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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3살 아기, '난우남'을 아시나요

‘‘김지영ㆍ변분돌ㆍ김하녀ㆍ임신ㆍ송아지ㆍ박하늘별님구름햇님보다사랑스런우리ㆍ김태희ㆍ전지현ㆍ도민준…’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나’입니다. ‘이름을 불러줬을 때 꽃이 됐다’는 김춘수의 시구처럼, ‘춥고 모진 날사이로 잊혀진 네 이름을 안다’는 아이유의 노랫말처럼,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가리킵니다.
 
‘올 한해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 새해 벽두, 그래서 이름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이름에 얽힌 네 편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 우리 사회,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마지막 회는 이 땅에 태어났지만 이름 없이 살아야 하는 아이들과 이름을 잃어버린 무명(無名)씨의 이야기입니다.   
 

난우남은 '난우파출소에서 발견된 남자아기'란 뜻입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갖게 된 호칭이지요. 이제 세살이 된 이 아기에겐 아직도 이름이 없습니다.

난우남은 '난우파출소에서 발견된 남자아기'란 뜻입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갖게 된 호칭이지요. 이제 세살이 된 이 아기에겐 아직도 이름이 없습니다.

 
‘무명(無名) 난우남’, 아이의 이야기
 
아이는 ‘무명 난우남’으로 불렸다. 여름으로 가는 2015년 6월의 어느 날,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 난곡동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된 아이다. 아이의 신상이 기록된 구청 서류엔 ‘난우파출소에서 발견된 남자아이’로 적혔다. 이렇게 ‘난우남’이 된 아이는 병원을 전전했다. 첫 병원은 보라매병원이었다. 발견 당시 탯줄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파상풍 감염 위험이 컸다. 주사랑공동체에서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채 병원으로 보낸 이유다. 아기는 한 달 뒤 서울시립 어린이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번엔 뇌병변 장애가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아기에겐 이름 대신 ‘무명 난우남’이 따라다녔다. 아이는 지난해 8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산하 기관에 들어갔다. 아기는 이제 3살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 아이는 무명인(無名人)이다. 이름 없는 아이가 된 것은 부모가 없어서다. 대한민국에선 부모 등 가족이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돼 있어야만 출생 등록이 가능하다. 가족이 없으면 성을 창설한 다음에야 출생 등록을 할 수 있다. 성을 창설하려면 법원에 성본 창설 허가 청구를 해야 하는데, 이게 만만찮다. 10여종의 서류가 할 뿐 아니라 법원의 허가를 받기까지 6개월 이상이 걸린다. 병원에서 아이 출생 등록을 하지 못한 이유다. 출생 등록을 못 해 주민등록 번호가 없는 아이는 행려환자 관리 번호를 받았다.
 
어린이재단 기관에 입소한 아이는 ‘이우민’(가명)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입소 5개월이 다 되도록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다 지난 9일에야 신고를 완료했다. 법원의 성본 창설 허가를 이제 얻었기 때문이다. 그간 주민등록 번호가 없어 정부가 주는 생계급여와 장애수당, 재활치료 바우처 등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우민이를 돌보는 교사들이 가장 안타까웠던 건 재활치료 바우처였다.
 
뇌병변 장애가 심해서 음식을 삼키는 걸 어려워해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울면서 먹을 정도로요. 근육 발달을 돕고 강직을 늦추는 재활치료를 더 해주면 좋아질 텐데, 원의 예산만으론 벅차네요. ”(이인학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생활재활팀장)
  
아이에겐 태어난 지 3년이 다 되도록 진짜 이름이 없었다. 영아원 선생님들은 아이를 '우민'이라 불렀지만 사실 아이를 따라다닌 것은 '무명 난우남'이다.

아이에겐 태어난 지 3년이 다 되도록 진짜 이름이 없었다. 영아원 선생님들은 아이를 '우민'이라 불렀지만 사실 아이를 따라다닌 것은 '무명 난우남'이다.

