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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카드를 긁으며

현금이 없어도 일상에서 불편함을 못 느끼는 시대가 됐다. 시작은 신용카드의 대중화였다. 현금보다 카드로 결제하는 데 익숙해지며 생긴 말도 있다.
 
단말기에 신용카드의 마그네틱 띠를 읽히는 행위를 “카드를 긁다”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드를 긋다”도 혼용됐다. 선술집에서 벽에 외상으로 마신 술잔 수만큼 작대기를 그은 데서 비롯된 “외상을 긋다”란 표현의 영향 때문일까? 후불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신용카드도 결국 외상의 일종이란 점에서 “카드를 긋다”로 이해한 듯하다.
 
국립국어원은 2014년 ‘긁다’의 뜻풀이를 추가해 이런 혼란을 정리했다. 원래 ‘긁다’는 손톱이나 뾰족한 기구로 바닥이나 거죽을 문지르다, 남을 헐뜯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공연히 건드리다 등의 의미로 쓰였다. 여기에 물건 따위를 구매할 때 카드로 결제하다는 뜻을 더한 것이다. 현재 외상은 긋고 카드는 긁는 게 바른 표현이다.
 
단어는 시대에 따라 의미가 바뀔 수밖에 없다. 올해 IC카드 단말기로 모두 교체되면 카드를 긁는 대신 단말기에 꽂는 방식이 일반화된다. “카드를 긁다”는 말이 어색해질 수도 있다. 교통카드처럼 갖다 대면 결제되는 방식이 퍼지면서 “카드를 찍다”는 말도 많이 한다. 전자티켓의 등장으로 기차표 따위에 구멍을 뚫다는 뜻의 동사 ‘찍다’는 오히려 쓸 일이 없어졌다. 이들 단어에 대한 교통정리도 필요하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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