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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샷] 여고생도 했던 국군의 날 교련 행사

58년 개띠, 내 인생의 다섯컷(40) 문옥희
한국 사회에서 '58년 개띠'는 특별합니다. 신생아 100만명 시대 태어나 늘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고교 입시 때 평준화, 30살에 88올림픽, 40살에 외환위기, 50살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고도성장의 단맛도 봤지만, 저성장의 함정도 헤쳐왔습니다. 이제 환갑을 맞아 인생 2막을 여는 58년 개띠. 그들의 오래된 사진첩 속 빛바랜 인생 샷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봅니다.
 

지금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다 보니 어려운 시절의 부모님의 공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웠겠지만, 자식들을 위해 절약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었을 부모님. 조금만 더 우리랑 함께 계셨으면 맛있는 음식과 바닷가 멋진 콘도를 다니며 자식을 키운 보람을 느끼시게 했을 텐데 그저 죄송한 마음이 든다. 성인이 되고 결혼해서도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부모님보다 내 자식 걱정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남들한테 뒤질세라 예쁜 옷 사주시고 맛있는 음식 먹여주시고 산과 들로 도시락 싸서 오순도순 소풍 갔던 소중한 기억들이 생생하다. 지금은 추억의 사진으로만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태어난 이듬해인 1959년에 가족·친지와 찍은 사진이다. 나는 앞줄 왼쪽 머리 묶은 아이다.
 
1962년에 찍은 가족사진이다. 나는 사진 앞쪽 가운데에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운천에 있는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셨다. 6·25 때 함흥에서 피난 오신 아버지는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셨다. 우리 가족은 산정호수나 한탄강에서 가족 나들이를 많이 했다. 어린 시절의 운천은 아주 문화시설이 많았던 곳으로 기억된다. 아버지랑 극장도 자주 갔었고, 어쩌다 서울 나들이 때에는 종묘에 있는 함흥냉면을 즐겨 먹었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중3 때 돌아가셨다. 통일되면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 그 후에 이산가족 찾기라는 행사도 못 보셨다. 행복했던 추억만 주고 가신 아버지가 지금도 그립다. 
 
1965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학생이 한 교실에서 공부했다. 한반에 70여명이 함께 공부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웃음이 나온다. 사진은 1966년 초등학교 시절 모습이다. 나는 맨 뒷줄 좌측에서 아홉 번째에 있다. 
 
지금은 결혼하지도 않고, 결혼해서도 아기도 낳지 않는 딩크족 시대라 한다. 그러다 보니 인구 부족으로 오는 다양한 문제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저 사진을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나는 아직도 지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어 행복하다. "자랑스러운 우리 친구들아,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고 소식 자주 전하며 지내자. 우린 정말로 훌륭한 세대란 자부심을 갖고 말이야!"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교련이 학교생활에 중요한 수업 중 하나였다. 연대 참모를 했던 1975년 고3 시절 교련 행사 중 찍은 사진이다. 나는 사진 우측 앞에서 세 번째에 서 있다. 10월 1일 국군의 날에는 넓은 여의도 광장에서 전국의 학생 간부들이 모여 종합적인 행사를 했다. 생각해보면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고 뜻깊었던 행사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유달리 시위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일본대사관 앞 시위에 애국이라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 같다. 한때는 여군이 되고 싶다는 꿈도 꿨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애국심이 뜨거웠다.
 
동대문 운동장에서는 고교 야구가 뜨겁게 열렸다. 지금도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더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께서 스케이트를 가르쳐 주시기도 했다. 세월이 야속하게도 이만큼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지만 그래도 가족이 함께 이런저런 추억을 나누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누구에게나 여고 시절은 이상과 낭만, 꿈이 하늘만큼이나 높았을 것이다. 떠 있는 뭉게구름과 구르는 낙엽만 보아도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던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립다. 학창시절에 수학여행은 그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 아닐까.
 
밤잠을 설치며 기다려왔던 수학여행, 드디어 부모님의 여러 걱정을 뒤로하고 줄지어 선 여러 대의 관광버스에 나누어 타고 목적지로 향할 때면 더 이상의 신기루는 없는 듯하다. 이렇게 이름 모를 길을 따라 먼 곳으로 떠나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날개를 단 기분이었다. 조잘조잘 억눌렸던 학교 내 생활들을 다 잊어버리고 동심으로 돌아간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었다.
 
높은 산길을 구불구불 돌아 도착한 곳은 설악산과 웅장한 울산바위, 경포대해수욕장. 넓고 푸른 끝없는 바다가 신비한 줄이야. 일렁이는 파도 만큼이나 소녀들의 마음이 콩닥콩닥했다. 여러 명이 함께 머무는 숙소에서 도란도란 밤새는 줄 모르는 웃음꽃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사진은 1976년 떠난 수학여행 중 모습이다. 나는 사진 좌측 두 번째에 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추억이 있어 그 추억을 되새기며 오늘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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