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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뒤흔든 '몽골 혐오' 스모전쟁…시작은 술집 폭행사건

 "이건 스모 먼로주의다." 
일본 스모계의 사정에 밝은 재계 고위 인사가 이런 말을 툭 던졌다. 지난해 11월이후 3개월 동안 일본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스모 정국’을 언급하면서다. TV만 틀면, 낮이든 밤이든, 연말이든 연시든, 만사를 제쳐놓고 단연 최고의 화제는 스모였다.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소동의 본질을 이 인사는 제임스 먼로 미국 대통령(1758~1831)이 주창했던 고립주의에 빗댄 것이다. 일본 특유의 배제와 고립 근성이 표출된 ‘스모 먼로주의’라면서 말이다.
스모 선수들이 경기 시작에 앞서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스모 선수들이 경기 시작에 앞서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발단은 10월 26일 새벽 돗토리(鳥取)현 술집에서 벌어진 폭행사건이다. 전인미답의 40회 우승을 기록한 현역 최강 하쿠호(白鵬·33)를 비롯해 하루마후지(日馬富士·34), 가쿠류(鶴竜·33) 등 요코즈나(스모 선수들중 가장 높은 계급) 3인방과 후배들이 모인 몽골 출신 선수들의 2차 술자리였다. 
 
후배들의 태도 불량을 지적하는 하쿠호의 설교 때 후배 다카노이와(貴ノ岩)가 휴대전화를 만지작댔고, 이에 격분한 2인자 하루마후지가 다카노이와의 머리와 얼굴을 맨손과 노래방 리모콘으로 때렸다. 다카노이와는 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렸고, 우여곡절끝에 회식은 끝났다. 다음날 피해자인 다카노이와가 가해자인 하루마후지에게 ‘죄송했다’고 사죄했고, 두 사람은 악수로 화해했다. 이렇게 끝나는가 싶던 폭행 사건이 이후 3개월간 일본을 들었다 놓게 된다.    
 
몽골 출신 스모 선수로 요코즈나에 오른 하쿠호가 2013년 1월 9일 일본 도쿄 메이지신궁에서 신년 맞이 행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몽골 출신 스모 선수로 요코즈나에 오른 하쿠호가 2013년 1월 9일 일본 도쿄 메이지신궁에서 신년 맞이 행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 사건이 2017년 일본 최고의 뉴스 반열에 오르는 데엔 이 스모 드라마의 '주연'으로 등장한 다카노하나(貴乃花·46)의 역할이 컸다. 그는 90년대 초·중반 형 와카노하나(若乃花)와 함께 ‘와카-다카 피버(fever·열병)’로 불리는 신드롬을 일으킨 '헤이세이(平成ㆍ1989~) 시대' 최고의 스모 스타다. 
 
역시 국민적 스타였던 여배우 미야자와 리에(宮沢りえ ·45)와의 약혼과 파혼 스토리도 유명하다. 미야자와 집안의 반대로 파혼하면서도 "사랑이 식었다"며 책임을 자신이 뒤집어쓴 것도 영웅담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런데 돗토리현 폭행사건의 피해자 다카노이와가 하필이면 다카노하나의 제자였다. 스모선수는 ‘헤야(部屋)’로 불리는 도장에서 철저하게 도제방식으로 육성되는 만큼 제자에 대한 스승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11월 중순 폭행사건이 만천하게 공개된 뒤 다카노하나는 스모협회의 진상조사를 거부했다. 이런 모습이 '스모계의 낡은 관행','함께 몰려다니며 파벌을 형성하는 몽골 세력' 등에 대한 선전포고로 비쳐지며 그는 스모 개혁의 아이콘으로 뜨게 된다.  
 
전 요코즈나인 다카노하나의 현역 시절 모습. [중앙포토]

전 요코즈나인 다카노하나의 현역 시절 모습. [중앙포토]

 
다카노하나와 약혼했다가 파혼한 일본 여배우 미야자와 리에의 젊은 시절 모습. [중앙포토]

다카노하나와 약혼했다가 파혼한 일본 여배우 미야자와 리에의 젊은 시절 모습. [중앙포토]

 
사실 일본 스모는 이미 몽골세가 장악하고 있다. 몽골 스모와 레슬링으로 단련된 몽골 선수들은 90년대 초부터 일본에 진출했다. 2000년대 들어 요코즈나에 오른 5명중 4명이 몽골 출신, '스모는 국기(國技)이자 문화이자 정신'이라던 일본은 기가 단단히 죽어있다. 
 
