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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호의 직장인 밥값론(2) 밥값을 하는 3가지 방법]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

솔선수범하며 나아가면 최선...뒷다리 잡지 않거나 사표 내는 선택도
 
나는 결코 인사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관련 공부를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직장인으로서 정말 부끄럽지 않은 밥값을 하고 싶고, 또 인정받고 싶다. 그리고 나를 따르는 내 직원들이 밥값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 주고 싶다. 
영화배우 제인 폰다와도 결혼했던 테드 터너(오른쪽)는 CNN 방송을 설립하고 AOL 타임워너라는 미디어 제국을 만든 불세출의 경영자였다. 그는 CNN 설립 초기 ‘무엇이든 해라! 이끌든지, 따르든지, 아니면 여기서 나가라!’는 독설로 직원들을 독려했다.

영화배우 제인 폰다와도 결혼했던 테드 터너(오른쪽)는 CNN 방송을 설립하고 AOL 타임워너라는 미디어 제국을 만든 불세출의 경영자였다. 그는 CNN 설립 초기 ‘무엇이든 해라! 이끌든지, 따르든지, 아니면 여기서 나가라!’는 독설로 직원들을 독려했다.

 
미국 CNN 방송을 설립하고 AOL 타임워너라는 미디어 제국을 만든 불세출의 경영자 테드 터너(Ted Turner). 그는 자살한 아버지가 운영하던 도산 직전의 옥외 광고기업을 20대 초반에 물려받아 뛰어난 사업 수완을 발휘,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후 사업을 지역 유선 방송국으로 확대한 그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꿈에 도전하게 된다. 최초의 뉴스 전문 채널을 만들어 미국 전 국민, 아니 전 세계 사람에게 24시간 뉴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국민은 대부분 3대 방송사인 NBC·ABC·CBS 뉴스를 정해진 시간에 시청하고 있었다.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포맷으로 작성된 뉴스만 접하다 보니 대중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어려웠고,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듣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테드 터너는 1980년 CNN을 창립했다. 당시 모든 방송계나 언론계 사람은 CNN을 얼간이 뉴스라고 폄하했고, 대중의 반응도 시큰둥해 회사 창립 후 몇 년 간은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1990년에 발발한 미국 걸프전은 모든 상황을 뒤바꿔 놓았다. 1970년대 월남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최대의 국제전쟁이었던 걸프전에 전 미국인들은 촉각을 곤두세웠고, 매일 무슨 일이 있어나는지 알고 싶어했다. 특히 남편과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가족들은 유일하게 시간 제약 없이 시청할 수 있는 CNN의 전쟁 뉴스를 보면서 마음을 졸였다. CNN 기자들은 용감하게 전장을 누비면서 24시간 실시간으로 전장의 상황을 전했고, 그때서야 미국인들은 CNN에 고마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CNN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테드 터너의 혁신과 도전에 직원들은…  
김봉진 우아한 형제 대표는 테드 터너의 말을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로 바꿔 만든 포스터를 회사 벽에 붙여놓고 직원들을 이끌었다.

김봉진 우아한 형제 대표는 테드 터너의 말을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로 바꿔 만든 포스터를 회사 벽에 붙여놓고 직원들을 이끌었다.

테드 터너는 돈키호테처럼 괴팍한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꿈을 꾸는 몽상가가 모두 그렇듯 그는 일에 미친 워커홀릭이었다. 24시간 방송하는 뉴스 채널 CNN처럼 그는 24시간 일에 미쳐 있었다. 사무실에서 먹고 자면서 때로는 사무실에서 샤워를 한 뒤 알몸에 샤워가운만 걸치고 CNN 본사를 활보하고 다녀 직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일개 지역 유선 방송국을 운영하던 그가 24시간 뉴스 채널을 창립하겠다고 했을 때 아마도 직원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을 것이고, 삼삼오오 모여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말이 좋아 혁신과 도전이지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일을 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그렇지 않아도 일이 넘쳐서 매일 야근의 연속인데 아예 24시간 체제로 실시간 뉴스를 방송하게 되면 이제 정말 집에 가는 것은 포기해야겠네. 이러다 방송국 망하면 내 일자리는 어떻게 되나? 미친 사장 하나 때문에 회사 전체가 위험에 처하게 되는구나.’
 
