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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넘은 베조스, 헤지펀더서 아마존 제왕 되기까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가 역대 최고 부자에 올랐다. 블룸버그 빌리어네어 트래커에 따르면 지난 8일(현지시간) 기준 베조스의 재산은 1051억 달러(약 112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포브스는 베조스의 재산을 1044억 달러로 집계했다. 이는 지금껏 세계 최고 부자로 알려졌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현재 재산인 933억 달러를 넘어서는 것이자 게이츠가 1999년 세운 순자산 기록도 깨는 것이다.  
 
베조스의 재산 대부분은 아마존 주식이다. 베조스는 아마존 주식 7890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증시 호황 속에서 아마존 주가는 올해만도 7% 가까이 오르면서 10일 1252.70달러의 종가를 기록했다. 지난해 수익률은 56%에 이른다.  베조스는 유력일간지 워싱턴포스트와 민간 우주여행 사업체인 블루오리진도 소유하고 있다. 
한때는 헤지펀드의 부사장이던 그가 아마존을 창업하고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을 돌아봤다.  
 
비범한 어린 시절…멘토는 외할아버지
1964년 1월 제프 베조스를 낳은 어머니 재키의 나이는 열일곱이었다. 역시 10대였던 남편과는 1년만에 결별했다. 그후 아들 제프가 4살 때 쿠바 이민자인 마이크 베조스와 재혼했다. 제프는 자신이 10세가 될 때까지 마이크가 양아버지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당시엔 그보다는 시력이 떨어져 안경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 재키는 재혼을 앞두고 서커스 단원이던 아들 제프의 생부를 찾아가 관계를 단절할 것을 요구했다. 베조스 전기를 쓴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 브래드 스톤이 인터뷰를 위해 생부를 찾아갔을 때 그는 자신의 친아들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 된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베조스는 어릴때부터 비범한 아이였다. 3~4살 때 이미 자신의 침대 나사를 모두 손으로 돌려 침대를 해체했다. 그는 어른들이 쓰는 커다란 침대에서 자고 싶었다고.  
 
4세부터 16세까지 베조스는 텍사스의 외갓집 목장에서 여름을 보냈다. 풍차 수리는 물론, 송아지 예방접종, 숫소 거세작업을 직접 하기도 했다.   
외할아버지 로런스 브레스튼 가이스는 베조스에게 다대한 영향을 미쳤다. 베조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심 분야에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손자를 키웠다. 베조스는 2010년 모교인 프린스턴대 졸업식 연설에서 “사람이 똑똑하기 보다는 친절하기가 더 어렵다”는 어릴적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소개하기도 했다.
베조스는 ‘스타트랙’ 재방송을 빠짐없이 챙겨볼 정도로 스타트랙 광팬이었다고 한다. 아마존 설립 당시에 '스타트랙'에 나오는 장 뤽 피카드 선장의 대사를 인용해 회사명을 Amazon MakeItSo.com 으로 검토했을 정도다.  
베조스는 10대 시절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여자친구와 함께 ‘드림 인스티튜트’라는 열흘짜리 어린이 캠프를 기획하기도 했다. 참가비는 1명 당 600달러로, 6명이 신청했다. ‘로드 오브 더 링’ 시리즈는 당시 그의 애독서였다.   
학교에서 베조스는 “인류의 미래는 이 지구상엔 없다”고 교사에게 말했다. 어릴적 그의 꿈은 우주사업가였다. 그는 현재 블루 오리진이라는 항공우주회사를 세워 그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초기 모델 컴퓨터 앞에 앉은 젊은 제프 베조스.

