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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보는 역사 : 5-12 다양성의 힘

삶으로 보는 역사 : 5장 하나되어 미래로
 
<12> 다양성의 힘
 
우리 역사에는
2번의 통일이 있었는데
신라의 통일과 고려의 통일이다.
 
고려는 갈라졌던 국토의 통일이라면
신라의 통일은 국민의 통합이었다.
 
신라의 통일로 삼한 땅에 사는 거주민들이
운명 공동체라는 겨레의식이 만들어졌기에
신라의 통일이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경주의 김유신장군 무덤인 흥무대왕릉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가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신라 왕릉인데
왕릉 중에서 가장 화려한 것이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김유신 장군릉'이다.
 
'묘'라고 부르냐 '릉'이라 하느냐
논란이 있는 줄 아는데
신라인이 그를 왕으로 추존했으면
릉으로 부르는 게  맞을 것이다.
 
중국의 관우는 왕으로 추존된 적도 없는데
국민들이 그를 왕처럼 받들어
그의 무덤을 '관릉(關陵)'이라 하지 않는가.
 
신라가 열린 나라인 걸 보려면
경주 시내를 흐르는 서천 옆 송화산의
'김유신 장군릉'을 가보라고 권한다.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깝다.
 
김유신은 무열왕 김춘추를 도와
일통삼한의 꿈을 함께 만들고 이뤄갔고
'흥무대왕'으로 추존한 이는 흥덕왕이다.
 
어느 왕릉보다 화려하고 위엄을 갖추고 있어
김유신의 무덤이 아니란 주장도 있으나
대왕으로 추존되면서 봉분이 커지고
난간석을 더 하고 지신상을 세우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나 세계 어디에서도
왕족의 혈통이 아니면서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추존이란 왕이 된 자손이
자신의 조상을 높이는 것인데
김유신 경우는 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한 것은
일통삼한을 실현시킨 공이 크기 때문이지만
신라 왕족에 들어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야 멸망 후 신라에 귀순하면서
그의 할아버지가 신라에서
진골 왕족으로 받아 들어졌었다.
 
그러나 신라는 왕족의 혈통이 아니라도
외래인이 왕이 된 역사를 이미 갖고 있었다.
신라의 초기 왕위 계승을 보면 다음과 같다.
 

박씨, 석씨, 김씨로 이어지는 초기 신라 왕위 계승도


1~3대왕은 박씨이고, 4대왕 탈해는 석씨이다.
5~8대는 다시 박씨이고, 9~12대는 다시 석씨이다.
 
13대 미추왕은 김알지의 6세손으로 김씨이고
14~16대는 다시 석씨가 왕이 됐다.
 
16대 흘해왕까지 413년 동안
박씨 왕이 7명
석씨 왕이 8명
김씨 왕이 1명이다.
 
그런데 이후 17대 내물왕부터는
김씨가 왕위를 독점해 52대 효공왕에 이르고
53~55대왕은 다시 박씨가 왕위를 이었다가
56대 마지막 경순왕은 김씨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성씨의 혈통이
주고받으면서 왕위를 이어간 나라가
세계사에 어디 있는가.
 
혈연 폐쇄성의 대표적 사례로
신라가 지켜온 골품제를 말하지만
고대 사회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는 계층은
모두 혈연으로 권력과 재력을 지키려고 했다.
 
서양 귀족들의 작위도 똑같은 욕심에서 나왔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 가문'도
친족끼리 결혼해 황제 자리를 이어갔다.
 
조선시대 양반도 상민들의 양반 진입을 막고자
어머니의 계층을 따르는 종모법(從母法)을 만들어
양반을 백성의 5%이내로 유지하려 했다.
 
신라 골품제 폐쇄성의 문제점이 나타난 것은
통일 전이 아니라 통일 후에
왕위가 김씨 혈통으로만 이어지면서부터다.
 
왕권을 독점하면서 기득권을 지키려
골품제를 돌처럼 단단하게 했고
끝내 신라가 멸망의 길을 가게 했다.
 
문을 열어 생기는 파격의 여유가 사라지고
통일의 밑거름이었던 화랑도도 무너지면서
후삼국으로 삼한이 갈라지고 말았다.
 
정치에서 혈연 지연같은 인연만 중시하면
나라가 가족 단위로 작아지고 갈라지는데
신라의 시작은 혈연을 넘어 이어졌으니
고구려보다 사실 더 큰 나라였었다.
 
신라는 나라를 위해서 왕위를
다른 피를 가진 자에게 물려줄 줄 알았는데
고구려 첫째 왕 주몽은 그러지 않았다.
 
국가의 화평과 혈연 중에서
그는 화평보다 핏줄을 선택해
어느 날 나타난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줬고
고구려를 핏줄로 닫힌 나라로 만들었다.
 
신라는 열린 왕위 계승의 전통이 있었기에
항복한 타국의 왕족 후손이
통일의 주역이 되게 하고
그를 왕으로 추존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로마제국 역사에서 황금기라고 하면
'5현제 시대'를 꼽는데
5명의 현명한 황제가 이끈 시대란 뜻이다.
 
5현제 시대의 가장 특이한 공통점은 
피가 다른 입양한 양자가
다음의 황제가 되게 했다는 것이다.
 
5현제의 2번째 황제인 트리야누스는
국토를 넓히고 내정을 건실하게 만든 황젠데
로마의 식민지인 스페인 이탈리카 출신으로
이탈리아 본토배기가 아닌 속주출신의 황제였다.
 
외래인이거나 항복한 귀순자라도
왕이 되게 할 수 있었던 신라의 전통은
로마 5현제처럼 열린 체제에서 나왔다.
 
이런 사회와 국민 정신이
일통삼한을 신라의 국가비전으로
세우면서 그 꿈을 이루게 할 수 있었다.
 
신라가 열린 사회인 증거는 또 있다.
신라의 글자인 이두를 만든
설총의 아버지는 원효대사이다.
 
오늘날에 만약 원효대사가 살았다면
왕실에 가서 불법을 설하기는커녕
파계승으로 매도 당했을 것 아니겠는가.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본다 했는데
오늘날 유행어 '내로남불'이
사회의 분열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2016년 개봉된 영화 핵소고지

2016년에 개봉한 멜깁슨 감독의 영화로
2차세계대전의 오키나와 전투에서
데스몬드 도스 일병을 주인공으로 하는
'핵소고지(Hacksaw Ridge)' 가 있다.
 
종교적 신념으로 총들기를 거부하고
맨손으로 의무병으로 전투에 참여해
명예메달을 받은 실화가 영화 배경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진정한 주인공으로  
신념을 지키는 도스 일병의 용기보다
총을 거부하는 병사를 전장에서조차 받아들여
뜻을 펼치게 도와주는 사회의 힘을 보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강하게 한다고 하나
결국은 미국을 약하게 만듦을 알게 하는 것도
다양성의 나라였던 미국의 눈을 감게하고
하나만 보게 하는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히틀러도 스탈린도 김일성도 애국으로
한 때는 국민의 의지를 하나로 묶었으나
끝은 파국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했었다.
 
통일을 바라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혈연, 지연에다 요즘엔 운동연도 있다는데
우리를 얽는 모든 인연 고리를 푸는 것이다.
 
나와 다른 것을 받아 들이는 데에서
신라의 통일 열쇠도 만들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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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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