 막말을 일삼고, 이어 유부녀를 희롱한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공개돼 논란이 일자 트럼프에 대한 지원 유세를 중단하기도 했다.  
라이언은 자유무역 신봉자이면서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에 반대했다. 하지만 오바마케어 폐지, 감세법안 처리 등 공화당의 가치가 걸린 정책엔 힘을 실어 트럼프를 지켜주기도 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라이언 의장이 강경보수파와 주류 공화당원, 예측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긴장 속에서 좌절감을 느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도발적인 언사와 모욕적인 행동에도 대응해야 했다”며 이런 요인들 역시 그의 정계 은퇴를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당장 올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라이언의 공백은 트럼프와 공화당에 치명적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이 강한 중간선거에서 라이언 의장의 지원 사격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라이언은 공화당에서 가장 인기있는 선거자금 모금원이었다. 대중 지지가 높았을 뿐 아니라 공화당 후원자인 재계가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라이언 의장의 은퇴로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받고 있다.  
 
현재 공화당의 하원 의석은 민주당보다 23석이 더 많다. 그러나 현재 약 50석의 의석이 민주당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NYT 분석). “트럼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이 선거를 앞둔 공화당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월스트리트저널)이란 평가도 나온다.  
 의회 지배권 상실은 트럼프 대통령이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하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상ㆍ하원을 장악하면 트럼프에 대한 탄핵 조사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라이언 의장의 은퇴 발표 1시간 만에 데니스 로드(플로리다) 하원 역시 은퇴 계획을 밝혔다. 미 CBS는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사퇴를 표명한 공화당 상하원은 30여 명에 이른다”고 언급했다.
 미 정계의 관심사는 누가 라이언의 의장직을 이어받을지 여부다. CBS는 “케빈 맥카시 하원 원내대표(공화당ㆍ캘리포니아)와 스티브 스칼리스 하원 원내총무(공화당ㆍ루이지애나)가 의장직을 노리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라이언 의장 사퇴 소식을 접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라이언 의장은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라며 “그는 재선에 나서진 않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업적을 남길 것이다. 폴, 우린 당신과 함께 있다!”라는 글을 남겼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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