실제로 많은 직원이 사표를 내고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해 보이는 직장으로 옮겼을 것이고, 그나마도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회사를 다녔을 것이다. 그 가운데 테드 터너와 마음이 통하는 몇몇 도전적인 직원은 그의 뜻을 받들어 24시간 카메라를 매고 사고현장으로, 때론 전쟁터로 달려가 뉴스를 전했겠지만 수년 간 지속된 회사 재정난에 노력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하나 둘씩 지쳐 갔을 것이다. 일부는 다른 언론사가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접근할 때 못이기는 척 옮겨 갔을 것이고 일부는 기왕 시작했으니 테드 터너와 끝까지 가보겠다는 호기로 스카우트를 뿌리치며 다시 카메라를 들고 걸프전행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직원의 다양한 반응과 모습을 보면서 테드 터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무모한 도전으로 힘들어하는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사사건건 반대하며 자기 뜻에 따라주지 않는 이들을 보며 마음 속에 분노도 치밀었으리라. 그래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직원들까지 잘 이끌어 각자의 밥값을 하도록 유도하고 독려해 성과를 만들어내야 했을 것이다. 당시 유례 없는 도전을 시작한 CNN은 마치 전쟁터 같은 상황이어서 직원 하나하나가 제 역할을 해주고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해야 했다. 한가한 다른 방송사처럼 움직여서는 곤란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고민 끝에 테드 터너는 어느 날 모든 직원을 모아 놓고 미국 기업 경영사에 남을 역사적인 말을 했다. “Do Something! Lead, Follow or Get out of Here!(무엇이든 해라! 이끌든지, 따르든지, 아니면 여기서 나가라!)”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아마도 그로서는 참고 또 참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외친 일성일 것이다. 비교적 고용시장이 자유로운 미국일지라도 테드 터너의 발언은 직원들에게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오너나 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면 아마도 당장 노조가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노조가 없다면 급조해서라도 만들어 투쟁하겠다고 몇몇 직원이 선동하고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테드 터너가 직원들을 향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Get out of Here!(당장 회사에서 나가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Do Something!(무엇이든 하라)’이었다. 직원이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면 무슨 일이든 해서 밥값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이든 한다면 그는 밥값을 하는 것이고 이는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모든 직원이 솔선수범해서 회사를 이끌고 리드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직원들이 그저 정해진 방향대로 따라만 와줘도 고마운 일이고 그로써 충분히 밥값을 하는 것이다. 테드 터너가 한 말에는 ‘비록 힘들고 불안정한 도전의 길이지만 묵묵히 따라와 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담긴 것이다.
 
