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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0인 벌집 병실 “비좁아 게걸음”…그 층에서 9명 사망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발생 사흘째인 28일 경찰과 국과수 직원들이 세종병원 응급실에서 3차 합동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밀양=송봉근 기자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발생 사흘째인 28일 경찰과 국과수 직원들이 세종병원 응급실에서 3차 합동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밀양=송봉근 기자

20인 병실, 요양병원 같은 일반 병원, 부족한 의료 인력, 관리 안 되는 응급실…. 세종병원 참사에서 한국 의료의 민낯이 드러났다. 치료 기술은 세계 최고라지만 속에 감춰진 앙상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됐다.
 
세종병원 3층 301호는 20인실이었다. 애초 중환자실로 알려졌지만 일반 병실로 확인됐다. 99.76㎡ 크기의 방에 20명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체육관과 진배없다. 환자 1인당 면적은 5㎡. 침상만 놓아도 꽉 찬다. 이곳 입원 환자들은 “통로로 똑바로 나가기 힘들어 항상 게걸음으로 다녀야 했다”고 증언했다. 3층에는 2인실, 5인실이 더 있었다. 3층에 27명이 입원했고 여기서 9명이 숨졌다. 대부분 20인실에서 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실태조사에서 18인실은 확인된 적이 있지만 20인실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상일 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선진국에서 다인실이라 하면 2인실을 말하는데, 20인실이라니 기가 막힌다. 이런 데는 의료 감염뿐 아니라 화재 대피에도, 사생활 보호에도 취약하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na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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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의료법은 한 병실에 10명, 20명을 넣어도 문제가 없다. 1인당 4.3㎡(2017년 2월 이후 6.3㎡)의 면적만 확보하면 된다. 건강보험 입원료 수가도 4인실이건 20인실이건 3만1080원으로 같다. 병원 입장에서 적은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볼 수 있으니 다인실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병원 감염을 줄이기 위해 기준을 강화하긴 했다. 지난해 2월 이후 새로 짓거나 증축하는 병원은 4인실까지만 짓도록 강화됐다. 5인실 이상은 넣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존 병원은 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세종병원에는 입원실 17개 가운데 7인실이 4개 있고, 20인실이라는 기형적 병실이 생겼다. 이상일 교수는 “기존 병원도 유예 기간을 주고 단계적으로 4인실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병원들도 10인실 넘는 다인실을 운영하는 데가 적지 않다. 안형식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노인 환자 비율이 높아지면서 지방 중소병원 중에는 일반 병원이면서도 실제로는 요양병원에 가깝게 운영되는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좁은 병실에 환자들이 결박돼 있었던 점도 구조를 어렵게 했다. 환자들의 낙상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탈출시키는 데 시간이 지체됐다. 박재현 밀양소방서 구조대장은 “3층 병실에 환자 20여 명이 있었는데 그중 18명 정도가 침대에 묶여 있어 구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28일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현장에서 진행된 3차 합동감식결과에 대한 경찰 브리핑. 밀양=송봉근 기자

28일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현장에서 진행된 3차 합동감식결과에 대한 경찰 브리핑. 밀양=송봉근 기자

세종병원에서 드러난 또 다른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세종병원은 의료법의 의료 인력 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병원에는 의사 3명(비상근 1명 포함), 간호사 6명, 간호조무사 17명 등 총 26명의 의료진이 있었다. 의료법에 따르면 연평균 하루 환자(입원·외래 포함) 20명당 의사 1명, 입원 환자 2.5명당 간호사 1명을 두게 돼 있다. 이기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료법 기준에 따르면 세종병원엔 의사는 6명, 간호사는 35명이 있어야 했지만 이를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에는 당직 의사 1명과 간호사·간호조무사 8명 등 9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정부의 의료기관 화재안전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의료인은 환자의 대피를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당시 병원에는 60~90대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 83명이 입원해 있었다. 의료진 한 사람당 9명꼴로 환자를 담당해야 했다. 입원 환자 대부분은 스스로 대피하기 힘든 상태였지만 이들을 대피시켜야 할 의료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당직 의료 인력 기준이 너무 느슨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상 정규 근무 시간 외에는 입원 환자 200명까지 당직 의사 1명, 당직 간호사 2명만 두면 된다. 사고 당시 세종병원은 이 규정은 어기지 않았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고령화·만성질환 증가로 환자들은 변하는데 후진국 시대에 만들었던 의료법은 그대로 이어진 탓”이라며 “시대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잘못된 법을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처음 화재가 시작된 응급실도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세종병원은 ‘응급의료기관 외 의료기관’으로 분류된다. 보건복지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정·관리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기관과 다르다. 관할 시·군·구에 신고하면 된다. 세종병원 같은 응급실은 전국 113곳, 그중 중소병원(30~99병상)은 92곳이다.
 
이런 응급실을 운영하려면 의사·간호사가 한 명씩 24시간 근무하고, 20㎡ 이상의 진료 공간과 병상을 갖춘 상태에서 X선 촬영기 등 일부 장비만 구비하면 된다. 첫 신고 때 지자체의 점검을 받고 나면 별다른 규제가 없다. 이번 화재에서 응급실에서 사망한 환자는 없었다. 당시 환자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진영주 복지부 응급의료과장은 “중앙정부 관리 밖에 있는 건 맞지만, 야간 의료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규제를 강화하면 상당수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응급의료 전문가는 “세종병원 같은 응급실은 진짜 응급 환자를 보는 게 아니라 야간 외래 진료를 하면서 입원 환자를 확보하는 통로로 활용된다”면서 “진짜 응급 환자의 적기 진료를 방해하고 과잉 진료를 하기 쉽다. 장기적으로 정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에스더·정종훈 기자, 밀양=위성욱·이은지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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