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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곤충은 알고 있다, 강도에 당한 그가 숨진 시간

지난해 8월 16일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적한 농가 인근. 연구원 복장을 한 이들이 어디론가 돼지 사체를 옮기고 있었다. 이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 수풀이 우거지고 그늘진 곳에 죽은 돼지 한 마리를 놓았다. 이후 한 달 넘게 같은 장소를 매일 찾아와 사체를 점검하고 상태를 꼼꼼히 기록했다. 박성환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와 소속 연구원들이었다.  
박성환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와 소속 연구원들이 법의곤충학 연구를 위해 돼지 사체를 활용하고 있다. [사진 치안과학기술연구개발사업단]

박성환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와 소속 연구원들이 법의곤충학 연구를 위해 돼지 사체를 활용하고 있다. [사진 치안과학기술연구개발사업단]

 
박 교수는 “‘돼지 부패 실험’을 실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록지에는 매번 해당 장소의 온도ㆍ습도ㆍ강우량ㆍ조도가 적혔다. 특히 부패가 진행됨에 따라 어떤 종류의 벌레나 곤충들이 생기고, 이들이 어떻게 변하는지가 핵심 관찰 사항이었다.
 
연구팀이 진행한 실험은 ‘법의곤충학(法醫昆蟲學)을 활용한 사후경과시간 추정프로그램 개발’의 일환이었다. 경찰청의 의뢰를 받아 박 교수, 문태영 고신대 생물학과 교수 등이 속한 ‘치안과학기술연구개발사업단’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연구의 목적은 범죄 등으로 숨진 사람의 시신에서 발견된 파리 등을 통해 사후 경과 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 경찰 수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사망 시각을 알면 용의자 추적 등이 용이하다.
  
◇ “세계 최초 시식성 곤충 데이터화”
경찰은 사체에 모이는 시식성(屍食性) 곤충을 데이터화해 수사에 상시 적용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데모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범 적용할 계획이다.  
 
미국 등 과학 수사를 강조하는 외국 경찰들도 법의곤충학을 수사에 활용한다. 하지만 사업단에 따르면 지역ㆍ온도ㆍ습도ㆍ강우량ㆍ조도 등 환경에 따라 바뀌는 여러 시식성 곤충을 데이터화해 상시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화한 나라는 아직 없다. 김미나 사업단 실장은 “미국의 경우에 국토가 넓다 보니 정부 차원에서 이런 데이터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곤충 증거를 이용한 최소 사후 경과시간 추정 시스템’ 데모 초기화면. [사진 치안과학기술연구개발사업단]

‘곤충 증거를 이용한 최소 사후 경과시간 추정 시스템’ 데모 초기화면. [사진 치안과학기술연구개발사업단]

경찰이 데이터화하고 있는 대상 곤충은 파리ㆍ딱정벌레ㆍ나방ㆍ개미 등이다. 이 곤충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체에 알을 낳는다. 시신에 가장 일찍 도착하는 곤충은 주로 파리다. 시신에서 발견된 파리 유충이나 번데기, 성충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개체의 나이를 추적하면 사망 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온도ㆍ습도ㆍ조도 등에 따라 다르지만, 딱정벌레는 사망 후 14일을 전후로 발견되곤 한다. 
 
사업단은 수만 종 이상의 곤충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시식성 종들을 전부 조사하고 있다. 문 교수팀의 경우 현재까지 95종을, 박 교수팀은 37종에 대한 분석을 진행했다. 또 종별로 발견 상태에 따라 나이를 추정할 수 있도록 데이터도 구축하고 있다. 나아가 발생 단계별 발현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단계별 유전자(DNA) 분석도 하고 있다.  
 
박 교수는 “법의곤충학을 활용하면 사망 시간뿐 아니라 사망 장소나 시신이 옮겨졌는지도 알 수 있다”며 “지역마다 발견되는 곤충의 종류가 다르고 시신에서 발견된 곤충 종류가 갑자기 바뀌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소유주 유병언 사망 시간 추정도  
2014년 7월 세월호의 실질적 소유주라는 의혹을 받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전남 순천시에서 발견됐을 때도 경찰은 사망 시간을 추정하기 위해 법의곤충학을 활용했다. 
 
법의곤충학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배우 수전 서랜드와 숀 펜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베를린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줬던 영화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ㆍ1995년)’이 대표적이다. 혐의를 부인하던 용의자들은 파리 구더기의 나이로 사망 시각을 추정한 경찰의 추궁에 결국 범죄를 자백하는 내용이 나온다.  
 
곤충을 수사에 활용하는 방법은 1855년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파리의 한 주택에서 개조 중 벽난로 뒤에서 유아 시신이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근처에서 찾아낸 나방과 유충을 통해 1848년쯤 사망했다고 추정했고 이를 기초로 범인 체포에 성공했다.  
 
그래픽=박경민·차준홍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차준홍 기자 minn@joongang.co.kr

  
◇걸음걸이 분석도 3차원 데이터베이스화  
사람마다 다른 걸음걸이 특징을 찾아내 범인을 가려내는 ‘법보행(法步行)’ 기법도 발전하고 있다. 법보행 수사가 가장 먼저 효력을 발휘한 곳은 영국이다. 2000년 강도 사건에서 영국 수사팀의 법보행 분석 결과가 세계 최초로 법정 증거로 채택돼 유죄 판결이 나왔다. 대구고법도 지난해 5월 폐쇄회로TV(CCTV)에 잡힌 범인의 특이한 걸음걸이를 근거로 ‘금호강 살인사건’ 피의자 박모(31)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박씨는 왼쪽 다리를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회전하며 걷는 습관이 있었다.  
 
센서를 달고 측정한 사람의 걸음걸이가 컴퓨터에 입력된 모습. 3차원이기 때문에 상하좌우로 화면을 돌려가며 분석할 수 있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센서를 달고 측정한 사람의 걸음걸이가 컴퓨터에 입력된 모습. 3차원이기 때문에 상하좌우로 화면을 돌려가며 분석할 수 있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경찰은 한국인들의 걸음걸이를 더 세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서울대(분당서울대병원)ㆍ중앙대 등에 연구를 의뢰했다. ‘팔자걸음’으로 걷는 이들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평균적인 사람들이 걸음을 걸을 때 관절 움직임이 어떤지 등을 알면 법보행 분석을 더 세밀하게 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한 측정자가 몸에 29개 센서를 달고 걸음걸이 측정을 하는 모습. [분당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한 측정자가 몸에 29개 센서를 달고 걸음걸이 측정을 하는 모습. [분당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은 갤럽에 의뢰해 성남시민 500명을 무작위 추출한 뒤 그들의 걸음걸이를 분석해 한국인 걸음걸이의 표본을 만들고 있다. 분석 대상자들이 팔과 다리, 발 등에 29개의 센서를 달고 걸으면 적외선 카메라와 특수감지판이 정확한 움직임을 측정한다. 이 병원 이경민 정형외과 교수는 “데이터가 많이 쌓이면 다양한 보행 패턴이 나타나고 용의자 식별능력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영익ㆍ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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