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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한옥 책방에서 파는 책은 다르다

정겹고 푸근하거나, 촌스럽고 올드하거나. ‘한국적인 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둘 중 하나였다. 어머니 또는 할머니 세대의 취향으로 여겨지던 ‘한국미’가 감각적인 트렌드로 재조명받고 있다. 전통 디자인, 한옥 건물 등 한국적인 느낌을 내세운 이색 공간들이 속속 생겨난다. 지난해 하반기 문을 열어 입소문을 타고 있는 화제의 장소들을 둘러봤다.
글=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사진=임현동·우상조 기자 
 
해브빈서울
'해브빈서울'은 모던한 공간 속에 한국 전통의 미술·공예 소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편집숍이다. 우상조 기자

'해브빈서울'은 모던한 공간 속에 한국 전통의 미술·공예 소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편집숍이다. 우상조 기자

한국적인 것을 찾으러 꼭 서촌이나 북촌에 갈 필요는 없다. 강남 한복판, 역삼동 르메르디앙 호텔 뒷골목에 자개·옻·한지·삼베 등 전통 소재를 활용한 소품들로 가득한 편집숍이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전시관 겸 쇼룸 ‘해브빈서울(havebeenseoul)’이다.
한국적인 아이덴티티를 모던하게 풀어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이다. 전통 공예 브랜드를 비롯해 신진작가부터 선자장(부채 장인)·완초장(왕골로 돗자리나 바구니 등 기물을 만드는 장인) 등 무형문화재까지 100여 명의 작품을 취급한다.
갓끈을 형상화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나무 소반, 색동 염색을 입힌 모빌 등이 전시된 '해브빈서울'의 쇼윈도. 우상조 기자.

갓끈을 형상화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나무 소반, 색동 염색을 입힌 모빌 등이 전시된 '해브빈서울'의 쇼윈도. 우상조 기자.

‘해브빈서울’이 들어선 건물은 직전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던 주택이다. 내벽과 천장·바닥을 모두 하얗게 칠하는 등 전시공간에 맞게 변형했지만 리빙룸과 다이닝룸의 느낌은 그대로 살렸다. 실생활에 전통 디자인 소품이 어떻게 녹아드는지 보여주는 것이 이 공간의 콘셉트이기 때문이다. 주거공간 형태의 쇼룸은 오랜 시간 준비해 온 프로젝트였다.
리빙룸 테이블 위에 디자인 사무용품들이 놓여 있다. 자개 장식을 더한 수납함과 책갈피, 도자로 만든 만년필 세트. 백수진 기자

리빙룸 테이블 위에 디자인 사무용품들이 놓여 있다. 자개 장식을 더한 수납함과 책갈피, 도자로 만든 만년필 세트. 백수진 기자

모던하고 심플한 공간 속에 전통적인 디자인들이 위화감 없이 어울린다. 리빙룸엔 자유롭게 앉아 쉴 수 있는 소파와 낮은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 위에는 자개 장식이 들어간 목각 정리함, 도자기로 만든 페이퍼나이프와 만년필·잉크웰, 광화문을 형상화한 북엔드, 훈민정음 모티브의 필통과 USB 등이 실제 사용 중인 물건들처럼 놓여 있다. 벽면 선반에는 은은한 색감의 자개 수납함, 옻칠로 마감한 원형 합 등이 있다. 재료를 구하기 어렵고 작업에 손이 많이 가는 자개함은 하나에 200만원이 넘는다. 다이닝룸은 식탁 위에 그릇·수저·다기 등 테이블웨어를 진열해 꾸몄다. 곧 커피 등 음료도 판매할 예정이다.  
다이닝룸은 주방과 식탁에서 사용하는 제품들 위주로 꾸며졌다. 곧 커피 등 음료를 판매해 테이블에서 마실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우상조 기자

다이닝룸은 주방과 식탁에서 사용하는 제품들 위주로 꾸며졌다. 곧 커피 등 음료를 판매해 테이블에서 마실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우상조 기자

