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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비트코인 헛발질이 평지풍파 불렀다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노련한 고양이도 쥐를 잡으려면 젖 먹던 힘을 다한다. 힘이 약한 먹잇감도 최후의 순간에는 죽기 살기로 덤비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암호화폐 투기세력을 어설프게 혼내 주려다 벌집을 쑤셔 놓고 말았다. 하루 최대 6조원을 거래하는 300만 투자자의 주력인 20~30대는 이 정부 핵심 지지층이다. 이들은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거래소 폐쇄 추진’이라는 초강수를 던지면서 가격이 폭락하자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로 몰려갔다.
 
“<가상화폐 규제 반대> 정부는 국민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 본 적 있습니까?”라는 청원에 14일까지 17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무책임하고 무식한 대응법” “문재인 대통령께 한 표 행사한 것을 인생 최고로 후회한다”는 격한 항의가 쏟아졌다. 초유의 지지층 이반사태에 청와대는 화들짝 놀랐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고 긴급 진화에 나선 것은 박 장관의 발언이 있은 지 불과 7시간 만이었다.
 
국제시세보다 30%나 높은 ‘김치 프리미엄’까지 만들어 낸 비트코인 투기 광풍은 한국 사회의 병리(病理)를 반영하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흙수저 신세를 면할 길 없는 현실에 좌절한 젊은 세대는 “나를 건물주로 올려 줄 꿈의 사다리”라며 비트코인에 올인하고 있다. 직장인, 대학생에 중·고등학생까지 가세했다. “거품이 붕괴됐을 때 개인이 볼 손해를 생각하면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박 장관의 인식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암호화폐를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며 “블록체인은 산업·보안·물류와 연관성이 많기 때문에 균형 잡힌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실제로 미국·일본은 암호화폐를 제도권 거래 대상으로 인정했다. 그렇다면 법무부가 극단적 카드를 던진 것은 성급했다. 먼저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머리를 맞댔어야 했다. 거품을 빼고 거래 투명성을 확보하되 관련 산업은 육성하는 처방을 모색했으면 이런 평지풍파는 없었을 것이다.
 
이하경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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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헛발질은 이 정부 출범 이후 8개월 동안 있었던 여러 무리수 중 하나에 불과하다. 교육부는 전국 5만 개의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을 올해부터 금지한다고 지난 연말에 발표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비싼 사교육은 방치하고 왜 만만한 방과후 수업만 건드리느냐”고 반발하자 하루 만에 꼬리를 내렸다. 학부모들은 “저소득층 아이들이 학원 대신 저렴한 방과후 수업을 통해 원어민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됐는데, 이걸 없애 한 달에 30만~40만원 하는 학원에 보내야겠느냐”고 항의했다. 교육 현실을 모르는 관료들이 일으킨 평지풍파다.
 
올해 9월부터는 5세 미만 아동에게 매달 10만원씩의 수당이 지급된다. 문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한 대로다. 그런데 여야가 소득 상위 10% 가구는 제외하기로 합의한 것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모두에게 다 주도록 하겠다”고 뒤집었다. 국회를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다. 오죽하면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조차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고 했을까.
 
문 대통령이 공약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은 취약계층을 보호하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이들을 울리고 있다. 올해 16.4%가 오른 시간당 7530원의 최저임금이 적용되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과 대학 청소 노동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은 줄줄이 일자리를 잃을 판이다. 김동연 부총리가 자영업자들을 만나 “종업원을 해고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조차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외교안보 정책에서도 시행착오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가 합의한 사드 배치를 재검토한다고 했고, 발사대 반입 사실은 보도까지 됐는데 ‘보고 누락’ 소동이 벌어져 한·미, 한·중 관계에 부담이 됐다. ‘위안부 합의 검토 TF’를 만들어 뒤엎을 것처럼 비판하더니 “재협상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일본과의 관계가 불편해져 아베 신조 총리의 평창 참관 가능성을 줄여 버렸고, 위안부 할머니들로부터도 “기만행위”라는 불만을 샀다.
 
국정은 집권세력의 의욕을 실험하는 무대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탄핵이란 예외적인 상황에서 인수위 없이 출발한 정부였기에 어느 정도 감안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집권 2년차다. 내가 옳다고, 견제할 야당과 보수세력이 약하다고 기분대로 하면 안 된다.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같은 어설픈 결정은 핵심 지지층까지 등을 돌리게 해 정권의 기반을 붕괴시킬 수 있다. 지지율 70%인 문재인 정부의 의욕은 좋지만 더 이상의 평지풍파는 금물이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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