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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일 합의 폐기 안 해 다행이지만 앙금 남아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전 국립외교원장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전 국립외교원장

한·일 위안부합의 검증 TF의 결과 보고서를 본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가 절차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다고 말했다.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법조인 출신인 문 대통령의 지적이기에 사실상 합의가 폐기되고 재협상의 방향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본에 재협상 요구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뜻밖이었다. 고육책(苦肉策)이라고 생각하지만 외교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존엄과 마음의 상처를 생각한다면 한·일 위안부합의(2015년 12·28 합의)는 매우 미흡하다. 그러나 검증 TF도 인정했다시피 지난 25년 가까이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힘겹게 담판을 해온 핵심 쟁점에서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 도의적 책임을 넘어 일본군 관여 책임 인정, 총리의 공식적 사죄와 반성, 일본 정부의 예산 출연 등 사실상 법적 책임을 구성하는 3대 핵심 요소가 포함됐다.
 
이번에 합의가 폐기됐다면 이런 3대 핵심 요소도 사라졌을 것이다. 2015년 한·일 합의는 양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주연급 조연’ 역할을 했다. 위안부 존재를 부정하고 강제성 인정과 사죄를 담은 ‘고노 담화’를 검증 명목으로 형해화하려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사죄와 반성을 담은 합의안을 수용했다. 여기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의 측면 지원이 주효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성노예 문제’라고 일본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일본의 역사 퇴행을 비판했다. 미 의회도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고 지속적으로 아베 정권에 압력을 가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 퇴행을 비판하는 미국의 압력과 국제여론 앞에서 아베 총리는 자신의 입장을 번복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세계의 지성들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환영했다. 만약 합의가 폐기됐다면 한·미 관계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지에 악영향을 줄 소지가 있었다.
 
문 대통령은 역사는 역사대로 진실과 원칙에 따라 다뤄 나갈 것이며,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해 정상적인 한·일 외교관계를 회복해갈 것이라는 이른바 ‘투트랙 접근’을 천명했었다.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이번 정부 조치로 전반적인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길 기대한다.
 
시론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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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협의 심각화, 중국의 부상, 미국의 새로운 동맹관 등을 고려할 때 한·일의 전략적 협력 필요성은 증대되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과 아베 총리의 평창방문을 위한 길도 일단 열렸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2015년 합의 이전의 원점으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당시 총리가 김영삼 대통령과의 제주도 정상회담에서 공식적으로 사죄를 표명하고 아시아평화기금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일본 주도의 위안부 문제 해결 시도는 일본 정부가 직접 참여하지 않은 민간기금을 통했다는 이유에서 한국 시민단체 반대로 무산됐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49억원을 지출해 피해자들에게 일본이 지급하려 했던 돈(각 3800만원씩)을 지급했다.
 
이번에 문 정부에서 다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시민단체 반대로 좌초됐다. 일본이 출연한 10억엔 대신 한국 정부가 나서서 피해자들에게 108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일 정부 간 두 차례의 위안부 문제 해결 시도가 동일한 패턴으로 좌초된 셈이다.
 
이제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어떻게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것인가. 정부는 2015년 합의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일본 정부의 자발적이고 진정한 사과를 기대한다고 했다. 촉구도 아닌 기대였다. 누구도 아베 정권이 자발적이고 진정한 사과를 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 정부는 한국의 합의이행을 촉구하며 1㎜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감정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는 채 한·일 관계의 가시가 될 것이다.
 
과거사 문제는 한국의 일방적 입장으로 풀리지 않는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접근만이 국제사회의 지지와 일본인들의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자세를 얻을 수 있는 길이다. 2015년 합의 당시 생존했던 피해자 47분 중 36분이 정말 어려운 결단을 내려 합의를 수용하고 치유금을 받았다. 이분들이 내린 화해의 결단을 정부는 살리지 못했다. 이제 31분이 살아계시지만, 피해자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회한이 우리에게 남을 것이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전 국립외교원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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