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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나쁜 남자’ 시대의 종말

노진호 대중문화팀 기자

노진호 대중문화팀 기자

누군가 ‘인생 드라마’를 물어보면 노희경 작가의 ‘빠담빠담’을 들곤 한다. 지금도 종종 명장면을 돌려볼 만큼 당시 받았던 느낌이 남달랐던 탓이다. 그런데 최근 명장면을 보다 깜짝 놀랐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호의를 베푸는 정지나(한지민 분)에게 양강칠(정우성 분)은 기습 뽀뽀를 한다. 이후 지나가 거리를 두려 하자 강칠은 소리친다. “내가 입 맞춘 거 가지고 그 쪽에게 사과해야 돼요? 남자가 여자 좋아한 게 무슨 문제라고. 만약 사과하려면 그쪽이 해야지. 나는 그쪽이 좋은데 그쪽은 내가 싫으니까. 사과해요, 나한테!” 아, 그때 이 대사는 얼마나 내 심금을 울렸던가. 그런데 6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이 장면만큼 무례하고 막무가내인 대사가 없다.
 
지난 10여년간 ‘나쁜 남자’만큼 뜨거웠던 인물은 드물었다. 2002년 가수 비는 “그냥 조금 만나다 말려고 했다”고 노래하는 곡 ‘나쁜 남자’로 데뷔했고, 각종 드라마에선 차갑고 거칠고 무례한 남자주인공이 등장했다.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 ‘꽃보다 남자’ 구준표, ‘미안하다 사랑한다’ 차무혁이 대표적이다. 현실에서도 적지 않은 남성들이 자신의 무례함을 나쁜 남자 컨셉으로 당당히 자랑하곤 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높은 가격의 물건을 더 흔쾌히 산다’는 베블렌 효과로 설명했다. 다른 이는 나쁜 남자와 ‘나쁜 놈’의 차이를 짚으며 나쁜 놈과 달리 나쁜 남자는 ‘내 여자’에게만큼은 순정을 바치기에 ‘나쁘진 않다’고 설명했다. 이유야 어찌 됐건 그렇게 나쁜 남자는 한국 사회 중심에서 사랑을 외쳤다.
 
하지만 소유격이 붙은 ‘내 여자’라는 말도 거부감 드는 요즘, 나쁜 남자들은 이제 함부로 사랑을 외치다 큰코다친다. 아무리 순정적이라도 표현 방식이 일방적이라면 그 무례함을 참고 넘어갈 바보는 이제 없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저자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과 이를 가능하게 했던 연애 문화는 일종의 바이러스 같은 것이었다”며 “이 바이러스가 여성을 쓰러뜨리던 시대는 끝났다. 여성들은 이 바이러스에 내성이 생겼다”고 선언했다.
 
‘빠담빠담’의 명장면을 보며 느끼는 불편함은 지난 6년간 한국 사회가 밟아온 젠더 감수성의 진보를 보여준다. 비단 남·여 간의 사랑뿐이랴. 한때 전문성과 자신감의 상징이었던 까칠함도 이제는 그저 무례함 내지는 갑질이 된 지 오래인 것을. 말 한마디에 상대방이 어떤 상처를 받을까, 내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노심초사했던 이들. 조금 늦었지만 그간 나쁜 사람 등쌀에 기죽었던, ‘착한 사람’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노진호 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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