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차이나 인사이트]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공산제국’으로 퇴행하나

“독재자는 결코 호랑이 위에서 내리려 하지 않는다. 호랑이는 점점 배가 고파가는 법이다.” ‘철의 장막’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던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독재자의 운명이 마치 호랑이 등에 올라탄 모습과 같다는 비유다. 독재자는 호랑이 등에서 뛰어내리고 싶어도 뛰어내리지 못한 채 결국 파국을 향해 치닫고 만다는 이야기다. 그제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철폐한 중국 지도자 시진핑(習近平)의 행보가 처칠의 경구를 떠올리게 한다.
 

로마공화정 시대 민회는 매년 1월 1일 2명의 집정관(Consul)을 선출했다. 두 집정관은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행정과 군사의 지휘권을 행사했다. 비상시엔 둘 중 하나를 독재관(Dictator)으로 선출해 그에게 전권을 줬다. B.C. 81년 냉혹한 정치가 술라는 종신 독재관으로 취임했으나 2년 후 자신의 개혁법안이 확정되자 정계를 떠났다. 칭송이 따랐다.
 
사진은 지난 11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전체회의에서 개헌안 표결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 삭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은 99.8%의 찬성률로 통과됐다. [연합뉴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사진은 지난 11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전체회의에서 개헌안 표결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 삭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은 99.8%의 찬성률로 통과됐다. [연합뉴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1982년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 휘하의 전국인민대표대회는 현대 중국의 네 번째 헌법을 통과시켰다. 이후 중국 정치는 권력의 제도화와 탈인격화 과정이 진행됐다. ‘2’와 ‘7’로 끝나는 해의 가을에 정치국 상무위원을 비롯한 공산당 지도부 인사가 이뤄졌고 이듬해 ‘3’과 ‘8’로 끝나는 해 3월엔 국가주석과 총리 등 정부 요인에 대한 인사가 단행됐다.
 
예측 가능한 권력 승계 작업이 이뤄진 것이다. 대권을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무대 뒤로 사라진 덩샤오핑의 솔선수범 덕이 컸다. 덩은 전임자가 죽어야만 후임자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종신제를 폐기했다. 대신 후계자가 일정 기간 착실하게 준비하면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임기제를 정착시켰다.
 
B.C. 46년의 로마. 내전에서 승리해 전권을 장악한 카이사르는 10년 임기의 독재관에 취임했다. 집정관 안토니우스는 독재관을 보좌하는 부독재관으로 전락했다. 1인 절대권력에 도취한 카이사르는 B.C. 44년 1월 1일 황제와 다름없는 종신 독재관에 취임했다. 그러나 석 달도 안 돼 브루투스 등 공화정 옹호파에 의해 암살됐다. 로마공화정도 종언을 고했다.
 
2018년 중국 최고 지도자 시진핑 국가주석도 로마의 카이사르처럼 10년 임기의 독재관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제 중국 헌법상 최고권력기관이자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는 현행 헌법에 대한 5차 개헌을 단행했다. 2004년 4차 개헌 이후 14년 만의 헌법 개정이다.
 
눈에 띄는 건 헌법 서문에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毛澤東) 사상, 덩샤오핑 이론, 삼개대표 중요사상에 시진핑 자신의 치국 이념인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을 삽입한 점이다. 헌법에 지도자 이름이 든 사상이 명기된 건 마오쩌둥 이래 시진핑이 처음이다. 시진핑이 마오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함께 헌법 서문 규정보다 더 규범력이 강한 헌법 본문 조항들도 개정됐는데 핵심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5년 임기가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는 규정이 폐지된 점이다. 이로써 시진핑은 짧게는 15년, 길게는 초(超)장기 집권, 또는 종신 독재의 길을 갈 수 있게 됐다. 반면 국무원 총리와 부총리, 국무위원은 1회에 한해서만 연임할 수 있는 규정이 바뀌지 않았다.
 
덩샤오핑이 마오쩌둥과 같은 ‘괴물 황제’의 출현을 막기 위해 고심 끝에 고안한 임기제와 집단지도체제가 시진핑에 의해 흔들리게 된 셈이다. 기존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1인자를 핵심으로 하는 일곱 거두의 준(準)수평적 원탁형 과두체제라 할 수 있다. 그러던 게 이제는 ‘1인자와 여섯 난쟁이’가 통치하는 수직적 피라미드형으로 변했다. 마오쩌둥식 1인 종신 통치 시대로 역주행한다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군주국이 아닌 공화국 체제에서의 1인 단기독재 또는 과두 장기독재가 성공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1인 종신 독재는 십중팔구 끝이 좋지 않았다. 사회는 타락하고 국민은 불행했다. 지난 40년에 걸친 원탁형 과두체제를 깬 시진핑 1인 장기 집권 개헌은 ‘거대한 비극의 탄생’일 수 있다. 베이징 하늘의 암갈색 스모그만큼 중국의 미래 또한 불투명해졌다.
 
두 번째는 ‘중국 공산당 영도 원칙’을 명기한 헌법 제1조 2항이다. 이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가주석 연임 제한 폐지 개헌보다 ‘말은 적으나 탈은 더 많을’ 독소 조항이다. 기존 헌법은 서문에 ‘중국 공산당 영도 원칙’을 암시했지만, 본문엔 ‘중국 공산당’ 단어조차 없다.
 
한데 시진핑 치하의 전인대는 헌법 본문 그것도 제1조에 ‘중국 공산당 영도는 중국특색사회주의의 최고 본질적 특징이다’란 문구를 추가해 세계 헌법사상 전대미문의 개헌을 감행했다. 중국 공산당을 헌법상 영구 집권당으로 등극시켰기 때문이다. ‘중국특색’이 아니라 ‘시진핑특색’의 개헌이다. 이 조항은 문화대혁명 당시인 1975년 헌법 제2조의 ‘중국 공산당은 중국 인민의 영도 핵심이다’보다 심한 악성 퇴행이다.
 
중국 역대 헌법은 물론 구(舊)소련과 동구권,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헌법을 봐도 헌법 제1조에 노골적으로 특정 정당의 실명과 그것의 영구 집권, 그리고 영도 원칙을 규정한 예는 없다. 이런 기상천외한 헌법 제1조를 보유한 중국이 세계 각국이 본받을 지도국이 되기는 요원할 것이다.
 
세 번째는 ‘감찰위원회’ 신설이다. 독립된 장절(章節)을 신설해 감찰위원회 설립을 규정한 건 현행 헌법 5차례 개헌을 통해서 이번이 처음이다. 당내 사정 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는 사법권 대비 감찰권 우위 체제의 중국 권력구조 환경에서 막강한 감찰 권력을 휘둘러왔다. 문제는 헌법과 법률에 전혀 근거가 없는 기구란 점이었다. 또 공산당원만 감찰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신설된 국가감찰위원회는 헌법적 근거를 갖고 또 비당원 공직자도 감찰할 수 있어 훨씬 강도 높게 반부패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의 질주 비결은 구호나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정책을 구체적으로 법제화해 강력히 실행한 데 있었다. 감찰위원회 신설 개헌만큼은 양성 개헌에 해당한다. 우리도 개헌 시에 감사원의 실질적 권한 강화 또는 공수처 설치를 헌법 조문화해 국가 사정·감찰기관의 지위와 권능을 법률적 차원보다 한 단계 높은 헌법적 차원으로 보장할 것을 제안한다.
 
◆강효백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문은 세상의 모든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중국의 슈퍼리치』 등 다수의 중국 저서가 있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중국법학과 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