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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평창 온 북녘 손님 … 눈이 두 개 뿐인 걸 후회토록 해야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 세계 92개 국가에서 2925명이 출전하는 국제 스포츠 축제다. 그런데 ‘평양’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선수단보다 예술단·응원단 등 말 그대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북한의 평창행에 우리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남북 단일팀과 공동 입장, 한반도기 사용 등을 둘러싼 논란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의 불편한 기색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평양올림픽이냐’는 물음을 멈추지 않는다. 속속 평창 땅을 밟고 있는 북한 손님들을 우리는 어떤 자세로 맞아야 할까.
 

김대중(DJ) 정부 때인 2002년 10월 서울에 온 북한 고위급 경제시찰단은 화려한 야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산 서울타워에 올라 마천루(摩天樓)와 불야성을 마주하면서다. 숙소로 돌아가던 일행은 동대문 쇼핑몰의 흥성이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북측은 차를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곤 ‘남조선 경제 배우기’를 위한 즉석 현장수업을 했다. 한 북측 인사는 “눈이 두 개밖에 없어 더 많이 볼 수 없는 게 안타깝구만…”이라고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북한 경제의 사령탑 격인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을 비롯한 18명의 시찰단은 충격의 7박 8일을 보냈다. KTX 경부선 구간을 시승한 이들은 시속 300km를 돌파하자 일어나 박수를 쳤다. 남한 사정을 좀 안다고 자신하던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도 기흥의 삼성전자 생산라인을 돌아보다 무너졌다. 김치냉장고에 사로잡혀 눈길을 떼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떠난 후 정보 당국이 판문점을 통해 김치냉장고를 몰래 보내준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당시 시찰단을 동행했던 정부 당국자는 “서울을 떠나기 전날 밤 짐을 꾸리며 ‘평양에 가서 시계방을 차려도 되겠다’고 하던 한 북측 인사의 말이 인상 깊었다”고 회상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번 겨울올림픽 개막 당일인 9일 평창에 올 북한 고위대표단의 비중은 예상보다 중량급이다. ‘명목상 국가 수반’이란 기이한 수식어가 붙지만 김영남(90)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북한 체제의 정상급 외교를 담당해왔다. 북한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합의한 ‘김정일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김영남을 대신 보내는 카드를 한 때 타진해 온 적도 있다. 집권 7년 차에 이르도록 제대로 된 정상회담이나 해외방문 한 차례 못한 김정은(34) 노동당 위원장으로선 차선책일 수 있다.
 
가수 출신 현송월이 단장을 맡은 140명 규모의 예술단에도 관심이 쏠린다. 점검단으로 이미 서울과 강릉을 다녀가면서 ‘현송월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스폿라이트를 받았다는 점에서다. 북한도 이들 일행의 5일 평양역 출발 소식을 관영매체로 전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평양역에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환송 나왔다는 건 북한이 강릉(8일)과 서울(11일)에서 펼칠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정은이 ‘노래폭탄’이라고 규정한 악단의 대남선동 출정식을 여동생을 통해 직접 챙기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의 겨울올림픽 참가 자체를 탓하기는 어렵다.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을 멈추고 평창에 오겠다는 김정은의 결정으로 참가 국가나 선수·관광객 등의 불안감이 누그러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남한 방문 일정 등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하고, 잔칫상에 주인행세를 하려들면서 상황은 꼬였다. 북한 관영매체는 대통령과 정부 인사, 언론 등을 겁박하는 대남비방을 쏟아냈다. 타오르는 국민의 대북감정에 기름을 부은 건 우리 정부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우리 선수들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등 무리수를 뒀다. 북한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더니 급기야 북한 감싸기까지 벌여 눈총을 받았다.
 
평창올림픽은 북한에게 뜨거운 감자다. 애초 일반 주민에게 ‘남조선 올림픽’ 개최는 알리지 말았어야 할 금기어다. 하지만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천기누설을 하면서 산통이 깨졌다. 북한 당국의 당혹감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노동신문에서는 ‘평창’이란 단어가 사라진 채 “제23차 겨울올림픽에 가는 우리 대표단”등으로 자그맣게 소개된다. 현송월의 서울 방문 사진을 실으면서 주변 고층 빌딩 등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 안간힘을 쓴 흔적도 드러난다. 지난달 판문점 고위급 회담 때 북측이 요구해 합의문에 담은 ‘북 참관단 남한 방문’은 슬그머니 빠졌다. ‘참관’이란 용어 자체가 ‘더 나은 곳에 가서 배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을 뒤늦게 파악하고 당혹했을 수 있다.
 
500명 안팎의 북측 인원을 서울과 강릉·평창 등 남한 곳곳에 장기 체류토록 하는 것도 북한으로선 큰 부담이다. 6일 남한에 온 북한 예술단의 이동수단이 당초 판문점 경유에서 경의선 육로로 바뀌었다가 최종적으로 만경봉호를 이용한 원산~묵호 항로가 된 것도 북한 내부의 복잡한 사정을 엿보게 한다. 만경봉호를 앞세워 대북제재의 틈을 벌리려는 의도도 깔렸겠지만, 선박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장점에 더 끌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부 접촉을 최대한 줄이고 통제를 손쉽게 하자는 뜻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북한은 이미 그 효과를 검증한 바 있다.
 
2002년 경제시찰단 단장으로 왔던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은 김정은이 주도한 화폐개혁 실패의 희생양으로 처형됐다.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당 제1부부장도 반체제 혐의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 때 밀사로 서울에 왔다 돌아간 유경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부부장도 간첩죄로 처형당했다. 북한 고위 인사들에게 ‘남조선행’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적진에 들어가 장군님의 전사로…” 운운하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니란 얘기다. 김영남도 현송월도 이런 스트레스의 예외일 수 없다.
 
평창올림픽에 오는 북한 손님은 대부분 20~30대 젊은 선수와 예술인, 여성 응원단이다. 누구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데다 북한에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영위해온 계층이다. 이미 북한에 상륙한 한류와 외래 문물에 눈뜬 세대일 공산이 크다. 눈을 아무리 질끈 감고 시선을 돌려봐도 동공을 파고드는 그 자극을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올림픽을 개최할 정도로 세계적 수준에 오른 대한민국과 피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상이 교차 상영된다면 심적 동요는 클 수밖에 없다. 서울~강릉 간 KTX의 쾌속 질주와 서울의 강남대로·코엑스, 강릉·평창의 곳곳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 커튼이 내려진 창틈으로 북녘의 젊은 체육인과 예술인들은 목도할 것이다. ‘헐벗고 굶주린’ 체제로 교육받아온 남한의 실화(實畵)를. 그들은 북한에 그 충격파를 고스란히 전하는 민들레 홀씨가 될 수 있다. 이들 모두 눈이 두 개뿐인 걸 후회할 수 있도록 손님맞이 채비를 꼼꼼히 해야 한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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