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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후궁부터 처녀귀신까지 다 해봤다 ‘서프라이즈의 김태희’

무명·재연 배우 3인의 도전과 열정
적지 않은 배우가 주목 받은 2017년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 진선규, 관록을 보여줬던 나문희, 언제나처럼 인정받았던 송강호…. 반면 MBC 연기대상 시상자로 선정된 후에야 이름 석 자가 불린 무명배우 최교식 같은 이들도 있다. 열의만큼은 톱스타 못지 않은 배우 세 사람에게 2018년의 꿈 얘기를 들었다. 간절하고 뜨거웠다.
 

◆겉은 딴딴, 안은 향기 나는 배우=“경현씨, 국제시장 조감독이에요. 우리 ‘픽스’됐어요.” 배우 류경현(28)은 2013년 들은 이 말을 잊지 못한다. 표준말이 서툰 경남 토박이라 숱하게 오디션에서 떨어진 그에게 영화 ‘국제시장’은 한줄기 단비였다. 류씨는 “뭘 정했다는 건지, 처음 들어본 말이라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며 “다시 ‘우리 같이 해요’라고 하길래 길바닥에서 방방 뛰었다”고 말했다. ‘국제시장’은 류씨가 배역을 맡아 출연한 첫 작품이다. 배역 이름은 ‘고삐리2’. 대사는 “(외국인 노동자를 조롱하며) 저래 하이 까네 나라가 못 살지”였다.
 
류경현

류경현

이후로 JTBC ‘힘쎈 여자 도봉순’, SBS ‘당신이 잠든 사이에’,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 등에 출연했다. 단역으로 중국집 배달원도 됐다가, 고정 역할로 주인공 회사 동료도 됐다. 재밌는 경험도 많다. 류씨는 “KBS ‘오 마이 비너스’ 때 신민아 선배가 나타나면 미모에 놀라는 연기를 해야했는데 실제로 너무 예뻐서 멍하게 있었다”며 “감독님이 황당한 듯 웃으면서 ‘왜 그러냐’고 하는데 아무 말도 못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6등급 배우다. 사람에겐 등급이 없지만 배우는 등급이 있다. 등급을 기준으로 방송 출연료가 나온다. 6등급은 가장 낮은 등급. 최고 등급인 18등급까지는 까마득하다. 꿈만 갖고 이어가기에 쉬운 생활도 아니다. 하지만 꿈마저 놓으면 류씨는 다 잃는다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세 번 대형병원에서 주차장 출차 일을 하면서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연습실에 나가 다른 지망생과 대본 리딩을 하는 이유다. 동료와 함께 쓴 시나리오로 단편 영화를 찍어 곳곳에 출품도 한다.
 
연기 욕심은 톱스타 못지않은 신인·무명 배우들. 그들의 꿈은 2018년에도 이어진다. 배우 류경현. [사진 JK필름]

연기 욕심은 톱스타 못지않은 신인·무명 배우들. 그들의 꿈은 2018년에도 이어진다. 배우 류경현. [사진 JK필름]

류씨는 “누군가 물고기에 대해 물으면 보통 물에 살고, 아가미가 있다고 설명하겠지만 나는 비록 물고기라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더 부딪치면서 겉은 딴딴하고 안은 향기 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류경현
나이 28
연기경력 5년
출연작(배역)
영화 ‘국제시장’(고삐리2)
‘잡아야 산다’(PC방 폐인)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세희 팀원)
‘당신이 잠든 사이에’(순경) 등 
 
◆가발 안 쓰고 할머니 연기 할 때까지=배우 김하영(39)은 ‘서프라이즈 그 애’다. 올해로 14년 간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에 출연하고 있지만 대중에게 ‘김하영’으로 불린 적은 거의 없다. 그저 ‘걔’라거나 ‘용인민속촌 장금이’ 혹은 ‘서프라이즈 김태희’ 정도다. 김씨는 “2004년 8월 서프라이즈로 데뷔해 청춘을 함께 보냈다”며 “이름은 몰라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 매번 놀란다”고 말했다.
 
김하영

김하영

그는 예고와 대학 영화학과를 졸업, 탤런트 공채 시험에도 도전했지만 안 됐다. MBC 성우 시험을 보던 중 제안을 받아 ‘서프라이즈’ 배우가 됐다. 이후는 ‘외길’ 인생이다. ‘서프라이즈’에서 중국·일본·부탄 등 온갖 아시아인을, 양귀비나 조선 왕조 후궁에서 처녀귀신까지를 연기했다. ‘서프라이즈’ 배우 중 최고참이기도 하다.
 
이 프로에선 멜로 연기가 가능한 거의 독보적인 여배우로 활약중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생활이 안 된다. 고객 응대 요령, 성희롱 예방 등 각종 교육 영상 속 배우나 기업 행사의 MC, 케이블 채널 방송 등 가리지 않고 일하는 이유다. 김씨는 “연기는 아무리 힘들 때도 재밌는데 일이 없어 돈 못 벌 때는 정말 힘들다”며 웃었다.
 
