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더,오래] 카지노딜러에서 교수로 인생항로 바꾼 '꿈 배달부'

기자
이상원 사진 이상원
이상원의 포토버킷(12)
먼저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이번 인터뷰 주인공 LOY(로이)문화예술실용전문학교(구 인천문예전문학교) 카지노딜러학과의 고주선(40) 교수를 만나기 전까지 필자는 ‘카지노딜러’에 대해 잘 몰랐다. 카지노는 몇 년 전 회사 출장으로 마카오를 방문했을 때 호텔 통로를 따라 지나가며 한번 흘끔 봤을 뿐이다.
 
 
LOY문화예술실용전문학교 카지노학과 고주선 전임교수.

LOY문화예술실용전문학교 카지노학과 고주선 전임교수.

 
카지노딜러 하면 오래전 유행했던 TV 드라마를 떠올리며 드라마 ‘올인’의 송혜교를 떠올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냥 서서 손님들에게 카드를 나눠 주고 칩을 회수하는 직업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고 교수는 15년 남짓 카지노딜러로 활동하다가 최근 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의 인생스토리와 설명을 듣고 난 뒤에야 비로소 카지노딜러의 세계에 대해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카지노딜러는 전문성은 물론 서비스 마인드, 매너, 커뮤니케이션 능력까지 고루 갖춰야 하는 미래유망직종으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망의 직업으로 떠오른지 오래됐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고 교수에게 지금처럼 카지노딜러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던 시절에 어떻게 직업으로 딜러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첫직장은 전문대학 교직원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학교 교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고 교수는 새벽과 야간에 영어학원과 전문대학을 다니면서 열심히 미래를 준비했다. 처음에는 승무원이 되고 싶었는데, 우연히 한 TV 프로그램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당시 개장을 준비하고 있던 강원랜드의 카지노딜러 훈련과정을 그린 현장 VJ 프로그램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2000년 말 워커힐 카지노의 딜러 모집에 지원해 합격한 뒤 6개월간의 훈련을 거쳐 꿈에 그리던 카지노딜러가 되었다. 잠재돼 있던 열정과 서비스마인드에 학습이 더해져 전문적인 딜러가 돼 가는 과정이 행복했다.
 
 
초보 딜러 시절의 고주선 교수.

초보 딜러 시절의 고주선 교수.

 
고 교수는 1년여 기간 동안 현장 딜러로 근무하면서 카드·주사위·칩 등을 딜링하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서비스마인드와 매너’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딜러는 우선 게임규칙을 꿰뚫고 있으면서 고객에게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고객이 기분 좋게 게임을 즐기게 전체 흐름을 리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카지노의 직원으로 회사가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하니까 고도의 집중력도 필요하지요. 겉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업무 강도가 높은 직업입니다.”
 
마침 세종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시간강사로 카지노 실무와 카지노 서비스에 대해 강의할 기회가 생긴 고 교수는 ‘고객서비스(C/S : Customer Service) 강사양성 아카데미’까지 수료해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카지노 딜러 출신이라는 경력에다 경험을 살린 재미있고 열정적인 강의 덕분에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카지노학과 강의실에서 딜링 시범을 보이는 고주선 교수.

카지노학과 강의실에서 딜링 시범을 보이는 고주선 교수.

 
2005년 7월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카지노설립추진단에 합류해 ‘세븐럭카지노’ 설립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도 딜러와 C/S 강사로 활동하며 실무와 이론 경험을 함께 다진 덕분이었다. 이후 GKL에서 딜링 교재를 제작하고 서비스 교육을 담당하며 딜러로서도 큰 활약을 했다. 
 
이후 고 교수는 육아를 위해 몇 년간 현장을 떠났다가 2017년 가을 첫 직장인 워커힐카지노에 딜러로 복귀했고, 그녀의 경력과 열정을 눈여겨 본 상사의 소개를 통해 LOY문화예술실용전문학교 카지노학과 전임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틈틈이 카지노딜러의 세계, 전문직업정신 등에 대해 강의를 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교수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하지 않고 수락할 수 있었다.
 
 
청년들에게 '선택'을 주제로 강의하는 고주선 교수.

청년들에게 '선택'을 주제로 강의하는 고주선 교수.

