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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샷] 48년 전 6학년 소풍…'58년 개띠' 친구야 어디 있니?

58년 개띠, 내 인생의 다섯컷 ① 손웅익
한국 사회에서 '58년 개띠'는 특별합니다. 신생아 100만명 시대 태어나 늘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고교 입시 때 평준화, 30살에 88올림픽, 40살에 외환위기, 50살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고도성장의 단맛도 봤지만, 저성장의 함정도 헤쳐왔습니다. 이제 환갑을 맞아 인생 2막을 여는 58년 개띠. 그들의 오래된 사진첩 속 빛바랜 인생 샷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봅니다.
 
 
1970년 면목초등학교 6학년 때 소풍 간 사진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남한산성으로 소풍을 갔다.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있는 모습이 우습다. 
 
그 시절엔 소풍 가면 이런 저런 잡동사니를 파는 장사가 있었는데 우리는 지팡이에 꽂혔다. 왜 그랬는지 그때 애들은 노인들처럼 소풍 가서 지팡이를 하나씩 사서 짚고 다녔다. 청개구리인 나는 지팡이에 관심이 없었다. 
 
이 중에 나는 어디에 있을까?(정답은 맨 마지막에)

 
1959년 나를 안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나는 1958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이듬해 고모님 시집가는 날 안강 곤실 잔칫집에 가서 이 사진을 찍었다. 뒤로 보이는 초가 지붕과 요강이 정겹다.
 
1934년 개띠생인 나의 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카메라를 장만한 이른바 얼리어답터였다. 그 덕분에 이 귀한 사진이 나올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카메라를 갖고 있는데 작동은 안 된다. 
 
아버지는 늘 나의 롤모델이셨다. 84세인 나의 아버지는 지금도 노인복지관에서 그림 강사로 활동 중이다. 솜씨가 좋아 할머니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이란다(물론 어머니는 탐탁치 않게 여기시지만). 
 
나의 그림 실력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것 같다. 앞으로 나는 이런 내 잔재주(?)를 무기 삼아 나의 아버지처럼 재미있는 여생을 보내고 싶다. 나의 마지막 버킷리스트는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이다. 

 
1974년 서울고등학교 입학식 날 모습이다.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와 같은 해에 태어난 덕분에 '뺑뺑이'로 고등학교에 간 소위 고등학교 추첨 배정 1세대다. 뺑뺑이라는 이유로 동문회에 초대도 못 받았을 뿐 아니라 동문회조차 뺑뺑이 전세대와 후세대로 나뉘어 열리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 선배들과 조우한 자리에서 나의 용기로 이런 관행은 사라졌다. (물론 여전히 뺑뺑이 세대를 인정하지 않는 선배도 있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었고, 구두가 반질반질 광이 난다. 뒤쪽에 본관이 보이고 상부에 '유신교육으로 민족 중흥'이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지금은 경희궁으로 복원되었다. 
 
1978년 속리산 문장대에서 찍은 사진이다. 대학교 2학년 때 문학동아리 멤버들과 속리산 법주사 인근으로 MT를 갔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새벽에 일찍 문장대에 올랐다. 
 
내가 4기이고 우리 동기가 10명이었는데 동기들끼리 결혼을 세 쌍이나 했다. 사랑이 꽃피는 문학동아리였던 셈이다. 나만 빼고.(나는 아시안게임을 하던 1986년에 대학동기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결혼했다) 
 
왼쪽은 1988년 신혼여행에 가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3월 5일 결혼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옷 색깔을 맞춰 입었다. 3월 초라 꽃샘추위가 한창이었을 텐데 커플룩을 차려입느라 추위에 덜덜 떨었다. 나는 그 당시 유행하던 엄청 큰 안경테를 끼고 있었다.

  
오른쪽은 2003년 제부도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15년 만에 가족이 4명으로 늘었고 아내와 나는 아줌마, 아저씨가 됐다. 잘 나가던 건축사사무소 소장이던 나는 IMF를 온몸으로 겪었다. 
 
당시 가족들도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IMF의 충격에서 조금 벗어나 건강이 회복되고 난 뒤 처음으로 가족들과 여행을 떠났다. 사진 속에서 첫째 아들은 중학생, 둘째는 초등학생의 모습이다. 둘째는 94년 개띠생인데 얼마 전 제대해 아주 늠름한 청년으로 변했다. 3대 개띠 집안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 첫 번째 소풍 갔던 단체 사진에서 나는 뒷줄 맨 오른쪽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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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 기간: 2018년 1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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