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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로펌 간 한국 첫 AI 변호사···검사도 놓친 분석 '단 20초'

한국의 첫 인공지능(AI) 변호사가 지난 2월 대형 법무법인에 '취직'했다. 변호사만 150여 명인 국내 10위권 로펌인 대륙아주의 AI 변호사 '유렉스' 얘기다. 유렉스는 그동안 담당 변호사와 법률 비서 여러 명이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몇달씩 걸려 작업하던 관련 법 조항 검토와 판례 분석 등 사전 리서치 업무를 20~30초만에 해치우는 괴력을 발휘하며 빠르게 업무에 적응하고 있다. 2016년 5월 미국 뉴욕의 100년 전통 로펌인 베이커앤호스테틀러가 AI 변호사 로스(ROSS)를 처음 '채용'한 게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는데, 그로부터 불과 2년만에 우리에게도 AI 변호사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 추세라면 변호사 상당수가 길거리에 나앉는 게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국내 첫 AI변호사 '유렉스'가 대형 법무법인에 '취직'했다. 유렉스 작업 화면. 장진영 기자

국내 첫 AI변호사 '유렉스'가 대형 법무법인에 '취직'했다. 유렉스 작업 화면. 장진영 기자

2016년 발간된 '유엔 미래보고서 2045'는 30년 후 AI에 대체될 위험성이 큰 직업 중 하나로 변호사를 꼽았다. 컨설팅회사 딜로이트도 같은 해 '20년 후 영국 법률시장 일자리의 39%가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우리 눈 앞의 AI 변호사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AI 변호사는 어떤 모습이고 업무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지난달말과 이달초 AI 변호사 유렉스와 '협업'중인 대륙아주를 찾았다.  

유렉스와 '협업'하고 있는 대륙아주 리걸프런티어팀 변호사들. 이동우 정명근 김동국 정호정 김형우 김동현(왼쪽 뒤부터 시계방향으로).

유렉스와 '협업'하고 있는 대륙아주 리걸프런티어팀 변호사들. 이동우 정명근 김동국 정호정 김형우 김동현(왼쪽 뒤부터 시계방향으로).

형사재판이든 기업자문이든간에 여느 변호사 사무실엔 증거자료 등 사건과 관련한 서류뭉치 더미와 딱딱한 하드커버 법률서적이 여기저기 쌓여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륙아주의 '리걸 프런티어 팀' 10인의 변호사 중 한사람인 김형우 변호사 겸 공인회계사 사무실엔 책장은커녕 아예 종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변호사 업무 가운데 적어도 30%, 많게는 70%까지 사전 법률 검토 작업에 들어간다는데 어떻게 그 흔한 증거자료 하나 없이 수임사건을 준비하는 걸까. 답은 책상 위 43인치 대형 모니터 화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국내 첫 AI 변호사 유렉스가 쥐고 있었다.  
김 변호사는 "이전에는 판례 확보는커녕 해당 사건과 관련 있는 정확한 법률용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와 관련한 법률이 어떤 게 있는지 파악하는 데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AI 변호사와의 협업으로 이젠 수십초면 끝난다"고 말했다. 유렉스가 일상적 언어를 법률용어로 바꾼 후 기존에 학습한 수십만 건의 법령과 판례 등을 빠르게 검색해 중요도 순으로 정리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렉스는 자연어를 법률용어로 바꾼 뒤 관련 법률과 판례를 수십초만에 찾아준다. 인간 변호사가 짧게는 수일, 길게는 수개월 걸리는 작업이다. 장진영 기자

유렉스는 자연어를 법률용어로 바꾼 뒤 관련 법률과 판례를 수십초만에 찾아준다. 인간 변호사가 짧게는 수일, 길게는 수개월 걸리는 작업이다. 장진영 기자

