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추사의 유희 정신, 깎지 않는 조각으로

무제(1970년대 초), 30 x 37 cm, 종이에 매직

무제(1970년대 초), 30 x 37 cm, 종이에 매직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우성 김종영(1915~1982)은 ‘한국 현대 추상조각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런 그를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은 ‘20세기 서화미술거장’ 기획의 첫 번째 인물로 선정했다. 조각가가 어떻게 서예박물관에 입성하게 된 것일까.
 
‘김종영: 붓으로 조각하다’(2017년 12월 22일~2018년 2월 4일)전을 찾았다.  
 
선물처럼 나타난 추사의 서첩
44세 자화상(1958), 23 x 31cm, 종이에 수채

44세 자화상(1958), 23 x 31cm, 종이에 수채

드로잉(1958), 14.8 x 20.8 cm, 종이에 색연필

드로잉(1958), 14.8 x 20.8 cm, 종이에 색연필

자각상(1971), 12 x 15 x 25cm, 나무

자각상(1971), 12 x 15 x 25cm, 나무

영남 명문사대부 집안의 장손이었던 우성은 고향인 경남 창원에서 다섯 살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한학과 서예를 익혔다. 덕분에 1932년 휘문고보 2학년 때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3회 전조선학생전람회 서예부문에서 전국 장원을 차지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한 뒤 48년 서울대 미대에 부임해 교단과 작업실을 오가며 교육과 창작에 매진했다.
 
하지만 그가 일평생 서예에 정진했다는 사실은 미술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김종영미술관의 박춘호 학예실장은 “우성이 남긴 서예 작품은 200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가 남긴 작품은 조각이 230여 점인데 비해 서예가 2000여 점, 그림이 3200여 점에 이른다. 그를 단순한 조각가가 아닌 각(刻)-서(書)-화(畵)의 작가로 불러야하는 이유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15년에는 서울대미술관, 김종영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에서 기념 전시가 잇달아 열렸는데, 특히 9월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 불계공졸(不計工拙)과 불각(不刻)의 시공(時空)’은  추사의 글씨와 우성의 조각이 갖는 연관성에 초점을 맞춘 색다른 기획으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추사의 서와 우성의 각을 곧바로 비교하기엔 근거가 좀 미약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학고재갤러리 전시를 공동기획했던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는 이 지적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2017년 어느 봄날, 김종영미술관 수장고에서 우성의 애장품 더미를 뒤적이던 그의 앞에 추사의 『완당집고첩』이 선물처럼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첫 장을 여니 유, 희, 삼, 매, 네 글자가 한 자 한 자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때 온몸을 감쌌던 전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어요. 우성에게 추사의 ‘유희삼매’는 가장 중요한 화두였거든요. 자신도 예서체로 ‘유희삼매’를 쓰기도 했고요. 동명의 에세이에서 우성은 추사의 유희를 ‘모든 구속을 벗어난 절대자유’로 해석하고 있는데, 우성의 그림에 ‘유희삼매’라는 글이 등장한 것이 1964년입니다. 64년 1월 1일 일기에서 우성은 ‘지금까지의 제작생활을 실험과정이었다고 하면 이제부터는 종합을 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추사를 사표 삼아, 그리고 추사를 넘어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죠.”
 
조각과 글씨,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다  
추사 김정희 서첩 『완당집고첩』 중 ‘유희삼매’

추사 김정희 서첩 『완당집고첩』 중 ‘유희삼매’

우성 김종영의 ‘유희삼매’(연도 미상), 92 x 18 cm, 종이에 서

우성 김종영의 ‘유희삼매’(연도 미상), 92 x 18 cm, 종이에 서

드로잉(1976), 52 x 38 cm, 종이에 먹과 수채

드로잉(1976), 52 x 38 cm, 종이에 먹과 수채

전시장은 6개의 섹션으로 구분돼 있다. 처음 관람객을 맞는 곳은 우성의 예술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창작산실 불각재’다. 작업장을 깎지 않는 곳이라 부르고 나중에는 자신도 ‘불각도인’이라 칭한 이유는 인위적인 것을 최소화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형체보다는 뜻과 본질을 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업을 한 듯 안 한 듯 보이는 ‘작품 74-13’(1974)은 ‘불각의 미’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꼽힌다.
 
벽면에는 수려한 산수를 비교적 자세히 그린 ‘정미세한’(1967)부터 꼬불꼬불한 라면 면발처럼 형상화한 ‘드로잉’(1973)까지, 구상에서 반추상과 추상까지를 자유롭게 오가는 그림들을 모아놓았다. 그 앞에는 삐죽삐죽한 산의 모양을 돌로 형상화한 ‘작품 73-9’(1973)이 이해를 돕는다. 죽기 직전까지 붙들고 있었다는 한아름 나무 토막 주변에는 끌과 망치가 무심하게 놓여있다.
 
두 번째 섹션 ‘초월을 잉태하다’는 그의 어린 시절로 이끈다. 경남 창원 소답동 한옥의 사진이 전시장 한가운데 걸려있다. 동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울긋불긋 꽃대궐’의 배경이 된 바로 그곳이다. 우성의 DNA를 형성한 선조들이 남긴 다양한 글과 할머니와 어머니의 조각상도 볼 수 있다.
 
세 번째 ‘너를 찾아서’는 학창시절 이야기다. 열일곱 살 때 전국대회 장원을 안겨준, 안진경체로 단정하게 쓴 ‘원정비’도 전시돼 있다. 이동국 학예사가 말문을 열었다. “우성의 조각과 글에는 두 가지 조형언어가 공존합니다. 바로 곡(曲)과 직(直)이죠. 글씨를 보면 행초(行草)와 전예(篆隸)가 동시에 구사되는데, 전자가 안진경이라면 후자는 추사 김정희입니다.”
 
동서예술의 통찰을 다룬 네 번째 섹션을 지나면 다섯 번째 섹션 ‘역사와 실존의 대화’가 시작된다. 이동국 학예사가 이번 전시의 차별 포인트로 꼽는 부문이다. 추사의 『완당집고첩』이 처음 공개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유희삼매’의 뒤를 잇는 5언절구의 시작을 한글로 풀어보면 이렇다. “옛 사람은 모두 옛 도를 지키면서 / 추위와 배고픔을 마다하지 않았네 / 지금 사람도 옛 도를 지키려하나 / 행동마다 스스로 위험을 부르네 /….”
 
안진경의 ‘쟁좌위고’를 임서하고 겸재 정선의 ‘만폭동도’를 방작하면서 이것이 단순히 베끼는 작업이 아니라 대가의 지속적인 학습법이었음을 보여주는 배치도 눈길을 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작품을 보고 쓰고 그리면서 그는 그것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갔던 것이다.
 
마지막 코너의 제목은 ‘생명의 근원에서’다. “동아시아 전통과 역사라는 내재의 바다에 서구 현대라는 외래를 받아들여 유희하고 불각하면서 대자유와 초월이라는 아름다움을 통찰하고 창출해 낸” 작가의 예술관을 되짚어보는 자리다.
 
전시장을 나오려는데 우성이 자작시를 한문으로 쓴 ‘고금경(古今鏡)’(1972)이 눈에 들어왔다. “맑은 하늘에 고금의 거울 길이 걸려 있는데 / 비었다 찼다 한 이치임을 그댄 알지 못하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김종영미술관 소장  

구독신청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