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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왼다리와 자유를 바꾼 남자··· 꽃제비서 트럼프 초청 받기까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국정연설 가운데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은 탈북자 지성호(35)씨가 울먹이며 목발을 번쩍 치켜드는 순간이었다고 미국 언론은 전하고 있다. 북한의 참혹한 인권상황으로부터 왼손과 왼다리를 맞바꾸고 자유의 품에 안긴 청년 지성호에게 현지 언론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울먹이며 목발을 번쩍 들어올린 탈북자 지성호씨. [AFP=연합뉴스]

울먹이며 목발을 번쩍 들어올린 탈북자 지성호씨. [AFP=연합뉴스]

 
국정연설 다음날인 31일(현지시간) 백악관 내 프레스 브리핑룸을 방문한 지씨에게 미국 주요 언론이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신체 일부를 잃었나, 어떻게 저런 몸으로 목발을 짚고 중국에서 라오스까지 1만㎞를 걸어왔을까, 꽃제비 출신에서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기까지 그의 모든 인생 역정이 기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국정연설에서 “성호씨가 서울에 거주하면서 다른 탈북자들을 구출하고,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인 북한의 진실을 알리고 있다”면서 “그의 이야기는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모든 인간의 열망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칭송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23일 인터뷰한 내용을 기초로 그의 인생스토리를 담아냈다.
 
지성호씨의 이야기는 1990년대 기근이 극심했던 함경북도 두만강 근처에서 시작된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다. 이 곳에 있는 가로 50㎞, 세로 32㎞의 거대한 수용소에 갇힌 수만 명이 캐낸 석탄이 중국이나 러시아로 수출되고 있었다.
 
탈북자 지성호씨가 31일(현지시간) 백악관 프레스 브리핑룸을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탈북자 지성호씨가 31일(현지시간) 백악관 프레스 브리핑룸을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씨는 “죄수들이 매일 할당된 석탄을 캐지 못하면 탄광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
1995년부터는 북한 정부 차원의 식량배급이 중단됐다. 그의 부모와 여동생, 남동생은 산에서 풀을 베어 와 죽을 쒔다. 

 
그는 “단단한 나무 껍질 아래에 부드러운 층이 있는 나무가 있는데, 이 부분을 긁어내 끓여 먹었다”면서 “ “나무 껍질과 옥수수 녹말을 섞어서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회상했다.
 
수확한 농작물을 다 먹고나면 땅을 파 뿌리도 캐서 먹어치웠다. 모든 게 다 사라지자 공산당원은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는 흙을 먹으라고 권했다고 한다. 그의 할머니는 이때 굶어 죽었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은 세계에서 식량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였다. 그러나 지씨는 “그런 건(원조물자) 구경도 못했다”고 밝혔다.
 
그 때부터 열차에 올라타 석탄을 훔치기 시작했다. 이걸 가지고 암시장에 가면 옥수수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14살이던 96년 3월 추운날. 천천히 움직이던 석탄수송 열차에 올라탄 지씨는 화물칸 사이를 점프했지만 미끄러져 열차 밑으로 빨려들어갔다. 너무 못 먹어서 현기증이 났던 것이다.
 
군인들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고, 마취제도 없이 왼손과 왼다리를 절단했다. 너무 큰 고통에 정신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지성호는 죽고싶었다. 가족에게 걸림돌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죽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부터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만 생각했습니다.”
31일(현지시간) 백악관 프레스 브리핑룸을 방문한 탈북자 지성호씨. 14살에 기차사고를 당해 왼손과 왼다리를 잃었다. [AP=연합뉴스]

31일(현지시간) 백악관 프레스 브리핑룸을 방문한 탈북자 지성호씨. 14살에 기차사고를 당해 왼손과 왼다리를 잃었다. [AP=연합뉴스]

 
아버지가 목발을 만들어줬다. 국정연설장에서 들어올린 그 목발이었다. 목발을 짚고 열차에 올라타 석탄을 훔쳐 간신히 먹고 살았다.
 
탈북은 2000년에 결심했다. 중국으로 건너가 구걸로 쌀을 구해왔는데, 북한군 병사들에게 쌀을 빼앗기고 심하게 구타까지 당했다.  
 
결국 2006년 남동생 철호와 두만강을 익사할 뻔 하면서 건너 탈북했다. 어머니와 여동생도 나중에 탈북에 성공했으나, 아버지는 이 과정에 붙잡혀 고문을 받다 숨을 거뒀다.
 
지씨는 목발을 짚고 갖은 고생 끝에 동남아에 도착, 6개월뒤 서울에 안착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과도 상봉했다. 한국에 온 뒤로는 의수와 의족을 하고 다닌다.
 
2010년부터 북한인권청년단체 ‘나우(NAUH)’를 조직해 제3국에 체류하는 탈북자들을 돕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의 옥시데이 재단으로부터 ‘불의에 맞서 싸운 용감한 사람’으로 선정돼 ‘커리지 어워드’를 받았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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