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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올림픽 정신과 평화

중앙일보 <2018년 2월 20일 30면>
올림픽 정신 보여준 아름다운 어깨동무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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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속여제’의 아름다운 은메달이었다. 18일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는 한국 스포츠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올림픽 3연패에 나선 이상화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에게 안타깝게 금메달을 내줬지만, 온 국민은 그의 선전과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경기를 마친 이상화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12년간의 눈물을 쏟아낼 때는 지켜보던 이들도 함께 울컥했다.
 
아름다운 장면은 그다음으로도 이어졌다. 고다이라가 이상화에게 다가와 어깨를 감쌌고, 이상화는 몸을 기댔다. 두 사람은 가볍게 포옹한 채 각자의 국기와 함께 빙판을 돌았다. 서로 “잘했다” “너를 존경한다” “네가 자랑스럽다” 격려했다. 필생의 라이벌이자 서로를 동력 삼아 자신과 싸워 온 두 사람이다. 한·일 간 정치적인 교착상태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정신으로 하나 된 두 영웅의 어깨동무에 외신들도 주목했다. 미국 NBC는 “스포츠맨십이 무엇인지 보여 줬다”고 보도했다.
 
인상적인 장면은 같은 날 여자 쇼트트랙 1500m 시상식에서도 있었다. 금메달리스트 최민정과 동메달리스트 킴 부탱(캐나다)이 한 손씩을 내밀어 하트를 만들었다. 500m 결승 때 최민정의 실격 이후 킴 부탱을 향한 ‘악플테러’로 껄끄럽게 만났던 두 선수다. 최민정은 “부탱이 (하트 세리머니를) 제안했다. 모든 선수는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판정은 오직 심판의 몫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빙판에선 양보 없는 경쟁자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룬 후에는 결과에 승복하는 스포츠 정신. 그리고 역사와 정치의 간극마저 허물 수 있는 스포츠의 힘. 올림픽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한겨레 <2018년 2월 21일 27면>  
감동과 울림을 준 단일팀, ‘평화’란 이런 것이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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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초의 올림픽 남북 단일팀인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세계인들 앞에 큰 감동을 전해주며 20일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스웨덴과의 7~8위 결정전에서 단일팀은 14일 일본전에 이어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는 등 막판까지 최선을 다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북쪽 황충금 선수가 남쪽 최지연 선수에게 달려가 포옹했다. 관중석엔 한반도기가 나부꼈다. 선수들은 링크 중앙에 함께 둘러서 “하나 둘 셋, 팀 코리아”라는 구호를 외치며, 짧았지만 큰 울림을 준 ‘팀 코리아’ 일정을 모두 마쳤다. 돌아보면, 숨가쁜 순간의 연속이었다. 대회를 한 달 남겨두고 급작스레 단일팀이 결정돼 선수들은 당혹스러워했다. 여론도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러나 남북 선수들은 함께 훈련하며 금세 ‘언니, 동생’이 되어 서로 돕고 감싸안았다. ‘승리’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질주하며 울고 웃었다. 여기에는 세라 머리 감독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논란 초반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며 선수들을 다독이는 한편, “선수를 고르는 건 내 권한”이라며 중심을 잡아 남북 선수들이 모두 믿고 따를 수 있게끔 했다.
 
단일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자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외침 속에 ‘작은 통일’의 감격을 누렸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정치와 이념을 떠나 젊은이들이 스포츠를 통해 하나 되어 땀 흘리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을 수 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남북 단일팀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했다”며 “이것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앞으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다시 만들어질지는 알 수 없다. 애초 단일팀을 제안했던 르네 파젤 국제아이스하키연맹 회장은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때도 단일팀이 출전할 수 있다면 돕겠다”고 말했다. 2021년 겨울 아시아경기대회의 남북 공동개최가 성사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만일 단일팀 논의가 다시 이뤄진다면, 이번 사례를 본보기 삼아 관계 당사자들과 일찍부터 깊이 있게 논의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한 ‘팀 코리아’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들이 안긴 감동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논리 vs 논리
“올림픽이 준 선물, 스포츠 정신” vs “단일팀 감동이 곧 올림픽 정신”
이상화 선수(왼쪽)가 지난 2월 18일 평창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후 오랜 경쟁자이자 금메달을 딴 일본 고다이라 나오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두 선수의 우정은 이후로도 계속 화제가 됐다. [뉴스1]

이상화 선수(왼쪽)가 지난 2월 18일 평창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후 오랜 경쟁자이자 금메달을 딴 일본 고다이라 나오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두 선수의 우정은 이후로도 계속 화제가 됐다. [뉴스1]

17일간의 지구촌 대축제였던 2018평창겨울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올림픽이 끝난 뒤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민 가운데 84%가 ‘성공적인 올림픽’이라고 답했다. 대회 초반 한 캐나다 언론은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라며 흠 잡을 데가 없다고 찬사를 보냈다. 대회 중반 미국의 한 언론은 중무장 병력도 없이 사고 없는 안전한 올림픽이 가능한 이유를 물으며 놀라움을 표했다. 폐막식 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조정위원장은 “역사상 최고의 겨울올림픽”이라고 극찬하면서 “한국인들은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만의 자찬이 아님은 분명하다.
 
