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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폐의 탄생

기자
사도시 사진 사도시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은행이나 신용카드 회사 같은 중개자가 필요 없는 신뢰의 세계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주지 못했다. 내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 처음부터 사람들이 환호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반응이 진짜 별로였다. 비트코인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믿었는데 대부분 사람은 무덤덤했다. 릭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초대한 연구자 커뮤니티에 사이버펑크 운동가들이 있어. 가상세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 이들 기술자(테크니션)들이 별로 반응이 없네.”

 
사이버 펑크는 1980년대 시작된 일종의 Sci-Fi 문학의 한 장르로 출발했다. 기술의 비약적인 진보를 따라잡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을 주로 다룬다. 사이버 펑크의 세계관은 대체로 디스토피아로 그려진다. 주로 가까운 미래에 고도로 정보화된 사회에서 인간, 로봇, 인공지능 등이 서로 얽혀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이게 ‘사이버’라는 말에 담긴 내용이고 ‘펑크’라고 하는 이유는 그 내용 자체가 굉장히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정치와 도덕 질서를 해체하는 경향이 강하다. 영화를 보면 상상 속의 기술과 결합한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에 고도의 철학적 주제를 함께 담고 있다. 기업 등의 비윤리적 행위와 관련된 비밀문서를 공개하는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Wikileaks)도 이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용어사전 > 사이버펑크(cyberpunk)
사이버민주주의 : 사이버민주주의의 기수 미첼 케이퍼가 거금을 지원하고 있는 보스턴의 명물 컴퓨터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컴퓨터의 내부구조를 보여주는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사이버민주주의 : 사이버민주주의의 기수 미첼 케이퍼가 거금을 지원하고 있는 보스턴의 명물 컴퓨터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컴퓨터의 내부구조를 보여주는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사이버(cyber)와 펑크(punk)의 합성어로, 인공지능, 해커, 기업 분쟁 등을 다루며 무정부주의적, 급진적, 반항적 성격을 지닌다. 브루스 배스케의 단편 <사이버펑크>(1980)에서 비롯된 말이다. 펑크는 1970년대 이후의 저항 문화와 그 성향을 가진 집단을 가리킨다. 윌리엄 깁슨의 <뉴 로맨서>는 사이버펑크 소설의 효시로, 소설을 비롯 영화ㆍ애니메이션은 물론 패션과 디자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야. 그 친구들 한물갔어. 너무 급진적으로 세상의 변혁을 추구하다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고.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기도 하잖아.”

 
릭은 염려 말라는 투로 말을 했다.

 
“물론 그 사람들 공로도 인정하여야 해. 영화 「매트릭스」는 볼만하잖아. 사이버 공간은 그래도 꿈을 먹고 사는 건데. 비트코인도 뭐 그런 사이버 공간에서 잭폿을 터뜨릴지 누가 알아.”

 
그의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위대한 아이디어도 성숙의 시간이 필요한 거야. 대부분의 영화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사이버 공간에서 다루잖아. 그런데 네 논문과 내가 그동안 연구한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야. 너무 실망하지 마.”

 
사이버 펑크 사람들에게 익명 디지털 통화 시스템이라는 개념은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처음 구상했던 큰 그림 안에 있던 개념이다. 단지 아직 아무도 이를 실현해놓지 못했을 뿐이었다. 내가 이용한 곳은 일반인들이 주목할 인터넷사이트도 아니었다. 내 글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도 아니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해커들이 자신들끼리 노는 커뮤니티에서 그냥 글을 올렸다. 반응이 시원찮으니 화가 좀 나긴 했다. 비트코인의 존재는 여기서 선언되었다. 비트코인이 실제로 개발되어도 그 소식을 마찬가지로 여기에 올릴 것이라 생각했다.

 
“내 이메일을 받았던 대부분의 사람이 내 논문, 소위 백서(white paper)를 읽기 귀찮아하는 것 같아. 비트코인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하지 않는 걸까.”

 
릭은 듣기만 하였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어갔다.



