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감동

기자
김종빈 사진 김종빈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이 몸이든 마음이든, 둘 다든 지간에. 잠깐 사이에 제 몸은 방향을 잃고 마음은 어리둥절하는 내 모양새를 보면, 다른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정말 놀라운 일이다.
 
 얼마 전에 “원더”라는 영화가 있었다. 개봉 당시에 입소문을 타며 인터넷 블로그마다 금세 칭찬 일색이었다. 그 뒤로 ‘한번은 봐야지, 봐야지.’ 벼르다가 이제야 본 것이다. ‘제목이 “원더”라니 뭐가 놀랍다는 건지, 허풍도 참 과하네.’ 라며 보기 전부터 속으로 궁시랑 궁시랑. 솔직히 어떤 종류의 영화인지도 모르고 보기 시작했다. 외계인들과 우주, 온갖 날 것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더 놀랄 것이 있을까.(물론, 놀랄 것이야 많기는 하지만 영화 제목부터 대놓고 놀랍다니 썩 내키지 않았다는 거다.)
 
 영화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나는 본래 더딘 사람이라 이 영화도 남들 다보고 나서야 보는 것이지만, 혹시 나보다고 더 더딘 사람들을 위해서 이야기를 아끼겠다. 다만 영화를 보고난 후 아직까지 감동이 남은 탓에 마음이 살짝 새어나와 글 한 줄만 남긴다.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하던 꼬마 아이가 세상을 허락하고, 바꾸어 나가는 이야기.” 아이는 영화 속에서 말했다. “미쳐버릴 것만 같을 때도 있었다.”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세상을 허락했다. 그리고 세상은 바뀌었다.
 
 나는 요즘도 꾸준히 무직자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회사일이 힘들어서 그만두었다기보다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었기에 나는 무직자가 되었다.(물론 회사일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출근하는 게 제일 고역이었지.) 나는 내가 평범하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음에도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세상으로부터 온전히 사랑받고 이해받기를 원했다고 하면 맞으려나, 아마 맞을 꺼다. 무리하면서까지 상냥한 세상을 원했으니까. 나를 거절하지 않고, 내게 관심을 한시도 거두지 않으며, 별 공들이지 않은 내 작은 손짓에 세상은 움직여주기를 바라는 시간들이었다. 평범한 주제에 나는 내게 세상을 바꿀 힘이 있었으면 했다.
 
 얼마 전 서른네 살이 되어서 아직도 포기를 못했냐는 소리를 들었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미련하고 더딘 사람이라 그런 거겠지. ‘그냥, 회사나 잘 다니고, 꼬박꼬박 월급을 모아서, 전세금을 만들고, 대출을 받아서, 조건이 적당히 맞으면 나머지는 맞춰가며 살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때때로 동남아로 가족여행가고, 살짝 비싼 음식과 조금 사치스런 잠자리에서 잠도 자며, 그렇게 한 30년 꼬박 일하면 서울 인근에라도 34평형 아파트는 하나 마련하고 살 걸.’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지금도 다시 생각해보니 회사를 그만두고 여타의 삶을 찾은 것은 실수였던 것 같다. 아, 정말 실수를 했던 걸까. 아니다. 이미 저질러놓고는 무슨 실수 운운하는 거냐.)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앞으로 3주정도 남았다. 전부터 지원해 놓은 코이카 해외봉사단 최종 합격발표가 나오면 그때 다시 생각할 일이지만 이미 걱정들은 머릿속을 차곡이 채운다. “나의 환상과 그것의 현실이 얼마나 또 다를까, 나는 얼마만큼 순수하고 순순히 봉사를 할 수 있을까.” 이미 해외봉사를 다녀온 지인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모국에서 오랜 세월 자신이 쌓고 굳혀온 상식을 이국에서 고집하는 일만큼 바보 같은 일이 없다.”라고 했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텐데,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보는 외국인들이 내 뜻대로 움직여줄 만큼 상냥하고 친절하기를 바라다니 걸작이다.
 
 영화 “원더”를 보며 다시 한 번 알았다. 세상은 내 손짓 하나하나에 영향을 받고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려 깊지도 친절하지도 않은 세상을 그래도 굳이 변하게 하려거든, 나를 움직이게 하고 난 뒤라야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거절당하여 화가 나고 슬프고 무력한 기분에 손이 멈추더라도 나를 움직이게 하여야 하는 이야기. 이 이야기를 차분히 머금다가 목 안으로 조금씩 삼키어본다.
 
 이제야 생각해보는 봉사다.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 이런 식의 의미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만큼이나 대단하고 거대한 건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여하튼 그런 기분. 하지만 “세상의 거절에 거절로 답하지 않는 것.” 이 정도라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것이 봉사에서 먼 내용이 아니기를 바란다. 서른네 살이나 먹었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겠지만, 몇 번이나 내가 말했지 않은가. 나는 더딘 사람이라고.(내가 봉사를 택한 것은 평범한 나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그리 된 것이다. 자애심보다 공명심이 먼저였다는 것을 고백한다.)
 
 세상의 거절에도 세상을 허락하는 것은 실로 “원더”였다. 그리고 그것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세상을 바꾼다. 영화는 영화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더욱 영화 같기에 소원해본다. 거절에 의연하게 군다거나 여유를 보이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부디 손이 멈추지 않기를, 그 걸음이 멈추지 않기를.
 
 추신, 요즘 들어 “항상 사이좋게 지내라.”는 이야기가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생각해본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누구하고든 “항상”이라는 것은 말이다.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