초기 모델 컴퓨터 앞에 앉은 젊은 제프 베조스.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한 베조스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엔 인텔과 벨 연구소의 구애를 뿌리치고 피텔(Fitel) 이라는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피텔을 그만둔 뒤 베조스는 훗날 CNET을 창설하게 될 핼시 마이너와 함께 팩스로 뉴스를 송신하는 스타트업을 준비했다. 그러나 창업 직전 포기했다. 대신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사인 DE Shaw로 전직, 그곳에서 4년만에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93년 그는 DE Shaw의 리서치 어소시에이트인 매킨지 터틀과 결혼했다. 베조스보다 6살 어린 매킨지는 같은 프린스턴대 동문으로, 현재 소설가로 활동중이다.
그 무렵 베조스는 인터넷 사업이 1년새 2300% 성장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숫자에 놀란 그는 인터넷을 활용할 방법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 있는 20개의 제품을 리스트로 만들었고, 그 중 서적이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안정적 헤지펀드사 나와 차고서 아마존 창업 
베조스는 안정적인 DE Shaw를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람은 작은 일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다”고 베조스는 말한다. “80세인 사람에게 94년이라는 최악의 시기에 월스트리트의 연말 보너스를 포기하고 퇴사하는 일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인터넷이라고 불리는 혁명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평생을 후회할 것을 난 알았다. 이런 결론에 도달했기에 명쾌하게 새로운 일에 뛰어들 수 있었다.”
DE Shaw의 상사는 베조스를 데리고 뉴욕 센트럴 파크를 몇시간을 걸으며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 베조스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안정적인 삶 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삶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아마존은 이렇게 탄생했다. 매킨지와 제프 베조스 부부는 텍사스로 날아가 아버지의 차를 빌려 시애틀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동 중 베조스는 아내가 운전하는 자동차 조수석에서 자신이 세울 회사의 수익예측을 하고 있었다. 도중에 차를 세우고 아내와 함께 바라본 그랜드 캐년의 일출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베조스는 시애틀의 자신의 집 차고에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을 세웠다. 회의는 근처 대형 서점 체인인 '번즈앤 노블'에서 했다. 
회사 설립 당시 주문이 들어오면 사무실에 설치된 종이 울리도록 했는데, 직원들은 종이 울릴 때 마다 컴퓨터 앞에 모여 주문한 고객이 자신들의 친구인지를 확인하기에 바빴다고 한다. 종은 점차 자주 울리게 됐고, 몇 주 만에 종을 치우게 됐다고. 
아마존은 출범 한 달만에 미국 전역을 넘어 45개국에 서적을 판매했다. 회사는 승승장구했고, 97년 5월15일 주식을 상장했다.   
IT거품이 붕괴됐을 때 애널리스트들은 베조스의 회사를 ‘Amazon.bomb(폭탄)’ 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아마존은 혼란을 극복하고 IT 거품 붕괴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스타트업이 됐다. 
아마존의 주가는 IT 거품 붕괴 후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금은 책 판매뿐 아니라 가전과 의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포함해 인간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전자상거래와 드론 무인 택배, 인공지능 등 전방위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제프 베조스는 매우 엄격한 상사로 유명하다. 때론 사원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킬 때도 있었다고 한다. 소문으로는 베조스는 리더십 트레이너를 고용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했다고 한다.   
베조스는 아마존 전체에서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완전히 금지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대신 사원들에게 6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직접 손으로 만들게 했고, 비판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베조스는 구글과 달리 직원들에게 식사나 마사지 같은 특전을 무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근검 절약하는 기업문화로 유명하다.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지난해 말 블룸버그가 발표한 전세계 500대 부호 가운데 그는 9위를 기록했다. 529억 달러의 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지난해 말 블룸버그가 발표한 전세계 500대 부호 가운데 그는 9위를 기록했다. 529억 달러의 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98년 베조스는 구글에 투자했다. 당시 그는 25만 달러(약 2억8000만원)를 출자했다.  이는 2004년 주식공개 당시 약 330만주에 상당한 금액으로, 지금은 약 22억 달러(약 2조4500억원)의 가치가 있다. (베조스는 구글 주식 공개 후 이들 주식을 지금도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1999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제프 베조스. 당시 타임 역사상 최연소 인물이었다.

1999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제프 베조스. 당시 타임 역사상 최연소 인물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베조스는 과연 어디에 돈을 쓸까. 2012년 그는 워싱턴주에서 동성결혼 권리 옹호하는 단체에 250만 달러를 기부했다.  
베조스는 자신이 갖고 있는 4200만 달러짜리 텍사스주의 토지 일부를 1만년의 시간을 조각하듯 디자인한 ‘지하시계(The Clock Of The Long Now)’ 건설을 위해 기부했다.
 
신문사·우주산업 넘어 "새 아이디어 또 사업으로"
2013년 8월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를 2억5000만 달러에 매입했다.  
베조스의 항공우주사업인 블루 오리진은 우주개발의 역사적인 위업을 쌓아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재사용로켓 기술 개발이다. 첫 실험은 2015년 이뤄졌다. 발사된 로켓에서 무인 캡슐을 분리해 낙하산으로 하강시킨 뒤 직립 상태로 착륙시키는 원리다. 이는 우주여행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경쟁사들도 로켓 재사용 사업에 속속 뛰어들었다. 블루 오리진은 지난해 바다 위에서 실시한 로켓 재활용 실험도 성공했다. 
워싱턴포스트 오너인 제프 베조스가 지난 2016년 이란에 억류돼 있던 워싱턴포스트 기자 제이슨 이라이아와 함께 자신의 전용기 안에서 포즈를 취했다.

워싱턴포스트 오너인 제프 베조스가 지난 2016년 이란에 억류돼 있던 워싱턴포스트 기자 제이슨 이라이아와 함께 자신의 전용기 안에서 포즈를 취했다.

베조스는 2003년 헬기추락 사고를 당했다. 텍사스에서 헬기를 타고 블루 오리진 테스트 벌서 시설을 물색하던 중 그가 탄 헬기가 강풍에 휘말려 땅으로 곤두박질 친 것이다. 이 사고로 머리를 다쳤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회사로 복귀한 그의 일성은 “두번다시 헬기는 타지 않겠다”였다.    
하지만 2016년 그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날아가 이란에 억류돼 있던 워싱턴포스트 기자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베조스는 시애틀의 워싱턴호수의 저택을 갖고 있으며, 2007년에는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즈의 7개의 침실 딸린 대저택을 2450만 달러에 구입했다. 식물을 키우는 온실과 테니스코트, 수영장, 게스트하우스가 있으며, 영화배우 톰 크루즈가 이웃이라고 한다. 
2017년 1월 베조스는 워싱턴D.C.의 카로라마 지구에 있는 옛 직물박물관을 구입했다. 매매가는 2300만 달러로, 워싱턴 D.C.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베조스는 또 뉴욕의 센트럴파트 서쪽에 위치한 센트리 타워에 약 929평방미터 넓이의 빌딩 세 채를 연결시킨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주식공개 후 20년. 아마존의 시가총액은 4570억 달러에 달했다. 버클레이즈는 아마존이 최초의 1조달러 기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드디어 올해 들어 베조스는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됐다. 1051억달러(112조 5000억여원)를 넘는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연결시켜온 베조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않는, 실패에서 배우지 않는 기업"이라고 말한다. 
도전과 선택 앞에서 주저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젊은이들에게 베조스는 도전할 것을 주문한다. 
“80세가 된 당신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고 합시다. 그때 가장 마음에 남아있는 것, 그리고 기억나는 것은 분명 당신이 평생 내린 결정의 순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당신만의 길을 개척하십시오.”
(2010년 프린스턴대 졸업식 연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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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