‘성공적인 올림픽’의 기준은 무엇일까. 혹자는 성적을 꼽을 수 있겠다. 실제로 한국 국가대표 ‘팀 코리아’는 처음으로 가장 많은 6개 종목에서 역대 최다인 17개의 메달을 땄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느 때보다 올림픽이 끝난 후 남은 여운이 매우 길다. 우리는 분명 메달 이상의 것, 국제적인 찬사 이상의 것, 개최국 국민으로서 느끼는 안도감 이상의 것을 발견했다. 대회 도중 한겨레와 중앙은 한국 선수들의 경기에서 얻은 소감과 가치를 사설을 통해 특별히 다루었다. 중앙일보가 ‘선물’이라 표현하고 한겨레가 ‘감동’이라 말한 그것, 국민의 마음속에 깊은 행복감을 안겨준 그것의 정체는 선수들이 혼신을 다해 온 몸으로 구현해 낸 ‘올림픽 정신의 본질’이었다.
 
한겨레가 강조한 올림픽 정신은 ‘평화’였다. 지난 2월20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선수들이 마지막 경기가 끝났을 때 서로 부둥켜안은 뒤 ‘팀 코리아’를 외친 순간의 감동을 다루었다. 관중들은 한반도기를 흔들며 선수들의 여정에 박수를 보내고 함께 ‘복잡한 기쁨’을 나누었다. 대회 한 달 전 단일팀이 급조되어 감독도, 선수도 혼란스러웠고, 뒤숭숭한 분위기로 마음고생이 많았던 팀이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에서도 같은 목표를 향해 땀 흘리고 아끼며 ‘원 팀’을 실현한 선수들의 모습과 혼란을 빠르게 수습했던 세라 머리 감독의 리더십에서 국민들은 남과 북의 관계 개선을 향한 상징적 모습을 보았다. 한겨레는 “평화란 이런 것”이라며 단일팀이 보여준 올림픽 정신을 짧고 강렬하게 평했다.
 
한편, 중앙이 강조한 올림픽 정신은 ‘스포츠 정신’이었다. 중앙은 지난 2월18일 치러진 이상화 선수의 500m 경기에 주목했다. 이상화 선수는 금메달을 아깝게 내줬지만 관중들은 메달이 아니라 그의 투혼에 박수를 보냈다.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최선을 다해 자신을 극복해 낸 선수의 노력에 대한 경의였다. 또한 금메달을 딴 일본의 고다이라가 이상화를 감싸 안은 뒤 함께 경기장을 돌던 모습도 높이 평가했다. 두 사람이 보여 준 스포츠맨십의 요체는 상대와의 대결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킴 부탱 선수와 최민정 선수의 하트 세리머니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한 선수 간에는 마음의 앙금이나 메달 결과보다 서로에 대한 인정과 축하가 남는다. 평창올림픽은 스포츠의 경쟁이 우정과 존중을 향하고, 그것이 우리 본성 안에 있다는 깨달음을 “선물”로 주었다.
 
지난해 한반도는 미국과 북한의 강 대 강 대립으로 인해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였고. 북한은 미국까지 도달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5형’ 발사 실험을 감행함으로써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조성되었다. 당시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우려하던 IOC에서도 평창올림픽을 연기하거나 취소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자 분위기가 급반전된 것이다.
 
이번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역사상 3번째이고, 올림픽 사상 첫 번째 단일팀이다. 무려 27년 만의 일이다. 단일팀과 함께 북한의 김여정 등 고위급 인사들과 체육관련 인사들, 예술단, 응원단, 태권도단이 방남했으며 하늘길, 뱃길, 육로가 모두 열리고 단일팀 구성을 위한 회의도 수차례 진행되었다. 이로써 남과 북의 단절된 대화 채널은 자연스레 복구되었다. 덕분에 남한은 미북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북한은 국제무대에 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
 
평창겨울올림픽이 진정한 ‘평화올림픽’으로 자리잡으려면 마음의 동조가 수반돼야 했다.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끝내 불화했다면 남한 선수들의 손해를 안타까워했던 국민감정도 차가웠을 것이다. 그러나 선수들은 금세 언니, 동생이 되었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올림픽은 세계의 청년들이 모여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평등하게 경쟁하는 무대다. 무법자는 설 자리가 없다. 국가 간 원한이 있어도, 어제까지 주적 관계였어도 스포츠 정신에 입각해 서로를 대해야 한다. 비록 17일에 불과했으나 평창은 북한이건 일본이건 인류가 화해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 공간이었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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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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