이번 폭행사건으로 하루마후지가 은퇴하기전까지 현역 요코즈나 4명 중 3명이 몽골인이었다. 그나마 지난해 19년 만에 배출된 일본인 요코즈나 기세노사토(稀勢の里寛)에 대해선 계급에 맞는 실력을 갖췄는지 논란의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  
  
폭행사건 뒤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시키듯 극성 스모팬들과 보수 언론들은 몽골 출신 선수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특히 최강자 하쿠호에 대해선 "설교가 없었으면 폭행도 없었을 것…원흉은 하쿠호"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쿠호가 ‘몽골리언 팀(mongolian team)’이란 영문이 쓰여진 운동복을 입은 것도, 그가 과거 다카노하나를 향해 불만을 표출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불에 기름을 부었다. 가는 곳마다 "다카노하나와 싸우지 말라"는 항의가 빗발쳤고, "하쿠호를 꼭 죽이겠다"는 투서까지 등장했다. 
 
하쿠호가 사용하는 ‘하리테(손바닥으로 뺨을 치는 것)’,‘히지우치’(팔꿈치 공격)에 대해서도 "요코즈나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이를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하쿠호는 1월 첫 대회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중도 포기했다.
 
2016년 9월 16일 몽골 출신 선수들인 하루마후지(왼쪽)와 다카노이와가 경기를 하고 있다. 하루마후지는 지난해 10월 건방지다는 이유로 후배인 다카노이와를 폭행하는 물의를 빚었다. [AP=연합뉴스]

2016년 9월 16일 몽골 출신 선수들인 하루마후지(왼쪽)와 다카노이와가 경기를 하고 있다. 하루마후지는 지난해 10월 건방지다는 이유로 후배인 다카노이와를 폭행하는 물의를 빚었다. [AP=연합뉴스]

 
스모협회는 또 다른 표적이었다. 흥행을 위해 몽골 출신들의 눈치를 보고 휘둘린다는 불만때문이었다. 협회가 폭행 현장에서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쿠호에게 '감봉 처분'을 내리자 "경징계"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반대로 일본 스모의 순수성을 지켜낼 '개혁의 아이콘' 다카노하나의 존재감은 점점 더 부각됐다. 사건 발생 두달 뒤까지 협회 진상 조사를 거부하며 소동을 키웠지만 일부에선 이를 몽골 파벌을 해체하고 썩은 스모판을 뒤엎으려는 거인의 포석'으로 평가했다. 
 
심지어 다카노하나가 지난해말 ‘이치몬(一門ㆍ일문)'으로 불리는 '스모 문중'의 망년회에서 불렀다는 노래 '용사들'과, "버리지마라, 남자라면 싸워라, 최후에 이겨야 하지 않겠나”라는 가사 내용까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가 됐다. 그가 두르고 다니는 목도리도, 항상 굳은 표정인 그가 살짝 웃기만 해도 뉴스거리였다.  
 
제자가 폭행당한 사실을 스모협회에 곧바로 보고하지 않았고, 진상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이유로 그는 지난해말 협회 이사직에서 해임됐다. 국민적인 관심을 등에 업은 그가 이사 선출 경선 출마를 결심하면서 일본인들의 이목은 다시 스모계로 집중됐다. 하지만 그는 결국 낙선했다.       
 
지난해 11월 16일 몽골 출신 하루마후지 선수가 폭행사건의 책임을 지고 은퇴 의사를 밝힌 뒤 마스크를 쓰고 하네다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하루마후지는 같은 달 29일 정식 은퇴했다. [AP=연합뉴스] I

지난해 11월 16일 몽골 출신 하루마후지 선수가 폭행사건의 책임을 지고 은퇴 의사를 밝힌 뒤 마스크를 쓰고 하네다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하루마후지는 같은 달 29일 정식 은퇴했다. [AP=연합뉴스] I

 
최근 들어 일본 언론에서도 "몽골 선수들을 대상으로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풍조가 드러났다"는 반성이 나오는 걸 보면 ‘스모 먼로주의’가 과장은 아니다. 게다가 최근엔『몽골의 역사(力士)들은 왜 미움을 받는가』라는 책까지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미야자키 준코(宮脇淳子)는 이번 소동의 본질을 '문화 간 충돌'로 봤다.  
과거 유라시아를 호령했던 몽골과 고립되고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온 일본의 문화 차이, 유목 민족 대 농경 민족 간의 가치관 차이가 ‘스모’라는 지점에서 충돌했다는 것이다. 또 ‘힘과 승리가 전부’인 몽골식 신조와 그것이 전부가 아닌 일본 정신 간의 갈등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이런 차이를 배경으로 몽골 출신들의 독주에 잔뜩 기가 죽어 있던 일본 스모팬들의 자존심과 설움이 폭행사건을 계기로 일본 사회 특유의 고립ㆍ배제주의적 양상으로 폭발한 셈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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