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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아"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24) 영화 '1987'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비롯된 이한열 열사의 죽음까지 다룬 영화 '1987'의 관객 수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달 27일 36만의 관객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현재 475만 5881명의 관객 수(1월 11일 KOBIS통계 기준)를 넘어서며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아마 오늘과 내일,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며칠 전 저녁,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식으로 리뷰를 써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이니 시위니 그저 역사책에서만 본 세대로서 그때 그 시절을 겪은 분들에 비해 얼마나 공감을 하며 이해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겪어보지 않고는 그 사람을 진짜 이해할 수 없다'는 지론이 있는 저로선 이 영화를 소개하기가 다소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느낀 그대로를 전달해드리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던 중 심정지가 오자 경찰이 의사를 불러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CJ E&M]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던 중 심정지가 오자 경찰이 의사를 불러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CJ E&M]

 
모든 일은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던 중 사망에 이르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경찰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화장하려 하죠. 죽은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은 서울대학교 남학생 시신의 화장동의서에 서명하라는 윗선의 압박. 상식선에서 봐도 '뭔가 있구나'를 직감한 공안부장(하정우 분)은 화장동의서에 날인을 거부합니다. 
 
다음날 경찰은 심장쇼크사로 수사 중 돌연 사망했다고 공식발표를 하는데요. 이때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웃기지도 않는 유행어(!)를 만들어냅니다.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여 사건의 흐름 파악하기 쉽게 보여줍니다. 각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간단히 인물을 소개하고, 등장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죠. 각 사건은 이 인물들 간의 유기적 관계에 따라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이후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사건이 흐르는데요.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인물들의 '선택'입니다.
 
경찰이 죽은 박종철의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화장동의서에 서명하도록 공안부장(하정우 분)을 설득하고 있다. [사진 CJ E&M]

경찰이 죽은 박종철의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화장동의서에 서명하도록 공안부장(하정우 분)을 설득하고 있다. [사진 CJ E&M]

 
공안부장이 윗선에서 시키는 대로 화장동의서에 도장을 찍었더라면, 우연히 사건의 실마리를 알게 된 초임 기자가 이 사실을 그냥 넘겼더라면, 그 시절 언론들이 '남영동에서 죽은 대학생 관련 기사는 싣지 말라'는 보도지침을 준수해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부검의가 박종철의 사인을 고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시킨 대로 심장쇼크사로 발표했더라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종의 '자유'들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칩니다. 
 
무서웠던 건 등장인물들이 모두 '애국'을 위해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 외에 박 처장(김윤석 분)까지도 일명 '빨갱이'를 처단한다는 목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잡아들입니다. 모진 고문과 협박들을 통해 '빨갱이'를 만들어가죠. 이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진정한 '애국'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영화 <1987>에서 '빨갱이'를 처단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박처장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1987>에서 '빨갱이'를 처단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박처장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모든 배우가 빛나는 영화였습니다. 특별출연한 강동원과 여진구 배우까지도요.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물이 실존 인물이지만, 유일하게 대학생 연희(김태리 분)만 허구 인물로 등장합니다. 또래의 그 나잇대 처럼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학생으로, 사건을 그저 지켜보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이한열의 사건을 신문으로 목도한 후 직접 참여자가 된 그 시절 대다수의 젊은이를 대변하는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필요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연희와 이한열의 러브라인이 다소 맘에 걸립니다.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애정씬은 없지만,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죽을 때 연희가 선물한 운동화에 시선이 머뭅니다. 카메라도 운동화를 클로즈업하죠. 시위에 동참한 친구들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쓰러지는 장면들을 보면서 시위대의 앞선에 나선 이한열의 외침에 갑자기 러브라인 뿌리기라니... 굳이 필요한 장면이었나 생각됩니다. 
 
또한 공안부장 역의 하정우 배우 쓰임이 아쉽습니다.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이 많은 탓이었을까요? 영화 초반, 그만의 분량을 잡아가나 싶었는데 후반에 가 비중이 떨어집니다. 무거운 극의 분위기를 상쇄시키는 데에만 활용했다는 게 아쉬웠습니다. 
 
영화 <1987>에서 유일한 허구 인물인 연희 역을 맡은 배우 김태리. [사진 CJ E&M]

영화 <1987>에서 유일한 허구 인물인 연희 역을 맡은 배우 김태리. [사진 CJ E&M]

 
극 중 연희는 자신을 동아리에 가입시키려 찾아온 한열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그 시절 그녀에게 대신 답해주고 싶네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아"
 
덧글. 
저는 이 영화를 신촌에서 봤는데요.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연세대학교'가 어쩐지 달리 보이더군요.
 
 
1987
영화 <1987> 포스터.

영화 <1987> 포스터.

감독: 장준환
각본: 김경찬
출연: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촬영: 김우형
음악: 김태성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29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개봉일: 2017년 12월 27일
 
현예슬 멀티미디어 기자 hyeon.yeseul@joongang.co.kr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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