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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할 일 (굿바이 J Plus)

기자
전새벽 사진 전새벽
꾸준하게 글쓰기를 삶의 미션으로 삼고 사는 내게, 글을 쓸 곳이 없다는 것처럼 서글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 J Plus가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건 적잖은 충격이었다. 지난 1년간 꾸준하게, 제법 열심히 썼으므로 아쉬움도 컸다. 그러나 언제까지 충격에만 휩싸여 있을 수는 없는 법. 이제부터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지면을 잃는다는 건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작가로서의 삶이 끝장난다는 것일 게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조금도 비유적이지 않은 말로, ‘삶을 끝장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래, 뜬금없지만 지금부터 대한민국 자살률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자살얘기가 나오면 언론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OECD국가중 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를 수년 쨰…’ 이렇게 운을 떼는데, OECD고 나발이고 일단 주변에도 너무 많다. 옥상으로 올라가고, 차 안에서 연탄불 피우고, 한강 다리를 찾아 갔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말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자 얼마전 정부가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의도는 알겠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보건복지부가 소개하는 자료에 따르면 일단 지난 5년 간 자살한 7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하겠단다.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자세히 물어보고 싶지만 일단은 ‘정부가 팔을 걷었다’라고만 이해하고 지켜보련다.

정부가 빅데이터 처리기술을 쓰고 싶어 안달을 내고 있는 동안 나는 생각에 잠겨본다. 자살 예방이라… 꼭 필요하긴 한데 대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걸까? 이에 대해 보건의약 전문지인 약업신문은 오늘자 오피니언에서 이렇게 썼다.

성공적인 자살률 감소를 위해서는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민간 3박자가 맞아야 한다. 
음, 글쎄. 정부는 뭘 하고 의료계는 뭘 하고 민간은 뭘 해야 한다는 걸까? 3박자가 어떻게 맞아야한다는 것이든,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자살예방은 정부, 의료계 등과 같은 거대담론에 맡길 일이 아닌 것이다.

전쟁 후, 대한민국은 치열하게 싸워왔다. 무엇보다 ‘가난’이란 적과 싸웠다. 통계를 보면 지금까지꽤 많이 물리쳐낸 것 같다.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의 가난이란 전과 비교해서 꽤 많이 줄었을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누구랑 싸워야 하나 놓고 보니 싸울 대상이 명확하지가 않았다. 사람들은 싸울 대상을 가짐으로써 삶의 목적이 명확하기를 바랐다. 이에 맞춰 정부가 경제성장을 부르짖고 미디어가 나서서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니 가난이 어느 정도 정복된 뒤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돈벌이에 목숨을 걸었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박차를 가했다. 끊임없이 올라야 하는 사다리 게임 속에 성찰도 사색도 나중으로 미뤘다. ‘일단은 벌고’가 모두의 모토였다. 성찰하지 않는 자아는 관념과 싸워내지 못했다. 남들만큼 못 벌면 불행하다는, 남과 다르면 비정상이라는 관념들에 갇힌 사회는 수많은 패배자를 배출해냈다. 사회에는 범죄자를 수용하는 시설은 있어도 패배자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옥상으로 올라가고,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한강 다리를 찾아갔다.

사태가 한강 다리에서 번호표를 뽑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자 정부가 나섰다. 국가 행동계획이라고 거창하게 발표를 했다. 자살자 7만명을 전수조사한다는 발상은 자살의 원인이 자살한 사람 개개인에게 있다는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 그들은 병든 것이 사회임을 인정하기 싫었던 걸까, 인지하지 못했던 걸까? 그런데 헛다리를 짚는 정부만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정부가 나서서 ‘우리는 모두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돈에 목숨 그만 걸고 서로 사랑을 합시다’라고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런 것들은 정부의 역할이 아니니까.

할 일은 정부가 아니라 모든 개인에게 있다. 바로 ‘관념’과 싸우는 것이다. 이쪽 이념은 위험하고,저쪽 이념은 천박하다는 주장, 동성애자면 비정상이라는 판단, 비신자는 지옥에 갈 것이라는 생각, 국민의 1번 덕목은 애국이라는 믿음, 적게 벌면 패배자라는 착각, 싸워야 할 관념들은 너무나 많다. 우리가 할 일은 문화유전자가 심어 놓은 이 관념들을 처부수고, ‘만족도란 가진 것 나누기 갖고 싶은 것’ 이란 단순한 사실을 깨닫고, 할 일은 분자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분모를 줄이는 것이란 걸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다. 모든 전투에는 무기가 필요하듯 관념과의 싸움에도 무기가 필요하다. 지성과 도덕이란 강력한 무기다. 오로지 공부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얻는데 오래 걸리는 무기다.

작가로 살아가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작가의 의무는 관념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싸우기 위해 이제부터 할 일은 새로운 지면을 찾는 일, 그리고 그동안 졸작들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전하는 일일 것이다.
 
독자 여러분

오늘 이 산문은 J Plus에 기고를 시작한 뒤 쓰는 50번째 글입니다. 이 글을 끝으로 J Plus를 통해 여러분들을 만나는 일은 끝이 납니다. 그동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지만 저는 어디서든 뭔가를 계속 쓰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읽기를 멈추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언젠가 또 만날 것입니다.

그리움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날은 서쪽 바다를 향해 시선을 두십시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먼 곳에서 우리의 시선이 만날지도 모릅니다.

2018년 1월 31일
새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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