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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퇴근 빨라 좋겠다고? 좋은 시절 다 갔다

논설위원이 간다 - 안혜리의 뉴스의 이면 
오후 5시가 되자 일제히 퇴근하는 이마트 본사 직원들. 오른쪽에 '정시퇴근을 위한 몰입도와 생산성 강화'라는 문구가 담긴 포스터가 보인다. 장진영 기자

오후 5시가 되자 일제히 퇴근하는 이마트 본사 직원들. 오른쪽에 '정시퇴근을 위한 몰입도와 생산성 강화'라는 문구가 담긴 포스터가 보인다. 장진영 기자

지난 2017년 12월 8일. 신세계가 새해부터 대기업으론 처음으로 임금 삭감 없는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전격적이었다. 바로 전날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실을 찾아 속도 조절을 요청하는 등 재계에선 난색을 보여왔던 터라 직원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 life balance)'을 내세운 신세계의 갑작스런 근로시간 단축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신세계가 이번에도 앞장서서 정부 정책 보조 맞추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적 목소리가 당장 터져나왔다. 여야 합의대로 현행 68시간인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것도 쉽지 않은 마당에 신세계의 적극적인 정부 정책 발 맞추기 행보로 다른 기업만 곤란하게 됐다는 불만이다. 신세계의 이번 결정은 워라밸을 실현하는 기업문화로 정착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직접 현장에 가봤다.  

신세계가 주35시간 근무제를 실시하면서 매일 오후 5시30분 PC 강제 셧다운을 실시하고 있다. 오후 5시가 되면 퇴근을 알리는 메시지가 뜨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이마트 본사 직원 컴퓨터에 정시퇴근 메세지가 떠있다. 장진영 기자

신세계가 주35시간 근무제를 실시하면서 매일 오후 5시30분 PC 강제 셧다운을 실시하고 있다. 오후 5시가 되면 퇴근을 알리는 메시지가 뜨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이마트 본사 직원 컴퓨터에 정시퇴근 메세지가 떠있다. 장진영 기자

사원 여러분, 퇴근하십시오. "
지난 1월 4일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 오후 5시가 되자 퇴근을 독려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사무실의 개인 PC 모니터 한쪽에 '30분 이후 꺼집니다'라는 안내문과 함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오전 9시 시작한 이날 근무시간의 끝을 알리는 신호다. 직원들은 하나둘씩 컴퓨터를 끄고 짐을 챙겨 퇴근에 나섰다. 사무실에 남아봐야 PC가 오후 5시30분이면 강제로 꺼져 다음날 오전 6시까지는 다시 켜지지 않아 어차피 업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무실 뿐만이 아니다. 출장으로 한국을 비우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성수동 이마트 본사로 출근하는 정용진 부회장을 비롯해 이마트의 사무직 2000여 명의 컴퓨터가 예외없이 일제히 셧다운된다. 부서장의 사전 승인 없이는 심지어 해외 출장자가 들고나간 노트북까지 한국 근무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꺼질 정도다.  

 
신세계, PC강제 셧다운으로 퇴근 독촉
야근 못하니 업무 효율성 높일 수밖에
신세계가 2018년부터 대기업으론 처음으로 주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1월 4일 오후5시 무렵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서 직원들이 퇴근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신세계가 2018년부터 대기업으론 처음으로 주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1월 4일 오후5시 무렵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서 직원들이 퇴근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그렇다보니 오후 5시 무렵 이마트 본사 로비의 출입구 센싱 기계 앞엔 동시에 사람이 몰리면서 꽤 긴 줄이 만들어진다. 성수동 뿐 아니라 명동과 반포 등 신세계 다른 사무실도 같은 시간 모두 비슷한 풍경이다. 2018년 들어서면서 그룹 직원 5만 8000명 중 생산직을 제외한 5만 명(이중 이마트은 직원 3만명으로, 90%는 매장 직원 나머지 10%가 사무직)이 주 35시간 근무제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부서별 업무별로 재량껏 따라도 그만 안따라도 그만인 선택사항이 아니다. 부서원의 칼퇴근은 올 들어 바뀐 부서장 평가항목 중 하나. 부원이 특별한 사유없이 야근을 자주 하면 부서장에게 일단 경고장부터 보낸다. 경고를 받거나 나쁜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임원과 부서장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퇴근을 독려할 수밖에 없다.  