 
출생신고도 못 하는 아이들
  
우민이를 돌보는 이 기관엔 버려진 아이들이 많다. 전체 원아의 73%(45명)다. 상당수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다. 영아원 입ㆍ퇴소 업무를 맡고 있는 김인숙 사회재활팀장은 “과거엔 입양단체에 있다가 오는 아이도 있었지만, 최근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보건복지부 데이터를 보면 더 뚜렷해진다. 매년 시설로 오는 아동 중 우민이처럼 버려지는 아이(유기 아동)의 비중은 2005년 2.6%에서 2015년에 7.1%로 늘었다. 시설로 오는 아동 숫자는 매년 줄고 있지만 버려지는 아이는 줄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2012년을 기점으로 버려지는 아동의 절대 숫자도 늘고 있다. 
 
개정된 입양특례법 하에선 출생 신고를 해야만 입양이 가능하다. 출생신고가 부담스러운 미혼모는 입양 대신 ‘베이비박스’를 선택한다. 실제로 2012년 이후 버려진 아이들의 수는 200~300여명으로, 베이비박스로 들어온 아기 숫자와 비슷하다. 아동의 보편적 출생신고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외려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드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 공동체 이종락 목사는 “아이를 낳은 기록이 남는 걸 두려워하는 미성년 미혼모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미혼부의 아이도 출생 신고는 쉽지 않다. 친모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아이를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릴 수 있도록 2015년 관련법(일명 사랑이법)이 개정됐지만, 이 과정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기 위해선 유전자(DNA)검사 확인서, 특별대리인 선임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서류가 복잡해 포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2015년 100건이 넘는 미혼부 출생신고가 있었지만, 법원이 허가한 것은 고작 16건에 그친다. 
 
탯줄이 달려있는 상태로 버려진 아이의 신상이 기록된 서류엔 '난우파출소에서 발견된 남자아이'라고 적혔다.

탯줄이 달려있는 상태로 버려진 아이의 신상이 기록된 서류엔 '난우파출소에서 발견된 남자아이'라고 적혔다.

무명의 삶 강요받는 불법 체류 외국인ㆍ난민의 아이들
 
한국에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나 난민 자녀들도 ‘무명인’으로 살아간다. 대한민국 국적 취득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모국 대사관도 출생 신고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국내에서 태어난 경우는 출생신고 수리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증명서가 있다고 해도 교육ㆍ의료 같은 사회 보장 서비스는 받지 못한다. 학교도, 병원도 갈 수 없다. ‘무명인’과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이 이름 없는 아이들은 특히 아플 때 서글프다. 난민 신청 중인 아프리카 출신 마리(가명) 씨의 딸 모모(가명)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법적인 이름이 없다. 모모가 급성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려 했을 때 병원은 “한국인의 보증이 없으면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일주일의 입원 기간 동안 모모의 병원비는 한국인의 3배가 들었고, 병원의 거부로 예방 접종도 받지 못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불법 체류 외국인은 22만3700여명에 달한다. 최근 7년 새 33.3%가 늘었다. 이들을 부모로 둔 미등록 이주 아동이 얼마나 되는지는 통계조차 없다. 2012년 경기 지역 단체들이 펴낸 ‘이주노동자 미취학 자녀 양육 환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자녀 111명 중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가 17%(19명)에 달했다. 안산외국인노동자 센터는 전국의 미등록 이주 아동이 최소 5000명에서 최대 2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난민도 마찬가지다. 2016년 12월까지 난민신청자는 2만 2792명에 달하지만, 이중 난민 허가를 받은 이들은 약 672명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2012년 173명의 난민 아동이 국내에 체류하는 것으로 집계했지만, 이후에는 따로 난민 아동 통계를 집계하지 않고 있다. 아동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난민 아동 실태조사(2013년)에 의하면 조사에 응한 48명의 난민 아동 전원이 한국에서 국적을 받지 못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부모의 국적ㆍ인종ㆍ불법 이주 여부와 관계없이 기본적인 인권을 누릴 권리를 갖는다. 한국은 28년 전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했다. 하지만 18ㆍ19대 국회에 이르러서야 이주 아동들이 출생신고를 통해 교육 및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주 아동권리보장기본법’이 발의됐다. 하지만 이조차도 반대 여론에 떠밀려 없던 일이 됐다.  
 

