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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핵으로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73년째 두 동강 나 전쟁과 평화의 경계에 서 있는 한반도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일도 벌어진다. 북한이 쉴 새 없이 핵을 터뜨리고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화약 냄새가 진동하더니 어느새 서울과 평창에서 화해의 축가가 들려오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내려온 ‘백두혈통’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응원했다. 전 세계의 관심은 김정은이 제안하고 문 대통령이 받아들인 남북 정상회담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의 펜스 부통령은 ‘외교 결례’라는 비판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의도적으로 북한 김여정과 김영남을 무시했다. 남과 북, 미국이 각자의 카드를 던진 셈이다. 한반도의 운명은 다시 한번 전쟁과 평화의 시험대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마침내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탑승했다. 김여정은 오빠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한 뒤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시기 바란다”고 했다. ‘통일의 주역’이 되려면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다. 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 가자”고 했지만 실질적 열쇠는 “이른 시일 내에” 성사시키자는 북이 쥐고 있다.
 
문제는 한·미, 북·미 관계다. 2000년 1차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한·미 관계가 좋았고,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다. 2007년 2차 정상회담 전에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핵 2·13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어렵다. 정상회담으로 가기 위해서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김정은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지난해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 세 차례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고,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게 됐다면서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의의 보검’이라는 핵이 고도화하면서 고통스러운 초강경 제재가 이뤄졌다. 미국이 주도하고 ‘혈맹’ 중국이 적극 가세한 제재가 유지되면 정권 창건 70주년을 맞는 올해 9월 9일 무렵에는 김정은 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하경칼럼

이하경칼럼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며 트럼프를 자극했다. 하지만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달러와 물자는 들어오지 않는다. 대외의존도가 50%까지로 높아진 북한 경제는 무너지게 된다. 핵이 ‘보검’이 아니라 점점 애물단지가 돼 가고 있다.
 
미국도 완전히 달라졌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아니다. 북핵을 방치할 생각이 없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김정은을 확실하게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선 북한에 대한 제한적 선제타격을 의미하는 코피(bloody nose) 전략까지 등장했다. 여기에 반대한 한국계 빅터 차는 주한 미국대사 내정을 취소당했다. 이 무렵 상원은 군사위원회 청문회를 열어 북핵에 대응할 군사적 옵션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고, 국제법과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면서 예방적 군사력 사용을 반대했다. 대북 선제타격 카드가 검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김정은이 서둘러 평화 공세에 나선 것과 무관치 않다.
 
북한은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김정은은 인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어렵게 핵 무력의 완성을 선언한 뒤 오히려 고립과 빈곤, 체제 붕괴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 몇 개로 압도적 군사 강국 미국을 상대로 싸울 능력이 없다. 북한의 핵 위협이 계속되면 한국·일본·대만도 핵무장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만에 하나 한국이 핵무장을 하는 상황이 오면 북한의 핵 보유 이점은 즉시 사라진다. 경제력이 40분의 1에 불과하고 재래식 전력도 열세인 북한으로선 최악의 결과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대화의 불씨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올림픽 기간 중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했고, 유엔과 미국을 설득해 대북제재 예외 조치를 이끌어냈다. 전쟁을 막기 위한 충정이다. 하지만 제재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국은 불만이다. 이 정부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인 2030세대조차도 시큰둥하다. 천안함·연평도 도발과 목함지뢰, 핵 개발을 보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비핵화에 입을 꾹 다물고 정상회담을 제재 완화 카드로 이용하겠다면 문재인 정부를 사면초가에 몰아넣는 어리석은 선택이다.
 
펜스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올림픽 성화가 꺼지면 대북 관계의 해빙도 함께 꺼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게 미국의 본심이다. 미국은 “빛 샐 틈 없는” 강력한 제재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올림픽 성화가 꺼지기 전에 비핵화에 대해 성의 있는 입장을 내놔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남과 북이 함께 사는 길이다. 핵으로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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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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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