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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참을 수 없는 중기재정계획의 가벼움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세금은 많아도 안 되지만 적어도 좋지 않다. 세금이 너무 적으면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적당한 것은 가장 훌륭한 정치가 행해졌을 때의 세율이다.” 『맹자(孟子)』 고자(告子) 하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2017년 나라살림이 국가결산으로 마감되고 2019년 예산편성 지침이 국무회의를 최근 통과했다. 대외경제 여건이 양호해 수출실적이 좋았고, 반도체 특수 등 기업 경영 환경이 긍정적으로 작용해 모든 재정지표가 당초 예산 편성 시점보다 나아진 상태로 마감됐다. 특히 세금이 잘 걷혀서 11조원대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음에도 세계잉여금(歲計剩餘金)이 11조3000억원이나 됐다. 이를 교부금 정산과 채무상환 등에 사용하기로 했다.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지원받는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들은 계획하지 않았던 추가 사업을 할 수 있게 돼 행복한 고민 중이다. 예를 들어 17개 시·도교육청의 경우 ‘학생 한 명에 악기 하나’ 지원사업과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개선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주머니(특별회계 19개, 기금 67개)로 인한 효율적인 살림 운영의 어려움과 18조5000억원에 달하는 적자 추이는 나아질 줄 모르는 상태다. 그리고 1555조8000억원에 달하는 국가부채는 규모보다도 증가 속도에 주의해야 한다. 정부의 경제적 부담을 가장 정확하게 나타내는 국가부채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90%에 육박하고 매년 100조원씩 늘어나고 있다. 국가부채는 세대 간의 심각한 불공평을 야기한다. 재정 건전성의 악화는 지금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다. 한국 같은 개방경제에 있어서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같은 대외 여건의 급변에 대비한 안전망의 확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시론 4/4

시론 4/4

눈여겨보아야 하는 부분은 2019년 나라살림에 대한 계획이다. 정부는 사회적 약자 보호, 안전, 환경, 소득분배 개선 등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인구구조 변화와 저성장 등 구조적 요인에 대응하기 위해 거시재정운용을 국가재정운용계획 상 2019년 총지출 증가율 5.7%보다 확장적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양적·질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지출 구조혁신과 안정적 재원마련 등 재정 건전성 관리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방점은 재정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역할에 찍혀있다. 확장적 포지셔닝이 아니라 몇 개월도 내다보지 못하고 고치는 중기 재정계획 제도의 가벼움을 지적하고 싶다.
 
지난해 9월 정기국회에 제출된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 마련된 것이어서 최소한 중기계획의 취지를 감안하면 2019년 예산운용에 대해서는 구속력이 있어야 마땅하다. 거기에 더해 아직 1분기가 채 지나가기도 전에 4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지난 노무현 정부 때 재정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됐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채택하고 있는 중기살림계획이다. 나라살림을 한 해만 보지 말고 최소한 3~4년 앞을 내다보고 하라는 취지다. 재량적으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사업이 점차 줄어들고, 의무적 지출(entitlement)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여건 속에서 재정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매우 필요한 시스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행정학자인 아론 윌답스키는 예산을 통해 재량적으로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여지가 전체 예산 중 5~10%에 그친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도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중기계획은 매년 연동제로 운용되니 대내외 경제환경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몇 년 뒤도 아니고 몇 달 뒤의 환경변화는 예측할 수 있는 전문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권고하는 예산 거버넌스의 10대 원칙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 예측 가능성, 중기전략 우선순위와의 부합성이다. 맹자가 말한 훌륭한 정치를 통해 국민이 내는 세금이 잘 쓰이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증세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정부와 국회에 대한 신뢰, 예산 결정의 모든 과정에 있어서 투명성 확보, 그리고 최소한 다음 해의 살림에 대해서는 구속력을 지닌 중기재정계획의 준수는 글로벌 표준이 되는 개혁 의제라고 본다.
 
우리의 행복한 봄날을 앗아가 버린 미세먼지와 황사에 대한 효과적 대안 마련, 초고령화, 초저출산 대책에 더 집중적인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1년 앞을 내다보고 큰 그림 하에서 재정이 운용되는 원칙이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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