'내 이름'으로 개명한 한국인은 있을까?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하시다면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신기방기 대한민국 개명 검색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만약 링크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주소창에 개명검색기 주소(URL)를 복사해 붙여넣으세요. http://news.joins.com/Digitalspecial/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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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삶을 전전하던 박판선씨. 주민등록 말소로 이름을 잃었다.

거리의 삶을 전전하던 박판선씨. 주민등록 말소로 이름을 잃었다.

  
범죄에 노출되는 '이름'이 사라진 어른들
 
출생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무명인’은 어린이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했지만, 실종 상태가 오래 이어져 주민등록이 말소된 ‘성인 무명인’도 있다. 노숙자 박판선(63)씨 이야기다.
 
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박 씨는 10년 전쯤 집을 나왔다. 처음에는 술집 웨이터로 일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일하던 가게가 망하면서 길거리로 내몰렸다. 4년의 노숙 끝에 박 씨는 2011년 용산역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최성원 목사를 만났다. 최 목사가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에 들어가려 서류를 꾸미던 그는 자신이 ‘무명인’이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냈고 오랫동안 찾지 못하자 주민등록이 말소됐나 봐요. 전혀 몰랐어요. 노숙자들 대부분이 주민등록이 말소됐어도 모를 겁니다. 있어도 없어도 삶이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박판선씨)
 
주민등록 말소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복원하기는 쉽지 않다. 복원을 위해선 주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역이나 용산역 근처 고시원 주인들은 고시원 주소를 가지고 노숙자들의 주민등록을 복원시켜주기도 해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되도록 해 방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거죠. 노숙자 입장에서도 정부 지원금으로 방값 내고 남은 돈은 술을 사 먹으니 나쁠 게 없고요.” (최성원 목사)
  
주민등록이 말소된 노숙자는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2014년 사회 문제가 됐던 ‘염전 노예’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경찰의 일제 조사로 확인된 ‘노예 인부’ 300여명 중 27명이 주민등록이 말소된 ‘무명인’이었다.
 
이런 ‘무명인’은 우리 사회 얼마나 있을까? 정부의 공식 통계는 없다. 2005년 보건사회연구원이 추정치(1만1127명)를 발표한 게 마지막이다. 무명인에게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해주는 기획 소송을 진행 중인 대한법률구조공단의 통계를 통해 역으로 무명인의 숫자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총 1519명이 기획 소송을 통해 이름을 얻었다. 대법원의 가족관계등록 창설 신청 건수 역시 호적제가 폐지된 2008년 이후 2016년까지 총 2만 6700여건에 달한다.
 
오랜 거리의 삶을 끝내보려 쉼터에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이름없는 사람이 되어 말소된 주민등록을 복원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오랜 거리의 삶을 끝내보려 쉼터에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이름없는 사람이 되어 말소된 주민등록을 복원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름을 얻는다는 건 기본적인 인권의 시작점이에요. 서울 여성보호센터에서는 처음 기획소송 진행할 때 무적자가 500분 넘게 계셨는데 다들 이름을 얻으시고 이제 50여분 정도만 남았습니다. 대부분 방법을 몰라 주민등록증도 없이 살아오신 분들이죠. 성장환경진술 등 필요서류가 많다 보니,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 소송을 진행하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대한법률구조공단 강병훈 구조정책부장)
 
우민이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제도권 안에 편입되지 못한 수많은 ‘무명인’들. 그들은 존재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2018년, 이름을 찾으려는 수천 혹은 수만 명의 ‘무명인’에게 우리는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특별취재팀=김현예ㆍ정선언ㆍ정원엽 기자,사진=김경록ㆍ우상조 기자, 데이터분석=배여운, 영상=조수진, 디자인=김은교ㆍ김현서ㆍ임해든, 개발=전기환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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