가령 공사판 인부인 아버지가 공사장 사다리차에서 추락하여 사망했을 때 업주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과거엔 의뢰인이 이렇게 물으면 '산업재해'같은 정확한 법률용어를 뽑아낸 후 더듬더듬 관련 법률과 판례를 하나하나 확인해야 했다. 대륙아주 리걸 프런티어팀 정명근 변호사는 "유렉스를 활용해보니 정확성과 시간 효율성 면에서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찰서류를 허위로 제출한 업체의 입찰 참여 여부에 관한 사건에 대해 2~3일 작업하고도 놓친 게 있었는데 유렉스는 검색과 거의 동시에 '부정당업자 입찰참가 제한'이라는 법률용어로 내가 빠뜨린 건설산업기본법까지 바로 찾아내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정 변호사 말처럼 간단한 내용은 하루 이틀 리서치 정도로도 가능하지만 복잡한 경우엔 소송 중 몇개월만에야 겨우 파악해 패소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법무법인 바른의 김진숙 변호사는 "성폭력이나 학교 등은 특별법이 워낙 많아 웬만한 검사도 제대로 모른다"며 "조두순 사건 당시 검찰측이 법률 적용을 잘못한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경험이 많은 변호사도 놓치거나 오래 걸리는 일을 AI 변호사가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걸 보면 '인간' 변호사 입장에선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대륙아주 김 변호사는 "AI 변호사가 자리잡으면 법률비서는 당장 필요 없어지고 경험이 부족한 주니어급 변호사 수요도 크게 줄어들어 많게는 70%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로펌 입성은 고사하고 점점 몸값이 떨어지는 수모를 겪고 있는 변호사들로서는 달갑지 않은 현실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은 정반대다. 로펌 변호사의 업무 효율이 높아지면 변호사 수임료가 낮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AI 변호사 '로스'를 서비스하는 로스인텔리전스 창업자들. 가운데가 로스를 만든 지모 오비아겔 CTO. [사진 인스타그램]

AI 변호사 '로스'를 서비스하는 로스인텔리전스 창업자들. 가운데가 로스를 만든 지모 오비아겔 CTO. [사진 인스타그램]

세계 첫 AI 변호사인 로스의 탄생도 비싼 수임료에서 비롯됐다. 로스를 개발한 미국의 법률 스타트업 로스인텔리전스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이자 공동창업자인 지모 오비아겔(24)의 부모는 그가 어린 시절 갈라서기로 했다. 하지만 이혼 변호사를 구하려고 알아보니 단 2시간의 수임료조차 감당할 수 없을만큼 비쌌고, 결국 이혼을 포기했다. 10살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오비아겔은 많은 사람들이 보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법률 서비스를 받을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했다. 그러다 AI가 리서치를 대신하고 변호사는 본업에만 주력하면 수임료를 낮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개발한 게 바로 로스였다. 로스는 사람의 일상 언어(자연어)를 이해한 후 판례 등 법률문서를 빠르게 분석한다. 리서치 시간을 크게 줄여줬다고 소문나면서 미국의 10여 개 법률회사가 로스를 '고용'했다.  
유렉스와 비슷한 로직의 AI변호사 로스인텔리전스 홈페이지.[홈페이지 캠처]

유렉스와 비슷한 로직의 AI변호사 로스인텔리전스 홈페이지.[홈페이지 캠처]

국내 인텔리콘 메타연구소가 개발한 유렉스도 로스와 비슷한 구조다. 임영익 인텔리콘 대표 변호사는 "빅데이터 활용 수준을 넘어 자연어 처리를 통한 정교한 검색 기능이 AI의 시작과 끝(전부)"이라며 "로스 역시 IBM의 인공지능 왓슨을 활용한 검색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또 "로스가 현재 파산법에 국한한 반면 유렉스는 모든 법을 다 포괄하고 있어 훨씬 앞선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유렉스를 만든 인텔리콘메타연구소 임영익 대표 변호사. 화면은 유렉스 구조를 설명하는 개념도. 장진영 기자