“낙담하지는 않아. 블록체인이라는, 절대 침범되지 않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장부를 통해 누구나 거래의 유효성을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 릭. 너만 믿어. 참 나 도메인 하나 만들었어. 네게 메시지를 주마. 그 웹사이트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를 바라. 에고, 빨리 화제를 모으기 위해서는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비트코인을 생성할 프로그램을 빨리 개발하고 가동해봐야 하는데.”

 
릭은 껄껄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니? 몇 년 만에 나타나서 친구에게 재촉하기는. 좀 기다려. 나도 생각이 다 있다고. 새해가 오기까지는 안 되니까. 그리고 내가 블록체인에 상당한 조예가 깊어. 이건 사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기술이야.”

 
토렌트라는 기술이 있다. 그 개념이 바로 블록체인의 핵심 개념이다. 토렌트는 개인들 간(P2P, peer to peer) 파일 공유 프로그램이다.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파일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사용자들 간에 서로 직접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 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영화가 저장된 특정 서버에 들어가서 받아야 한다. 그런데 토렌트는 다른 사람의 개인 PC에 저장된 영화를 내 것처럼 공유하는 것이다. 내 PC에 있는 영화도 다른 사람이 공유할 수 있다. 내 것, 네 것이 없는 가상공간의 세계다. 내 PC가 중앙 서버 역할을 하기도하고 다른 사람의 PC가 중앙 서버가 되기도 한다. 나는 릭에 맞장구를 쳤다.

 
“응. 나도 알아. 현존하는 인터넷 서비스들이 99.99%가 중앙에 서버를 두고 데이터를 관리하는 건 민주적이지 못해. 나는 개인들의 단합된 힘을 보여 줄 거야.”

 
그리고 정부를 비난했다.

 
“지금 벌어지는 정부 일련의 행태를 믿지 못해. 돈 풀어서 경기는 살릴 건데. 그 돈이 네 호주머니에 들어갈 것 같아?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지. 아마 금융기관 신나는 일만 할 거야. 내가 월가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난 속죄를 하는 심정으로 여기에 숨어 지내고 있어.”

 
“오. 위대하신 형제. 플레이보이 빌이여. 속죄하시오.”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상기되었다. 은행 같은 금융기관에는 원장이란 게 있다. 모든 거래가 이 원장에 기록되고 그건 중앙 서버에 보관된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 중앙 서버 없이 데이터를 관리하려는 게 우리의 목적이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해킹이 안 되게 하는 게 블록체인 기술이다. 기존에는 해커들이 중앙 서버를 공격해 데이터를 빼내거나 조작을 하면 일시에 데이터베이스는 무너진다. 그런데 각각의 개인들이 마치 블록을 쌓아나가듯이 저장을 하면 해커가 공격할 대상이 흩어지는 것이다. 어느 하나만 해킹한다고 되지 않는다. 최소한 절반을 넘게 해킹해야 한다. 블록체인은 결국 해킹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물론 고성능 컴퓨터가 개발되면 다른 문제이긴 하다.

 
“이봐. 빌. 우리는 페이팔 같은 것을 만드는 게 아니야. 일론 머스크도 울고 갈 것을 만들 거야.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창세기나 열심히 읽고 있어.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릭은 정말 비트코인을 근사하게 만들 수 있을까? 사실 가상화폐는 흔하다. 인터넷 서비스마다 자기만의 가상화폐를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작동 방식이 이전의 가상화폐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비트코인은 주인이 없다. 특정 개인이나 회사가 운영하는 ‘캐시’가 아니다. 작동하는 시스템은 P2P(Person to person, 개인 대 개인) 방식으로, 여러 이용자의 컴퓨터에 분산돼 있다. 비트코인을 만들고 거래하고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바꾸는 사람 모두가 비트코인 발행주다. 그중 누구 한 사람을 콕 집어서 ‘이 사람이 주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비트코인을 위한 계좌를 만들 때도 신분증 검사 같은 건 필요 없다. 그냥 비트코인을 담을 ‘지갑’에 고유한 번호를 넣을 뿐이다. 숫자와 로마자 알파벳 소문자, 대문자를 조합해 만들 것이다. 한 사람이 지갑을 여러 개 만들 수 있고, 개수에도 제한은 없다. 다만 지갑을 만들 수 있는 별도 프로그램이나 웹사이트를 써야 한다. 물론 이런 비트코인의 성격은 훗날 정부 규제로 달라질 수도 있다.