 
눈치보지 않고 퇴근하니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됐다. 당장 "가족과의 저녁식사 횟수가 늘었다"거나 "학원 수강신청을 했다""운동을 시작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근무시간 단축이 퇴근 후 삶의 모습을 바꿔놓은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직장 내 업무방식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가령 구내식당은 새해 들어 전에 볼 수 없던 긴 줄이 연일 생긴다. 주35시간 시행 전과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은 지금도 1시간이 보장돼 있지만 자발적으로 식사 시간을 줄여 서둘러 근무에 복귀하는 사람이 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남곤 신세계 그룹홍보팀 치프파트너(부장)는 "시행한지 얼마 안돼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가보면 줄이 엄청 길어 이용자가 늘어난 게 확연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입사 7년차인 장정우 가공식품 바이어(대리)는 "시행 전에는 업무량이 같은데 과연 칼퇴근이 가능할까 우려했다"며 "오후 5시에 퇴근하려면 무조건 시간 안에 일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일체 딴짓 안하고 업무에만 집중한다"고 말했다. 또 "개인 업무 뿐 아니라 회의도 체감할만큼 타이트해졌다"고 덧붙였다. 쓸데없는 취합 보고서가 없어진 건 물론이요, 보고서로 대체할 수 있는 미팅은 아예 잡지 않을 뿐 아니라 느긋한 분위기에서 "할 말 있으면 한마디씩 해보라"던 과거의 느슨한 회의도 사라졌다고 한다. 매장에서 근무하는 이수철 이마트 성수점 캐셔파트장도 "매장 영업시간이 1시간 줄어들면서 오히려 일의 집중도가 확 올라갔다"고 말했다. 신세계의 한 임원 역시 "미팅 뿐 아니라 모든 일정이 어찌나 촘촘한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에는 월요일 출근 후 첫 회의는 으례 '주말에 뭐 했는지' 묻는 걸로 시작해 정작 심도있는 결론은 못내린채 회의용 보고서 뒤적이다 끝나기 일쑤였다"며 "어떤 날은 어영부영 점심시간이 되면 느긋하게 커피까지 한 잔 하고 들어와 몇 시간 일하고, 또 그러다보면 어차피 일찍 퇴근 못하니 저녁이나 먹고 들어와 야근이나 하자라는 흐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솔직히 있었는데 이젠 아무도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없다"고 말했다.  
 
가족과의 시간 늘어 좋지만
업무량 같아 구내식당 가고 담배도 줄여

정말 칼퇴근을 한다. 1월 4일 오후 5시 23분. 이마트 본사 사무실이 텅 비어있다. 장진영 기자

정말 칼퇴근을 한다. 1월 4일 오후 5시 23분. 이마트 본사 사무실이 텅 비어있다. 장진영 기자

회사측은 근로시간 감축과 동시에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 2시간씩 '집중근무시간'을 만들었다. 전엔 필요에 따라 근무 중 아무 때나 삼삼오오 커피 마시거나 담배를 필 수 있었지만 이 시간엔 아예 흡연실 문까지 잠그고 고강도 업무를 하도록 한다. 당초 근무시간 감소로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따른 조치였다. 그런데 막상 퇴근시간을 1시간 당겨보니 따로 집중근무시간을 둘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무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효율은 높아졌지만 과거에 당연하게 누리던 근무 중 '적당한' 여유나 사적 친목도모는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 한마디로 편하게 일하던 좋은 시절은 다 간 셈이다.  

 
한국 근무시간 길지만
생산성 떨어지는 '야근의 역설'

 
신세계가 주35시간 근무시간을 들고 나온 표면적 이유는 장기근무가 만연한 근로환경을 혁신해 직원들이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무 효율성 제고라는 목적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 한국 직장인의 근로시간은 길기로 악명높다.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2016년 기준)은 2069시간으로, OECD 국가 중 한국보다 더 많이 일하는 나라는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노동생산성이다. 이렇게 오래 일하는데 정작 한국 근로자가 시간당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33.1달러로, OECD 평균(47.1달러)에도 한참 못미치는 거의 꼴찌 수준이다. 생산성이 가장 높은 아일랜드(83.2달러)의 절반도 안 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맥킨지와 함께 2016년 100개 기업 4만여 명을 대상으로 진단했을 당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도 야근이었다. 응답자 43%가 주 3일 이상 야근을 하는 등 평균 2.3일 야근을 하며 하루 평균 11시간이나 회사에서 보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중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시간은 5시간 32분에 불과했다. 더욱 심각한 건 야근을 많이 할수록 오히려 생산적 업무 시간이 줄어드는 '야근의 역설'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강혜진 맥킨지 한국사무소 파트너(조직문화 담당)는 "젊은 세대의 삶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같은 야근 문화를 그대로 두면 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구할 수 없다"며 "더이상 야근을 강요할 수 없는 만큼 효율을 높여 근무시간 감축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업무방식이 변하지 않은채 야근하지 말고 일찍 퇴근하라는 말만 해서는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성공의 관건은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이는 게 아니라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 것이냐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과거 여러 기업이 퇴근을 독려하며 야근 줄이기에 나섰지만 실패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룹 본사와 주요 계열사 인사팀이 주축이 돼 지난 2년 동안 가동해온 '근로시간 단축 TF'는 이런 문제의식 아래 업무의 중요도와 빈도를 리스트업해 하위에 있는 건 자동화하고 구조적 문제는 바꾸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할 방침이다. 그중 하나가 임원 일정을 인트라넷에 공개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고에 낭비하는 시간을 없애는 것이다. 이외에 매장에선 물류 시스템 개선으로 효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배광수 이마트 인재개발팀장(부장)은 "업무 효율화와 생산성 높이기가 이번 근무시간 단축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재곤 홍보담당 상무도 "일을 줄이는 게 아니라 압축적으로 일하라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그 방향으로 갈 게 분명하다면 빨리 가는 게 옳다는 판단에 근로시간을 줄였다"고 말했다. 신세계의 워라밸 실험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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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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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