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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샷] 논에서 벼 베다 접한 10·26 사태

58년 개띠, 내 인생의 다섯 컷(39) 이안열
한국 사회에서 '58년 개띠'는 특별합니다. 신생아 100만명 시대 태어나 늘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고교 입시 때 평준화, 30살에 88올림픽, 40살에 외환위기, 50살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고도성장의 단맛도 봤지만, 저성장의 함정도 헤쳐왔습니다. 이제 환갑을 맞아 인생 2막을 여는 58년 개띠. 그들의 오래된 사진첩 속 빛바랜 인생 샷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봅니다.
 
누군가의 도시락에 계란이 있고, 멸치 반찬이 있으면 부러움을 사고 으쓱하며 자랑스럽게 도시락을 펼쳐 드는 점심시간이 기억나는가. 남자끼리, 여자끼리 짝꿍이 되고 서로 짝이 모자라면 남녀가 짝꿍이 되어 공부했던 모습들도 이제는 모두의 추억일 것이다. 나는 키가 큰 편이라 제일 뒷줄에 있어 사진에는 반 친구들 모습만 보인다.
 
초등학교 때 운동회를 위해 몇 달을 준비했다. 아침 일찍부터 온 식구가 총출동해서 밤과 계란을 삶고, 운동회 날만큼은 배고픔이 없이 먹을 음식이 넉넉해서 더 즐거웠다. 
 
소고에 필요한 고깔모자는 각각 자기 것을 직접 만드는데 습자지를 사다가 빨강, 노랑, 파랑 물감을 들여 꽃을 만들었다. 공굴리기할 공을 선생님과 학생들이 직접 종이를 붙여 아주 커다랗게 만들었고, 장대에 매달린 바구니를 터뜨리는 게임에 사용될 오자미(콩주머니)를 몇 개씩 만들어 가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나는 특별히 운동신경이 좋아서 달리기를 잘했다. 1등을 하면 공책 5권, 2등 3권, 3등 1권을 줬는데 달리기를 할 때마다 거의 1등을 해 공책 앞 가운데 ‘상’자가 크게 찍힌 자랑스러운 빳빳하고 질 좋은 공책을 선물로 많이 받았다. 남자들은 기마전, 여자들은 강강술래가 운동회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어릴 때는 유난히 도로변에 코스모스 꽃이 많았다. 도로변에 흰 코스모스 꽃이 피면 올해는 백군이 이길 거야, 분홍 꽃이 많이 피면 청군이 이길 거야 하면서 온 동네가 백군, 청군으로 나눠 서로 이긴다고 잦은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운동회는 온 마을이 즐거웠던 축제였다.
 
1971년 용방초등학교 졸업사진이다. 나는 맨 뒷줄 왼쪽에 서 있다. 내가 어릴 적에는 마을마다 인구가 많았다. 당시 용방초등학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3개 반씩 1개 반 50~60여명이 편성됐다. 4~5학년 때는 학생 수가 많아 오전, 오후반 수업을 받으며 초등학교를 마쳤다. 
 
중학교는 뺑뺑이 1회로 신설된 구례북중학교에 입학해 구례북중 1회 졸업생이 됐다. 허허벌판에 지어진 건물 외 운동장 등 학교 주변 여건이 잘 정리되지 않아 ‘애교작업’이라는 명칭 아래 학생들의 고사리손으로 학교 환경조성에 일조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는 집안 사정 때문에 외지로 나가지 못하고 구례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비교적 넓은 들판이 있고, 마을 앞을 하루에 서너번 버스가 다녔지만, 당시에는 돈이 없어 3km 되는 중학교와 4km가 넘는 고등학교를 6년 동안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난다. 
 
‘이상하면 살펴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모든 공공건물에 쓰인 반공 방첩 표어가 기억난다. 꿈 많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교정에서 친구들과 잠시 휴식을 취하던 모습이다. 모자 쓴 이가 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2월 1일 자로 구례군 마산면(화엄사 소재지)에서 농촌지도소 근무를 시작했다. 그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다음 날 들었을 때, 추곡수매 현장에 나온 주민들을 비롯해 모두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것만 같은 불안감에 떨었던 생각도 난다.
 
구례군 농촌지도소에 근무할 당시 같은 사무실에서 반려자로 만난 지금의 아내(권태영)와 1988년 1월 1일 결혼하고 그해 10월 20일에 아들(현철)이 태어났다. 1992년 1월 4일 딸(소라)이 태어나면서 우리 식구는 4명의 가족이 됐다. 
 
아들이 성장하던 중 후천적 장애를 얻어 지적장애인으로 키우면서 아내는 공무원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지금까지 아들의 뒷바라지를 열심히 한 결과 아들은 잘 자라 직장생활 9년 차, 결혼 5년 차가 됐다. 
 
베트남 여성(티엠 흐엉)과 결혼해 올해 1월 10일 쌍둥이 아들을 출산하면서 아들 손주만 셋을 둔 할아버지가 됐다. 아들 가족과 한집에서 생활하는 다복한 다문화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사진은 2016년에 손자(창준)의 첫 돌을 기념해 가족 함께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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