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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을 눈앞에 둔 사람도 살아온 삶을 인정 받고 싶어한다

기자
백만기 사진 백만기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3)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되는 죽음. 죽어가는 사람의 소원은 무엇일까. 의외로 돈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 오르거나 하는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생을 살며 ‘조금만 더’ 하며 미뤘던 작은 것을 이루는 것이라고. 은퇴 후 인생 2막에서 여가, 봉사 등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 죽음도 편하다고 한다. 노후준비엔 죽음에 대비하는 과정도 포함해야 하는 이유다. 은퇴전문가가 죽음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방법과 알찬 은퇴 삶을 사는 노하우를 알려드린다. <편집자 주>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호스피스 체험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호스피스 체험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그동안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 은퇴 후에는 그 빚을 일부라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의사가 되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났다. 의사는 직장을 그만둔 뒤에도 자신의 의술을 이용해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학 공부를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대신 간호사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에 간호학과가 있으므로 3학년으로 편입하면 될 것 같았다. 방통대에 지원하려고 문의하니 간호학과 편입은 간호전문학교를 나온 사람만 할 수 있다는 답이 왔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다 보니 다른 학과와 달리 입학이 제한적이었다. 
 
낙담하고 있을 때 국립암센터에 6개월 과정의 호스피스 전문과정이 있음을 알았다. 일반인을 위한 자원봉사형의 과정이 아니고 전문 의료인을 양성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그곳에 지원해 한동안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과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해 배웠다.


 
호스피스 센터서 만난 한국 토목 학계의 권위자
호스피스 센터에서 이론공부를 마치고 실습을 나갈 차례가 왔다. 간호사들은 나름대로 연고가 있거나 자신이 가고 싶은 병원을 택했다. 나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모현호스피스센터를 지원했다. 그곳을 실습기관으로 택한 것은 과거 중앙일보 정재숙 기자가 쓴 기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 모현의료센터.  말기암 등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다. 대개 환자들이 입원한 뒤 평균 2주만에 죽음을 맞게 된다고 한다. 환자 손을 잡아주고 있는 수녀의 두 손. [중앙포토]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 모현의료센터. 말기암 등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다. 대개 환자들이 입원한 뒤 평균 2주만에 죽음을 맞게 된다고 한다. 환자 손을 잡아주고 있는 수녀의 두 손. [중앙포토]

 
당시 모현호스피스센터에는 한국 1세대 작곡가인 조념 선생이 입원하고 있었다. 기사는 조념 선생께서 폐암으로 고통받는 와중에도 그곳에 입원한 다른 환자를 위해 바이올린을 켜준다는 내용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해 모현호스피스센터로 향했다. 호스피스센터에 도착하니 담당 수녀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수녀님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며 어디론가로 갔다. 얼마 후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전날 입원했던 환자가 오늘 새벽 운명한 것이다. 호스피스의 평균 재원일수는 20여 일이다. 그러나 그 환자처럼 입원한 지 하루 만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너무 늦게 호스피스에 왔던 것이다.
 
오전에 수녀님에게 호스피스센터 전반에 대한 개요를 듣고 의료원장의 회진에 동참했다. 원장은 회진을 돌며 입원한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살피고 내게 증상을 설명해주었다. 
 
어느 환자 앞에 섰을 때다. 원장은 먼저 환자와 몇 마디 주고받은 후 내게 ‘이 분은 한국 토목공학계의 권위자’라고 소개했다. 그때 나는 환자가 겸연쩍어하면서도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죽어가는 사람 역시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울음보다는 감사의 말을
죽어가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두 가지를 보증하는 언질을 듣고 싶어 한다. 첫째는 죽어도 된다는 허락이고, 둘째는 남은 사람들이 잘 지낼 수 있으며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장담이다. [중앙포토]

죽어가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두 가지를 보증하는 언질을 듣고 싶어 한다. 첫째는 죽어도 된다는 허락이고, 둘째는 남은 사람들이 잘 지낼 수 있으며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장담이다. [중앙포토]

 
죽어가는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또 살아있는 사람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어머니가 노환으로 누워계실 때다. 병이 위급하다는 소식에 형제가 모였다. 동생이 어머니 앞에서 흐느껴 울었다. 나는 동생을 밖으로 불렀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소리 내어 울지는 말아라. 자칫하면 어머니의 마음을 어지럽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동안 병환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이렇게 속삭였다. “어머니, 인생을 잘 사셨습니다. 자식들도 괜찮고 손자들도 잘 크고 있습니다. 가족 모두 어머니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안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 후 어머니는 몇 달을 더 사시다가 집에서 자연사하셨다.
 
죽어가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두 가지를 보증하는 언질을 듣고 싶어 한다. 첫째, 그가 죽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싶다. 둘째, 그가 죽은 이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잘 지낼 수 있으며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장담 받고 싶어 한다. 생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완수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 죽음을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다른 사람의 죽음을 돕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새로 태어났을 때 우리가 무력한 존재여서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는다. 죽어갈 때 역시 자신을 돌볼 수 없음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임종순간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 죽어가는 사람이 원하는 건 역시 살아있는 사람이 원하는 것과 동일하다. 바로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이다. 임종의 순간에 자신이 삶을 잘 살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 누가 그걸 긍정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죽어가는 사람을 돕는 방법
1. 환자가 유언장을 작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2. 중요한 문서를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3. 환자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준다
4. 환자가 마지막 순간에 대해 특별히 소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5. 신체가 비교적 편안한 환자는 집에서 죽는 것을 원한다
6. 통증이 있으면 호스피스 병동이나 말기 환자를 위한 적당한 곳을 찾아준다
7. 환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한다
8. 환자의 말에 공감하고 경청해준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manjoy@naver.com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news.joins.com/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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