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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형 대통령제 죄악시하고 여론몰이하는 건 문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23일 ’개헌은 대통령 권한 분산이 핵심으로, 이를 위해서는 국민과 국회가 주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23일 ’개헌은 대통령 권한 분산이 핵심으로, 이를 위해서는 국민과 국회가 주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23일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권한의 조정과 축소”라며 “이를 위해서는 권력 분산의 대상인 청와대가 주체가 돼서는 안 되고 국민과 국회가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개헌안 발표에 대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전 의장은 국회 총리 추천·선출제 논란에 대해서도 “국회의 권한이 커지는 데 대해 국민적 시선이 따가운 만큼 신뢰 회복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며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성과 윤리성 강화 조치를 함께 행동에 옮겨야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2008년 국회의장 취임 일성으로 개헌을 주장하고 개헌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국회 내 개헌 논의를 주도한 데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장을 맡으며 ‘개헌 전도사’로 꾸준히 활동해 왔다.
 
왜 지금 개헌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이 시대적 요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대통령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조정·축소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수다. 대통령제는 삼권분립이 기본 원칙인데 한국의 대통령제는 이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집행할 법을 대통령이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고 사법부 수장도 직접 임명하고 있지 않나. 검찰·국정원 등 권력기관도 대통령이 좌지우지하다 보니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에게 충성을 다해야 할 기관이 대통령의 눈치만 봐서는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주의 기본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청와대 개헌안 발의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공약은 지켜야 하는데 정치권은 요지부동이니 오죽 답답했으면 그러겠느냐고 선의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어떻게 분산하느냐가 개헌의 핵심인데 이를 당사자인 대통령이 주도해 바꾸겠다면 누가 그걸 믿겠는가. 이미 개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국회를 압박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둔 만큼 청와대의 역할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 개헌안을 국회에 발의하면 모든 게 헝클어진다. 자유한국당의 결사 반대로 부결될 게 뻔한 상황에서 자칫 개헌 자체가 물 건너갈 수 있다.”
 
김 전 의장은 그러면서 “개헌은 발의가 아니라 통과가 목적이 돼야 한다. 이번엔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하지 않겠느냐”며 “청와대도 진정 개헌하고 싶다면 26일 개헌안을 발의하지 말고 국회에 맡겨야 한다. 국민과 국회가 개헌을 주도하는 게 현실적으로 최선이자 유일한 시나리오”라고 강조했다.
 
권력구조 개편도 주요 쟁점이다.
“우리 정치 구조상 대통령 4년 연임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뭘 채택해도 세 제도의 요소가 두루 포함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대통령에게 쏠린 권력을 어떻게 분권화할지 최대한 꼼꼼히 챙겨 이를 명문화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이런 고민 없이 형식만 갖고 다투니 국민이 공허하게 받아들이는 거다. 청와대가 분권형 대통령제는 잘못된 제도인 양 죄악시하고 대통령제는 마냥 선한 것처럼 여론몰이하는 것도 문제다. 미국 외에는 대통령제를 제대로 운용하는 나라가 드문 반면 내각제나 분권형제를 성공적으로 시행하는 나라는 수십 개국에 달하는 게 엄연한 현실 아닌가.”
 
하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떼어내 국회에 주는 데 대한 국민적 반감도 만만찮다.
“권한이 주어지는 만큼 국회의 책임성과 윤리성이 함께 강화되는 게 중요하다. 국회 윤리위원회 강화가 대표적이다. 우리 국회 윤리규정은 2쪽에 15개 항뿐이다. 반면에 미국 하원의 윤리 매뉴얼은 450쪽에 달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지 않나. 이런 것부터 제대로 챙기는 게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다. 윤리위원도 전원 외부 인사로 구성하고 국회 추천권도 없애야 한다. 또 윤리위 결정사항은 지체 없이 표결에 부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 국회가 먼저 실질적 조치를 내놓으며 자기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야 총리 추천·선출 주장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거다.”
 
김 전 의장은 개헌의 또 다른 당위성으로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언급했다. “5년 단임제를 하다 보니 잃어버린 게 있다. 바로 미래에 대한 중장기 비전이다. 전 정권에서 두각을 나타낸 관료들이 대통령이 바뀌면 어느새 한직으로 밀려 사라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교육·과학기술 등 긴 호흡이 필요한 정책도 연속성이 담보되지 못하고 단절되기 십상이었다. 정권교체 비용을 이처럼 많이 지불하면 선진국은 언감생심이다.”
 
청와대는 그러니까 4년 연임제로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 분산에 대한 확고한 제도적 장치 없이 4년 연임제로 가면 8년 단임제만 될 뿐이다.”
 
개헌과 관련해 정치권에 조언한다면.
“자유한국당도 제1 야당의 역할을 전혀 못한 게 사실이다. 오히려 주도적으로 나서도 부족한데 너무 소극적이었다. 이제라도 개헌 논의에 적극 참여하는 게 당에도 이로울 거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대통령 인기에 편승해 지지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야당과 설전만 벌일 줄 알았지 야당을 설득해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당으로서 국정 주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걸 뼈저리게 반성할 때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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