‘해브빈서울’은 5년 전 론칭해 주로 온라인에서 판매를 이어 왔다. 한국의 미를 살린 고급스럽고 실용적인 제품들은 해외 손님용 선물로 인기를 끌었다. 기업체나 외교부의 주문이 80~90%였다. 그런데 최근엔 일반 고객이 30%에 달한다. 쇼룸 형태의 편집숍을 마련한 것도 늘어나는 수요에 따른 것이다. 남연정 매니저는 “비슷비슷한 수입 디자인에 질린 소비자들이 한국적인 디자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원하는 사람은 꼭 찾아서 구매하는 ‘초니치(틈새의 틈새)’시장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촌, 그 책방
기와 지붕 한옥의 바깥채를 개조한 '서촌, 그 책방'. 별다른 간판이 없어 유리창에 적힌 글자를 보고 책방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임현동 기자

기와 지붕 한옥의 바깥채를 개조한 '서촌, 그 책방'. 별다른 간판이 없어 유리창에 적힌 글자를 보고 책방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임현동 기자

걷다 보면 한 집 건너 게스트하우스나 카페를 발견하게 되는 서촌의 주택가 골목. 어느 기와집 나무 대문 옆에 숨은 듯 딸린 바깥채에, 지난해 7월 책방이 들어섰다. 눈에 띄는 간판이 없어 주소를 찍고 와도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조금만 더 걸음을 느리게 하고 찬찬히 살피면 유리문 너머로 정갈하게 진열된 책장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갑게 일어나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장을 만날 수 있다.
볕이 잘 드는 오후 두시. '서촌, 그 책방'이 가장 예뻐지는 시간이다. 임현동 기자

볕이 잘 드는 오후 두시. '서촌, 그 책방'이 가장 예뻐지는 시간이다. 임현동 기자

‘서촌, 그 책방’의 주인장 하영남 대표는 독서광이다. 다독을 하기도 하지만 한 권을 읽어도 인상 깊은 구절을 기록하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길 즐긴다. 감상과 토론을 좋아해 20여 년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 독서지도를 했다. 지역 도서관에서 독서모임을 주도하기도 했다.
'서촌, 그 책방'에서 판매하는 모든 책에는 주인장 하영남 대표가 직접 읽고 남긴 코멘트가 포스트잇으로 붙어 있다. 임현동 기자

'서촌, 그 책방'에서 판매하는 모든 책에는 주인장 하영남 대표가 직접 읽고 남긴 코멘트가 포스트잇으로 붙어 있다. 임현동 기자

재작년 7월,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던 독서모임들을 모두 멈췄다. 책방을 열기 위해서였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모임을 하다 보니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졌어요. 책을 팔면서 안정적으로 책 읽기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죠.” 지인들은 멀쩡히 잘 되고 있는 일을 왜 그만두느냐며 말렸다. ‘요즘 같은 때에 책방을 하면 다 말아 먹는다’고 반대했지만 하 대표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한옥 책방은 하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책방을 열겠다는 욕심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이었다. 하 대표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한국인이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우리 삶 속에 녹아 있는 미술·건축·문학 모든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향유해 온 모든 것들이 우리 안에 있어요. 본능적으로 포근함을 느끼는 공간에서 책을 소개하고 함께 읽고 싶었어요.”
한옥의 느낌을 좋아하는 하 대표는 나무 기둥과 서까래·대들보 등을 최대한 살려 인테리어를 꾸몄다. 임현동 기자

한옥의 느낌을 좋아하는 하 대표는 나무 기둥과 서까래·대들보 등을 최대한 살려 인테리어를 꾸몄다. 임현동 기자

장소를 구하러 다니던 하 대표는 이 집을 보고 5분 만에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인테리어는 한옥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꾸몄다. 벽은 모두 희게 칠했지만 서까래·대들보 등 한옥의 목조 골격은 그대로 남겼다. 출입문은 유리로 했다. 바깥에서 들여다 보이는 벽면은 전면이 책장이다. 하 대표가 엄선한 책들은 그 자체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광고판이 된다. 책은 대부분 한국 저자 위주로 선정한다. 좋은 글을 쓰는 우리 작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다.
책방 안에는 독서모임 때 사용하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다. 음료를 판매하지는 않지만 책을 사는 손님들에게는 차를 한 잔씩 대접하기도 한다. 어떤 책을 고를지 막막하다면 주인장에게 물어보자. 한 대표의 섬세한 추천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당장에라도 독서모임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질지 모른다. ‘서촌, 그 책방’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은 현재 7개 팀으로 50~55명이 참여하고 있다.
 