연기 욕심은 톱스타 못지않은 신인·무명 배우들. 그들의 꿈은 2018년에도 이어진다. 김시호. [사진 MBC]

연기 욕심은 톱스타 못지않은 신인·무명 배우들. 그들의 꿈은 2018년에도 이어진다. 김시호. [사진 MBC]

연기 욕심은 누구 못지않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인데 서프라이즈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며 “내가 나오면 ‘서프라이즈 걔 아냐?’하며 흐름에 방해가 될까 봐 그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주일 중 이틀 촬영해 그 다음 주 내보내는 촉박한 일정 때문에 ‘서프라이즈’ 촬영 현장은 늘 호흡이 짧다. 김씨는 “슬픈 장면에서 감정 잡을 시간도 없이 ‘큐’ 하면 바로 울어야 한다”며 “올해는 긴 호흡으로 내면을 더 끌어내 보여줄 기회가 분명 올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서프라이즈’를 계속 할거냐고 묻자 “시켜주는 한 할머니 역을 가발 안 쓰고 할 때까지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리곤 조심스레 말했다. “저희 보고 재연 배우라고 하시는데요, 사실 모든 연기가 상황에 대한 재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재연 배우라고 하실 때 조금 힘이 빠지기도 해요. 재연 배우 말고, 그냥 배우라고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웃음)”
 
김하영
나이 39
연기경력 14년
출연작(배역)
방송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만국 유람기’ ‘어부의 만찬’
드라마 ‘왔다! 장보리’(영어교사)
‘살맛납니다(간호사)’ 등 
◆그 자리에 마냥 서있지 않는 연기자=“영화를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것, 이것 하나로도 고통이 즐거움이 됩니다.” 연기 경력 3년, 새내기에 속하는 배우 김시호(32)는 왜 연기를 하려느냐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영화 애호가다. 고교 시절 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은 시간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맥락을 파괴하며 이야기를 이어갔고 김씨는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연극 연출을 거쳐 3년 전 본격적으로 영화에 뛰어들었다.
 
김시호

김시호

출연작을 꼽자면 영화 ‘대장 김창수’, ‘아빠는 딸’, ‘스윙키즈’ 등. 가장 최근에는 ‘1987’에 나왔다. 강동원이 만화 동아리에 신입생을 모아 5·18 광주민주화운동 영상을 보여주려 하자 “이거 무슨 영화예요?”라고 묻는 학생이 바로 그다. 그에게는 이 말이 상업영화에서 맡은 인생 첫 대사다. 마침 연세대 사회학과를 나온 그는 “매년 6월이면 학교 중앙도서관에 이한열 열사 사진이 걸린다. ‘1987’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올랐다”고 했다.
 
김씨는 촬영이 없을 때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번다. “주로 공연 무대 설치와 소위 말하는 막노동이나 택배 상·하차 일을 한다”고 말했다. 일용직에 가까운 이런 일자리를 찾는 건 언제 오디션 공고가 뜰지 몰라서다.
 
연기 욕심은 톱스타 못지않은 신인·무명 배우들. 그들의 꿈은 2018년에도 이어진다. 김시호. [사진 JTBC]

연기 욕심은 톱스타 못지않은 신인·무명 배우들. 그들의 꿈은 2018년에도 이어진다. 김시호. [사진 JTBC]

“진심만 들어가면 좋은 거 비싼 거 최신 이런 거 안 써도 죽이는 게 나온다는 거지.” 최근 JTBC 예능 ‘전체관람가’를 통해 완성된 양익준 감독의 단편영화 ’라라라‘에서 김씨가 ‘시호’ 역을 맡은 한 대사다. 그의 생각도 같다. 진심만 담을 수 있다면 언젠가 명배우가 되리라 믿는다. 그는 “매일 발음·발성 연습을 하고, 연기 스터디에도 나간다. 수시로 방에 불을 끈 채 마음대로 독백하며 내면을 마주하려 한다”고 말했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엔 이렇게 말했다. “도전하고 좌절하고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다가도 그 자리에 마냥 서 있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떴느냐 안 떴느냐를 떠나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 배우면 이미 성공한 게 아닐까요?”
 
김시호
나이 32
연기경력 3년
출연작(배역)
영화 ‘1987’(신입생)
‘라라라’(시호), ‘아빠는 딸’(정배)
‘대장 김창수’(놀란 죄수) 등 
[S BOX] 아역보다 못한 무등급, 오디션 봐서 배역 따야
방송 연기자에게 적용되는 등급제는 출연료 지급을 위한 기준이다. 최하위인 6등급은 70분 미니시리즈에 출연 시 회당 44만원 안팎을 받는다. 7등급은 51만원 안팎, 8등급은 60만원 안팎으로 올라간다. 최고 등급인 18등급은 185만원 안팎이다. 1~5등급은 아역 등급이다. 회당 출연료는 몇 시간을 촬영하든 똑같다. 섭외를 중개해주는 캐스팅 디렉터에게 출연료 30% 정도를 소개비로 낸다. 스타 배우는 따로 계약해 등급제와 무관하게 출연료를 받는다. 등급은 경력, 배역의 비중 등을 고려해 계약 과정에서 상향 조정된다. 가장 힘든 건 ‘무등급’ 배우다. 조금이라도 더 비중있는 배역 맡기가 힘들다. ‘캐스팅 디렉터’가 참고할 만한 이전 작품의 영상이 없어 최대한 발품을 팔고 오디션을 봐 배역을 따내야 한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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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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