중국에서 서비스마인드에 대해 강의중인 고주선 교수.

중국에서 서비스마인드에 대해 강의중인 고주선 교수.

 
“안 그래도 최근 사회 초년생들에게 ‘꿈과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경험을 살려 누군가의 꿈을 옆에서 돕는 것이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이라고 느꼈지요. 그러던 참에 교수 제안이 와서 기뻤습니다. 강의할 때 저를 ‘드림딜러(Dream Dealer)’로 소개한 적이 있는데, 진짜 드림딜러가 된 기분입니다. 이제는 카드 대신에 꿈을 나눠 줘야지요!”
 
고객들에게 카드를 나눠주는 카지노딜러와 후배들에게 직업정신을 전수해 주는 강사로 활약하다가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꿈을 나눠주고 훈련을 시켜야 하는 ‘드림딜러’로 변신한 고 교수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질문했다.  
 
 
실전 위주의 교육을 제공할 계획이라는 고주선 교수

실전 위주의 교육을 제공할 계획이라는 고주선 교수

 
“새로운 기대감으로 두근거리기도 하지만 한편 무거운 책임감도 느낍니다. 현장에서 딜러로 활동하고 후배들을 교육을 하면서 아쉬운 점이 많았거든요. 카지노학과를 졸업했다는데, 거의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입사 후 몇 개월간 훈련과정을 따로 거친 후라도 고객들 앞 테이블에 설 수 있는 경우는 그래도 다행입니다. 흔한 말로 견적이 안 나오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딜러는 실력보다 직업정신이 중요”
고 교수는 딜링 실력보다 인성과 직업정신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적인 부분은 금방 배울 수 있고 연습하면 당연히 좋아지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학생 때부터 제대로 배워 기초를 닦아두지 않으면 입사해 무척 고생할 수밖에 없고 큰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학교에서 실질적인 직업교육과 훈련기회를 제공하면 회사에서는 재교육에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LOY문화예술실용전문학교 출신은 바로 게임 테이블에 세울 수 있을 만큼 실력도 좋고 인성 또한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LOY문화예술실용전문학교가 학생들에게는 좋고 교수들에게는 아주 힘든, 바람직한 모습을 제대로 갖춘 학교라고 느껴져 기대가 큽니다.”
 
 
인생의 하프타임을 제2의 꿈과 함께 시작한다는 고주선 교수.

인생의 하프타임을 제2의 꿈과 함께 시작한다는 고주선 교수.

 
학교 교직원에서 딜러로, 딜러에서 교수로 어찌 보면 쉽지 않은 변신을 거듭하며 새로운 꿈에 도전해온 고 교수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현재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혹시 모를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배우며 준비했지요. 교직원 시절엔 새벽에는 영어학원을, 저녁에는 전문대학교에 다녔습니다. 딜러로 일하면서도 C/S 강사학원에 다녔습니다. 육아 중에도 강의기회가 생기면 마다치 않고 먼 거리라도 달려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지금 조금 더 힘들게 뛰어 두면 나중에 조금 더 편하게 걸을 수 있더라고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필자는 문득 고 교수의 남편에 대해 궁금해졌다. 남편의 이해와 협조가 없다면 쉽지 않았을 과정이라 생각되어 물었다. 한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보여준 모습 중 가장 신이 난 얼굴이었다.
 
“현재 GKL 일본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태권도 일본국가대표 코치로 올림픽 메달도 땄고요.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잘 이해해준 면도 있지만, 저의 꿈에 관해 자주 물어봐 줍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한참 동안 열변을 토하는데 다 들어주고 기억했다가 응원하고 도와줍니다. 남편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거예요.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고 교수에게 비행기 안에서 프로포즈를 한 남편 조창용 씨.

고 교수에게 비행기 안에서 프로포즈를 한 남편 조창용 씨.

 
고주선 교수와 남편 조창용 씨(45)는 처음 만난 날로부터 100일 만에 결혼식을 올렸고, 프러포즈도 하늘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 했다고 한다. 출발부터 남달랐던 두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 만들어갈 하프타임 이후의 후반전 인생이 궁금하다.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몸이 전부다> 저자 jycyse@gmail.com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news.joins.com/Digitalspecial/210)

 
 

[제작 현예슬]

 
관련기사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