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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금강산서 춤추고 노래? 박왕자씨 비극 벌써 잊은거냐"

“민간인이 북한의 관광지에서 군인 총에 죽은 일입니다. 북한의 거부로 진상조사조차 못했고요. 그 일을 잊은 건지, 일부러 잊은 척하는 건지….”
2008년 금강산에서 피격당해 숨진 고 박왕자씨의 외아들 방재정씨가 서울 여의도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2008년 금강산에서 피격당해 숨진 고 박왕자씨의 외아들 방재정씨가 서울 여의도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방재정(33)씨는 말을 이으면서 종종 눈물을 참으려 천장을 바라봤다. 그는 10년 전 금강산 관광단지에서 북한 초병이 쏜 총에 사망한 고(故) 박왕자씨의 외아들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적어도 정부만큼은 이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비극을 잊지 않는 게 정부의 의무다”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2008년 2월 강원도 속초에서 찍은 방재정(가운데)씨의 가족사진. 방씨는 군 전역 기념으로 떠난 속초 여행이 어머니와 떠난 마지막 가족여행이 됐다고 했다. [사진 방재정씨]

2008년 2월 강원도 속초에서 찍은 방재정(가운데)씨의 가족사진. 방씨는 군 전역 기념으로 떠난 속초 여행이 어머니와 떠난 마지막 가족여행이 됐다고 했다. [사진 방재정씨]

 
2008년 7월 11일 새벽, 어머니 박씨는 2박 3일 일정으로 친구들과 여행 간 금강산에서 사고를 당했다. 금강산 관광은 전업주부인 박씨가 결혼 후 처음으로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이었다고 한다. 당시 방씨는 갓 군에서 제대한 대학생이었다. 어머니가 집을 나서며 “엄마 없는 동안 밥 잘 챙겨 먹어. 금방 다녀올 게”라고 한 게 마지막 말이었다.  
 
북한군이 한국 민간인을 총으로 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당시 북한은 “관광지구의 규정을 어기고 군사통제구역 안에 들어간 관광객이 경고를 무시하고 달아나다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이라며 “(남한 당국이) 왜 관광객들에게 주의사항을 잘 알려주고 철저히 지키라고 강조하지 못했는가”라고 남측 책임을 물었다.
 
유족들은 “북한의 설명은 어느 하나 납득할 게 없다”며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북한은 거부했다. 유족이 우리 정부로부터 들은 말은 “북측에 공동조사를 요구했지만 받아주지 않아 답답하다”였다고 한다.
 
북측의 민간인 총격과 조사거부로 10년간 이어지던 햇볕정책도 급속히 얼어붙었다. 금강산 관광은 전면 폐지됐고, 이듬해 천안함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북한과 대부분의 교류를 끊는 ‘5ㆍ24 대북조치’가 단행됐다.  
방재정씨의 군 복무 시절 외박을 나와 찍은 가족사진. 방씨는 강원도 양구군 최전방 부대에서 복무했다. [사진 방재정씨]

방재정씨의 군 복무 시절 외박을 나와 찍은 가족사진. 방씨는 강원도 양구군 최전방 부대에서 복무했다. [사진 방재정씨]

 
방씨는 “남북교류가 끊어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공동입장과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에 대해서도 그는 “정부가 어쨌든 남북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로 보인다. 일단 대화 물꼬라도 터야, 재발 방지 요구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만 본격적으로 교류가 재개되기 전에 정부가 민간인 피격 사건을 짚고는 넘어가 줬으면 한다”며 “우리에게 사과나 배상을 하라는 게 아니라 앞으로 우리 국민 중 제2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재발 방지 약속만큼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차분한 어조로 말하던 그는 남북합동공연을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동계올림픽 전야제 성격으로 오는 4일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북한과 합동공연을 추진해 공연 가수 명단까지 확정했지만, 지난달 29일 북측이 돌연 취소시켰다.
 
그는 “금강산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한 민간인 관광이 허용된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비극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를 고려하고 결정했는지 궁금하다. 결과적으로 합동공연이 취소되긴 했지만, 재발 방지 언급도 없이 남과 북이 금강산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광경은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며 깊은 한숨을 여러 번 내쉬었다.  
 
금강산 얘기에 잠시 말을 멈췄던 그는 대뜸 인터뷰에 응한 계기를 말했다. “규명되지 않은 무고한 국민의 죽음이 있었고, 그 사실이 잊히지 않게 하는 게 내 몫인 것 같았다. 국가만큼은 이 일을 잊지 않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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