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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프리즘]전 세계 흑인 중 최고 부자는 나이지리아의 단고테

 
 
 
 
 
 박경덕의 아프리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사람과 악수를 하면 반드시 집에 돌아와서 손가락 개수를 다시 세어봐야 한다.” 
 
이달 초 아프리카 출장지에서 들은 얘기다. 나이지리아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워낙 ‘수완’이 좋아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모르니 신중히 처신해야 한다며 들려준 말이다. 그런 수완 때문인지 아프리카에서 유독 나이지리아에 거대 재벌이 많다. 전 세계 흑인 중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알리코 단고테(Aliko Dangote, 141억 달러)와 두 번째 부자인 마이크 아데누가(Mike Adenuga, 53억 달러)가 모두 나이지리아 사람이다. 아프리카 여성 중에서 앙골라 전 대통령의 딸인 이자벨 도스 산토스(Isabel dos Santos)에 이어 두 번째 부자인 폴로룬쇼 알라키자(Folorunsho Alakija, 17억 달러) 역시 나이리지아 사람이다.  
 
미국 뉴욕에서 지난해 9월 열린 '블룸버그 글로벌 비즈니스 포럼'에서 연사로 나선 단고테 CEO.[중앙포토]

미국 뉴욕에서 지난해 9월 열린 '블룸버그 글로벌 비즈니스 포럼'에서 연사로 나선 단고테 CEO.[중앙포토]

지난 9일 포브스가 보도한 ‘2018년 세계 최고 부자 리스트’에 따르면, 단고테의 재산은 원화로 환산해 대략 15조원이 넘는 거액으로 아프리카에서 1위, 전 세계적으로는 100위를 차지했다. 가난한 대륙 아프리카에서 맨주먹으로 일군 재산으로는 엄청난 금액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많이 줄어든 것이 이 정도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던 2014년 2월에는 나이지리아 증시에 상장된 보유 주식 가치가 크게 올라 재산이 250억 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서부 아프리카 최대기업 단고테 시멘트
 
단고테 그룹의 모기업 ‘단고테 시멘트’는 나이지리아뿐 아니라 서부 아프리카 지역을 통틀어 가장 큰 기업이다. 나이지리아 외에도 세네갈ㆍ잠비아ㆍ탄자니아ㆍ남아공 등 14개 아프리카 국가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오바자나(1325만t) 공장을 포함, 나이지리아의 시멘트 생산량만 연간 2325만t이다. 단고테 시멘트의 시장 가치는 대략 123억 달러로, 현재 영국 런던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이다.  
 
단고테의 인생 스토리는 아프리카인의 자수성가 모델로 뭇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단고테가 맨손으로 기업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단고테의 성공에는  ‘외할아버지의 재력’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나이지리아 언론 나이자 뉴스에 따르면, 단고테는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외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첫 번째 손자인 단고테를 각별히 아꼈던 외할아버지는 단고테에게 수시로 용돈을 줬다.  
 
단고테(왼쪽에서 둘째)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셋째),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맨 오른쪽)이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블룸버그 글로벌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했다. [EPA=연합뉴스]

단고테(왼쪽에서 둘째)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셋째),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맨 오른쪽)이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블룸버그 글로벌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했다. [EPA=연합뉴스]

단고테는 스무살이 되던 1977년 외할아버지의 용돈을 모아 고향 카노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큰 돈을 벌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인 라고스로 사업 터전을 옮겼다. 그곳에서 그의 운명을 바꾼 시멘트와 인연이 시작됐다. 인구가 폭발하는 도시에 건축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멘트 장사는 그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했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넘쳐나는 ‘오일 달러’로 나라 곳곳에서 건축 붐이 일었다.  
 
20살 때 용돈 모아 고향서 장사 시작 
 
1978년 단고테는 외할아버지를 찾아가 시멘트를 수입하는 데 필요한 사업 자금을 빌려 달라고 요청했다. 돈 많은 외할아버지는 단고테에게 50만 나이라를 내주었다. 당시 벤츠 승용차 10대를 살 수 있는 엄청난 돈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단고테에게 반드시 다시 갚는 조건으로 거금을 내주었다. 시멘트 장사가 잘돼, 단고테는 그 약속을 6개월 만에 지킬 수 있었다. 이후 단고테는 설탕ㆍ밀가루ㆍ소금ㆍ생선 등 식품을 유통하는 대기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나갔다.
 
단고테의 사업가 DNA는 늘 그를 ‘떠나게’ 만들었다. 시골인 카노에서 대도시 라고스로 가게 한 그 DNA가 이번에는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로 새로운 사업 거리를 찾아 떠나게 했다. 1999년 제조업을 공부하기 위해 브라질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단고테는 유통에서 제조로 그룹의 본업을 바꿨다. 아프리카 최대 인구 대국인 조국 나이지리아의 앞날을 생각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 공급하겠다는 애국심도 한몫했다. 그 마음은 “기본적인 필요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삶에 다가간다(Touch the lives of people by providing their basic needs)”는 그룹의 미션에도 담아 지금껏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    
 
단고테 그룹 로고

단고테 그룹 로고

37년간 성장을 거듭해온 단고테 그룹은 이제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농업과 정유ㆍ화학 분야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단고테 그룹은 2020년까지 쌀과 설탕에 38억 달러를, 유제품 생산에 8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아직도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먹거리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다. 나이지리아 국립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나이지리아는 쌀 210만t을 포함해 식량 수입에 27억 달러를 썼다.  
 
자기 모순적 상황 극복 위해 정유ㆍ화학 분야 진출
 
정유ㆍ화학 부문은 원유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석유 제품을 수입하는 데 사용하는 ‘자기 모순적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현재 라고스 인근에 하루 65만 배럴의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시설과 폴리프로필렌을 생산할 수 있는 석유화학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와 관련, 현대중공업이 지난달 단고테 정유회사(DORC)로부터 5800만 달러 규모의 대형 LPG 저장탱크 15기에 대한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중공업은 2016년에도 중질유분해설비(RFCC)를 수주한 바 있다.  
 
단고테는 최근 자신의 고향 카노에 있는 바예로 대학교에 35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 돈은 단고테의 이름이 붙은 비즈니스 스쿨을 짓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올해 60세로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조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기업가를 키우겠다는 그의 뜻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단고테 비즈니스 스쿨은 나이지리아에서 처음 설립되는 비즈니스 스쿨로, 경영학박사 과정을 운영할 예정이다. 단고테는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전략적 협력관계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고테는 성공한 기업인으로 국가와 사회를 위한 헌신도 아끼지 않았다. 2010년에는 굿럭 조너선 당시 대통령에 의해 국가일자리창조위원장에 임명돼 일했고, 나이지리아의 고질병인 말라리아를 퇴치하기 위한 ‘말라리아 대사’로도 활동했다. 2010년 9월에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홍수 피해를 본 파키스탄 사람들을 돕는 데 써 달라며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 2012년 국내외에 기부한 돈만 1억1000만 달러였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단고테에게 국가에서두번째로 높은 등급의 훈장을 수여했다.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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