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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가 밝힌 북한 해커 실상 "우린 저임금 노동자"

북한 해커들을 표현한 그래픽 이미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캡처]

북한 해커들을 표현한 그래픽 이미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캡처]

 
그동안 ‘북한 해커조직’의 정체는 베일에 가려졌다. 국내외 주요 기관의 해킹 주범으로 지목돼왔으면서도 정작 실체와 근거지는 불분명했던 것이다.
 
8일(현지시간) 미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해커 출신 탈북자들과 가진 인터뷰를 토대로 북한 해커들의 실상을 파헤쳤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전문 해커’라기보단 일반 북한 주민과 다를 바 없는 ‘저임금 노동자’에 가까웠다. 주요 활동 역시 바이러스 전파·정보 탈취 등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킹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이 이들의 일과였다.
 
◇“주 업무는 해킹이 아닌 불법 복제”=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중국에 거주하며 해커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탈북자 종혁(가명)씨의 사연을 자세히 소개했다.  
 
종혁씨는 어릴 적 의사의 꿈이 있었다. 하지만 학교 성적이 우수했던 그에게 북한 당국은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꿈을 접어야 했던 종혁씨는 당국의 지원으로 중국 유학길에 올랐다. 대학 생활 중에 그는 졸업 뒤엔 귀국해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될 것이란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고 매체는 전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북한 당국은 석사학위 취득을 위해 귀국한 종혁씨에게 또 다른 지시를 내렸다. “중국에 돌아가 북한 IT의 미래를 밝혀줄 연구에 매진하라”는 것이다. 종혁씨는 지시의 의미를 짐작했다. 바로 ‘조국을 위해 돈을 벌어오라(Go make money for your country.)’는 것이었다.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그림을 앞에 두고 열악한 생활을 하는 북한 해커들을 묘사한 그래픽.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그림을 앞에 두고 열악한 생활을 하는 북한 해커들을 묘사한 그래픽.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중국에 다시 건너간 그는 북한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중국 거물’의 자택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북한 명문대 졸업생들 10여 명과 생활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해커’로 불리게 된 이들은 북한이 파견한 인물의 지휘를 받았다. 프로그래머 출신이 아닌 그는 “수석 대표(chief delegate)”라고 불렸다. 북한 당국이 보낸 경호원들도 함께 머물며 해커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해커들의 일과는 프로그램 복제 및 판매였다. 종혁씨는 “비디오 게임·보안 프로그램 등 상업성 소프트웨어를 구한 뒤 이를 복제해 온라인에 판매하는 식으로 돈을 벌었다”며 “제작 의뢰는 중국·한국을 비롯, 전세계에서 들어왔다”고 밝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반면 실제 해킹에 들이는 시간은 적었다고 한다.
이어 그는 “우리 일은 랜섬웨어(바이러스) 전파·남한의 국방 첩보 입수 등 전문적 해킹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북한은 돈벌이만 된다면 훔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시켰다”며 국내외 해킹 공격과 북한과 연계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고 매체는 전했다.
 
◇목표 미달성시 중노동까지=종혁씨에 따르면 중국의 북한 해커들은 매년 10만 달러 이상 수익을 올려야 했다. 그는 “목표치를 달성하면 그 대가로 전체 10%(1만 달러) 미만의 수당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목표치(10만 달러)를 달성한 이들은 수당을 두둑히 챙길 수 있었다. 무더운 여름엔 에어컨을 쓸 수 있었고, 쉴 때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같은 오락 게임을 할 자유까지 주어졌다.
반대로 할당된 목표치를 달성 못한 해커에겐 처벌이 따랐다. 가볍게는 강제 귀환, 수당 미지급 등의 처벌을 받았지만 중노동 등에 처해진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그는 전했다.
 
지난 8일 북한군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EPA=연합뉴스]

지난 8일 북한군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EPA=연합뉴스]

 
또 매주 주말에는 평양에서 공무원이 찾아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철학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념 강의를 펼쳤다고 한다.
종혁씨는 이런 생활을 이어간 북한 해커들을 ‘가난한 저임금 노동자 집단(a bunch of poor, low-paid laborers)’이라고 묘사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 곳곳의 대다수 북한 해커들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였다. 제때 배식을 받지 못해 굶주리거나, 폐결핵에 걸리는 일도 허다했다. 옌지의 북한 해커는 잠을 자던 중 바퀴벌레가 귓속에 들어가 응급 치료를 받았고, 베이징의 한 해커는 남한 사업가로부터 김치를 전달받았다는 이유로 갈비뼈가 모두 으스러질 정도로 동료 해커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블룸버그는 다른 해커 출신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도 전했다. 해커 시절 이들은 중국에서 아이폰을 팔거나, 가짜 신분증을 이용해 온라인 쇼핑 홈페이지 개발 회사에 취업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비서실 안보특별보좌관 출신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해킹 전략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며 “북한 정부는 해킹으로 경계 태세를 갖추고, 수익도 올리고 있다”고 블룸버그에 설명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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