그런데 이끌지도, 그렇다고 따를 생각도 없는 직원들은 본능적으로 ‘Get out of Here(여기서 나가라)’라는 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자신을 방어하려고 한다. 그리고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은 투쟁이고, 사장의 방침에 제동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본인들의 밥그릇을 지키고 밥값을 쟁취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모임 이후 CNN은 조금씩 변화해 갔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CNN과 CNN의 성공 발판 위에 세워진 타임워너라는 제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테드 터너의 본심을 읽고 공감한 직원들이 하나 둘씩 움직이기 시작해 하나가 되고, 자신들의 밥값을 하기 위해 무엇이든 했을 것이다. 또 따를 의지도, 역량도 없는 직원은 무엇이든 하라는 테드 터너의 부탁에 따라 회사를 떠나는 방식으로 밥값을 대신 했을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미국 기업가 사이에 자주 회자되는 것으로, 구글에서 테드 터너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올 정도로 유명한 일화다. 아마도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사장이나 상사들 입장에서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테드 터너가 속시원히 대신 해주었다고 느끼는 것 같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가 붙인 포스터 
이 스토리를 모르고 있던 나는 몇 년 전에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벤처기업 ‘우아한 형제’의 김봉진 대표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에 놀러갔다가 회사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고 망치로 한 대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김봉진 대표는 위에서 설명한 테드 터너의 이야기를 한국식으로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라는 간단하고 명료한 세 개 단어로 표현하고 강하고 힘있는 필체로 포스터를 만들어 놓았다. ‘Get Out of Here’이라는 거칠고 부정적이며, 자칫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장을 ‘비키든지’라는 부드럽고 완화된 단어로 표현해 절묘하게 테드 터너의 심중을 직원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직원들의 한마음과 역량 발휘가 무엇보다 중요한 벤처기업을 이끄는 김 대표의 고민과 새로운 도전에 나선 테드 터너의 고민은 같았으리라. 직원들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 ‘벤처’라는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도전과 혁신을 해야 하고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직원 한 명 한 명이 밥값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직원들을 볼 때 벤처기업 사장으로서 얼마나 속이 탔겠는가. 직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밥값’은 물론 ‘이끄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고 역량이 안 된다면 이끄는 사람들을 따라만 줘도 밥값은 충분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벤처기업이든 글로벌 대기업이든 조직 내부에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이끄는 사람들을 오히려 질투하고 방해하며 사기를 떨어뜨리는 위인이 너무나 많다. 1994년 삼성 이건희 회장은 새로운 삼성그룹을 창조하기 위해 신경영을 선포하고 기업 문화를 대대적으로 혁신하면서 너무도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름하여 ‘뒷다리론’. 삼성은 앞으로 광속으로 초일류 기업을 향해 달려갈 텐데 아직도 조직 안에는 앞으로 달려가는 리더나 동료들의 뒷다리를 잡고 방해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그런 사람들을 일벌백계하고 솎아내 일산분란하게 신경영과 초일류 기업 비전을 달성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느 직원도 자신이 바로 이건희 회장이 말하는 ‘뒷다리 잡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솔선수범해 이끌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충실히 방향에 따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언행은 과거와 달라진 업무와 기업 분위기를 불평하는 데 집중한다. 변화를 거부하고,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으니 나 하나쯤이야 하던 대로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과거의 성공방식을 고집한다. 앞장서 변해가는 동료나 후배들을 보며 출세하려고 꽤나 오버한다고 비웃었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뒷다리론’ 
이런 종류의 직원들을 일컬어 이건희 회장은 뒷다리 잡는 사람 정도로 표현했지만, 테드 터너와 김봉진 대표는 아주 명확하게 그들도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밥값을 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했다. 바로 ‘비켜주는 것’이다. 굳이 사표를 내지는 않더라도 조용히 남들이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고 뒷다리 잡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밥값을 하는 것이다. 사장과 상사 입장에서는 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 삼성에서도 이러한 직원이 많아 이건희 회장이 그토록 고민했을 정도니 다른 기업은 오죽하겠는가?
 
내가 예전에 근무하던 사무실의 내 책상 앞에 배달의 민족에서 얻어온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매일 내 책상 앞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며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과연 이 세 가지 중에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직장인들이 밥값하는 것은 이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비켜주는 것으로 밥값을 하는 직장인은 절대로 되지 않으리라 오늘도 다짐한다.
 
 
장중호 경영컨설턴트
 
※ 장중호 - 인공지능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경영컨설팅 업계에 뛰어들어 많은 기업의 사업전략 및 마케팅 전략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후 이마트와 GS홈쇼핑의 마케팅 담당 임원으로 일하면서 유통업계의 마케팅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저서로 [마케터가 알아야할 21가지 이야기] [나는 디자인으로 승부를 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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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