유렉스를 만든 인텔리콘메타연구소 임영익 대표 변호사. 화면은 유렉스 구조를 설명하는 개념도. 장진영 기자

물론 아직은 한계도 만만치 않다. 일단 판례 중심의 영미법과 달리 한국은 법률 사이의 연결을 파악해 논리적 구조를 쌓아야 하는 대륙법 체계인 데다, 모든 판례를 공개하는 미국·영국과 달리 한국은 대법원 판례 외에 하급심 판례 접근이 쉽지 않다. 자연어 처리와 별개로 AI가 학습할만한 법률 데이터 확보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또 법률 시장 자체가 협소해 큰 돈을 들여 AI에 투자하기도 쉽지 않다. 세계 리걸테크(법률과 테크놀로지 합성어) 시장 규모는 2019년 57억6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CB인사이트)되지만 국내는 현재 20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과 경쟁하는 태평양조차 일찌감치 포기한 이유다. 태평양은 2001년 판례 검색 프로그램을 만든 안기순 변호사를 영입해 법률 포털 로앤비(Law & B)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세계적으로 AI 같은 IT기반의 법률 스타트업이 하나 둘 생기던 2012년 톰슨로이터에 매각했다. 반면 미국은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리걸테크 시장규모가 커지기 시작해 현재는 관련 회사만 1000여 개에 달한다. 스탠퍼드 로스쿨은 매년 컨퍼런스를 열어 스타트업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은 훨씬 다양한 AI 기반 법률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인텔리콘이 목표로 하고 있는 자동 소장 작성이나 입법 예측 시스템 등도 미국에서는 이미 현실에 적용하고 있다. 가령 데이터 마이닝으로 법률 판례 추이를 분석하는 렉스 마키나는 재판에 걸리는 평균 소요시간은 물론 관련 사건 승소율까지 제공한다. 2016년 스탠퍼드에 유학 중이던 영국 학생 조슈아 브로우더(21)가 2015년 개발한 챗봇 변호사 두낫페이는 불과 1년만에 25만명이 400만 달러(당시 47억원)의 범칙금을 절감하도록 도왔다. 그런가하면 2001년 미국에서 출범한 미국 최대 온라인 법률 자문사 리걸줌은 AI를 활용한 간편 서식 작성을 통해 법률 자문비용을 많게는 20분의 1로 줄였다. 

스탠포드 재학생이 만든 챗봇 변호사 두낫페이 홈페이지 화면. [사진 홈페이지 캡처]

스탠포드 재학생이 만든 챗봇 변호사 두낫페이 홈페이지 화면. [사진 홈페이지 캡처]

로펌이 제공하는 법률서비스, 더 나아가 변리사와 공인중개사·행정사 등에 의존해야 했던 서비스를 대리인 없이 값싸게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무전유죄 같은 불만은 물론 전관예우 논란에서 벗어날 수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다. 최근 일련의 채용비리에서 드러났듯이 판결이나 채용 등에는 늘 공정성 시비가 일었는데 AI는 근본적으로 이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륙아주 김대희 대표는 "리걸테크로 무장한 외국 로펌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며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그리 급하지 않다거나 한국 적용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김앤장 권오창 변호사는 "디지털 포렌직이나 증거로 제출된 방대한 문서를 디지털화해 쉽게 찾아내는 기술인 이디스커버리(e-Discovery) 등 디지털화 외에 특별히 AI변호사 도입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태평양 김갑유 변호사는 "법 체계는 물론 언어번역의 한계 탓에 아무리 외국 로펌이 AI로 무장해도 국내 시장에 큰 영향력을 끼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메이저 로펌의 복잡한 거래 외의 전형적인 계약서 작성 같은 법률 서비스는 얼마든지 대체 할 수 있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비단 변호사의 계약 관련 자문업무 뿐 아니라 매매계약이나 임대계약 같은 부동산 거래나 변리사·관세사·세무사 등의 행정업무도 마찬가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AI 변호사의 등장이 단순히 법률시장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를 바꿔놓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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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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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