탐스로스팅코
내자동 '탐스로스팅코' 외관. 낡은 기와 지붕과 전면 유리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영문 로고의 조합이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사진 탐스로스팅코]

내자동 '탐스로스팅코' 외관. 낡은 기와 지붕과 전면 유리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영문 로고의 조합이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사진 탐스로스팅코]

북촌과 서촌, 그리고 익선동에서 한옥 카페를 찾는 건 이제 어렵지 않다. 한국 전통 가옥과 서양 음료 ‘가배차(고종실록에 기록된 커피의 옛말)’의 조합이 더는 놀랍지 않다는 의미다. 지난해 6월, 서울 내자동에 조금 더 새로운 한옥 카페가 생겼다. 한옥에서 커피만 파는 게 아니라, 신발도 팔고 선글라스도 판다. 미국 캘리포니아 브랜드 ‘탐스’에서 운영하는 카페 ‘탐스로스팅코’다.
내자동 ‘탐스로스팅코’는 서촌마을 맞은 편, 경복궁역에서 사직터널로 가는 길목에 있다. 1층짜리 기와지붕 한옥을 개조해 만들었다. 서울에서 첫 번째 매장이고, 스타필드 하남점에 이어 국내 2호점이다. 대형 쇼핑몰 안에 입점한 하남점의 인테리어는 물론 한옥과 관련이 없다. 커피를 팔긴 하지만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의 느낌이 강하다. 내자점은 ‘카페’에 좀 더 집중했다.
한옥 지붕의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공간에서 커피와 함께 탐스의 어패럴이 판매되고 있다.[사진 탐스로스팅코]

한옥 지붕의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공간에서 커피와 함께 탐스의 어패럴이 판매되고 있다.[사진 탐스로스팅코]

탐스가 서촌의 한옥을 선택한 이유는 의외성에 있다. ‘탐스로스팅코’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가장 자유분방한 캘리포니아 지역의 브랜드여서 한국적인 것과 전혀 매칭이 안 되는데, 바로 그 대조되는 느낌을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탐스가 한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최초의 사무실 겸 창고가 서촌에 있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탐스로스팅코’는 오래된 한옥이 가지고 있던 특성을 거의 그대로 보존했다. 외관뿐 아니라 내부의 나무 기둥, 서까래 등도 살렸다. 천장에 에어컨을 달면 느낌을 해칠까봐 벽으로 뺐다. 가게 전면은 통유리로 바꿔 탐스 로고 등을 입혔지만 벽면에는 옛날 나무 창문을 유지했다. 얼룩덜룩한 벽은 시공 과정에서 기존 벽지를 아무렇게나 뜯은 것을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탐스의 빈티지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린다.
벽면의 창문은 기존의 나무틀을 그대로 유지했다. 벽지를 마구 뜯어낸 그대로 유지되는 벽이 빈티지한 느낌을 더한다. [사진 탐스로스팅코]

벽면의 창문은 기존의 나무틀을 그대로 유지했다. 벽지를 마구 뜯어낸 그대로 유지되는 벽이 빈티지한 느낌을 더한다. [사진 탐스로스팅코]

테이블을 듬성듬성 놓아 공간은 여유롭다. 평일 점심시간이면 빈자리가 없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커피 맛도 좋다. 공정무역과정을 통해 생산된 스페셜티급 원두를 한국에서 로스팅해서 제공한다. 커피 원두는 에스프레소 2종(카르페디엠 서울·써밋)과 싱글오리진 3종(콜롬비아·페루·에티오피아) 등 총 5종이 있다.
탐스 신발을 한 켤레 사면 신발이 필요한 또 다른 이에게 한 켤레가 기부되는 ‘원 포 원(One for one)’ 캠페인은 이곳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탐스로스팅코’에서 음료를 한 잔 마실 때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이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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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