 
나의 이런 생각을 지금 릭이 개발하고 있었다. 약간의 불안감이 들어 릭에게 몇 가지 말을 추가로 했다. 릭은 그런 내가 좀 못마땅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 저질렀던 세속의 더러움을 말끔히 씻어 버리고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제도권 화폐를 불결한 존재로 봐. 비트코인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조건이 있어야 해. 그리고 개인이 만드는 것이기에 지금 중앙은행이 저지르는 꼴사나운 짓은 해서는 안 된다.”

 
“알았어. 친구야. 네 의도 충분히 알아.”

 
“불안정을 유발해서도 안 되고 특정 관리자가 조작해서도 안 된다고. 설사 비트코인이 증가하더라도 제한된 선에서 인플레이션이 유발하도록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어야 해. 그래야 예측 가능성이 담보되지.”

 
“음.”

 
“비트코인의 참가자들에게 그런 것을 모두 알게 할 거야. 우리 세계에 참가하는 노드는 신뢰의 인물들이어야 해. 노드 간 거래는 중간에 금융 절차가 없기 때문에 환불이 불가능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노드 참가자가 문제를 저지른다면 그는 당연히 거래에서 거부대상자가 되어야 해. 신뢰의 바다에서 오염물질은 있을 수 없어. 이 부분만 명심해줘.”

 
잠시 있다가 릭이 내게 물었다.

 
“빌. 그런데 네 소원은 들어주겠다만 이게 정말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

 
릭에게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어떤 것도 확신하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시도 하고 싶어. 내 진실의 세계에서 그게 성공이건 실패이건 중요하지 않아.”

 
릭이 우려되는 점을 말하였다.

 
“그런데 지금 같은 중앙정부가 화폐를 만드는 세상에서 누구나 화폐를 만드는 것은 불법이잖아. 너 그 부분에 대해 답변해줄 수 있니? 그럼 나는 더욱 자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릭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건 정말 누구나가 궁금해하는 대목일 수 있기 때문이다.

 
“릭. 네가 우려하는 바를 정말 잘 이해하고 있어. 자 이렇게 설명해 보지.”

 
“말해 봐.”

 
“비트코인은 통화로서 문제를 가질 수도 있어. 물론 네가 설계한 기술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 비트코인이 만들어져 사용되는데 통화가치가 감소하거나 사용 계층 감소, 정부의 해당 소프트웨어 사용 금지 같은 것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음.”

 
“너는 그 기술을 만든 최초의 사람이 되는 거야. 그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니니. 그리고 비트코인은 영원한 거야. 어느 민주 정부도 이미 만들어진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해. 그건 재산권 침해찮아. 그리고 우리가 법정화폐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물론 달러 같은 기축통화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리고 우린 익명성을 사용할 수 있어.”

 
“뭐. 익명성. 너 그래서 일본인 이름 사용했니.”

 
“하하. 미국 정부가 e-골드(e-gold)나 자유달러 (Liberty Dollar)같은 디지털 통화 회사를 기소한 것 모르니?”

 
“그야 나도 알지.”

 
“물론 우리 것은 진일보한 것이지. 누군가 ‘비트코인은 합법입니까?, 사기입니까?’ 그렇게 물었다고 해. 나는 떳떳해. 진실을 항해하는 무법자가 될 거야. 그리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이후의 일은 이후에 생각하자.”

 
“오케이. 친구.”

 
“내가 지금 말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변호사의 조언도 받아 두었다. 물론 사람은 다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절대 해답은 없지만.”

 
나와 릭은 오랜 시간 통화를 하며 비트코인의 탄생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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