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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암컷과 짝지으면 후손 더 많은데 …‘암수 한 쌍 결합’ 왜

[조현욱의 빅 히스토리] 영장류 15~29%는 짝과 함께
일부일처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 짝짓기 행태다. 하지만 포유동물 중 한 시즌이라도 단 둘이 짝을 짓는 종은 9%에 불과하다. 일부일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적어서 3~5% 정도다. [픽사베이]

일부일처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 짝짓기 행태다. 하지만 포유동물 중 한 시즌이라도 단 둘이 짝을 짓는 종은 9%에 불과하다. 일부일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적어서 3~5% 정도다. [픽사베이]

“일부일처는 진화의 수수께끼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동물학과 디터 루카스 교수의 말이다. 포유류 중에 암수가 같은 영역에서 번식기의 한 차례 이상을 함께 지내는 종은 전체의 9% 정도다. 영장류는 이보다 조금 많은 15~29%가 짝이 되어 함께 지낸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볼 때 문제다. 이론상 수컷은 많은 암컷과 짝짓기를 하면 후손을 더 많이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암수 한 쌍 결합(pair bond)’은 왜 진화했을까. 과학계가 몇십 년째 논쟁을 벌이고 있는 미해결 문제다. 주목을 받는 것은 →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암컷 → 유아 살해 방지 → 수컷의 양육분담 가설이다.
 
먼저, 2013년 8월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포유류 2545종의 진화사를 통계로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일부일처가 진화하는 것은 암컷들이 넓은 지역에 퍼져 있어서 수컷이 돌아다니며 경쟁자를 물리치기 어려울 때다. 육식동물과 영장류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영양가가 풍부한 사체, 잘 익은 과일은 희귀자원이다. 이를 찾다 보니 독신 암컷의 관할 영역이 점점 넓어졌고 여기에 수컷이 적응했다는 것이다.
 
같은 달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연구팀이 미국립과학원 회보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여기서는 유아 살해를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연구팀은 영장류 230종의 진화사를 시뮬레이션한 뒤 추리 통계분석(베이즈 추론)을 적용했다. 그 결과 위의 3가지 가설 모두가 일부일처와 상관관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양한 영장류 계통에서 일부일처 행태보다 일관성 있게 먼저 등장하는 현상이 하나 있었다. 유아 살해의 위협이 커지는 것이었다. 이는 집단 외부
에서 들어온 수컷이 암컷을 지배하거나 암컷에게 성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젖먹이 새끼를 죽이는 것을 말한다. 젖먹이가 없어지면 암컷은 배란을 시작해 임신 가능 상태가 된다. 유아 살해는 현대에도 50종 이상의 영장류에서 목격된 현상이다. 일부일처는 암컷에게 전략적 동반자가 필요해서 진화했다는 얘기다. 자신과 아기를 항상 지켜줄 수컷 말이다.
 
두 건의 논문은 수컷의 양육분담에 대해 설득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어떤 종이 일부일처를 계속 ‘유지’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엄마가 아기를 혼자 돌보기에는 칼로리나 에너지의 부담이 너무 큰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때 수컷이 가족과 함께 머물면서 먹거리를 제공하는 등 양육에 참여하면 자신의 새끼가 살아남을 확률이 커진다. 이것이 암컷과의 긴밀한 유대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는 언제부터 일부일처가 시작됐을까. 먼저, 대형 유인원과 인간의 진화적 계보가 700여만 년 전에 갈라진 직후라는 주장이 있다. 이때 3가지 새로운 행태가 등장했다고 한다. → 두 발로 걷게 되면서 자유로워진 손으로 먹거리를 운반한다 → 남녀 한 쌍이 결합한다 → 여성 배란의 외부 신호를 숨긴다. 미국 켄트주립대학의 인류학자 오웬 러브조이의 가설이다. 그에 따르면 일부다처제 짝짓기 시스템이 남녀 한 쌍 관계로 진화한 배경은 이렇다.
 
 
인간에게 일부다처의 특징 많이 남아
마운틴고릴라 수컷의 몸집은 암컷의 두 배다. 전형적인 일부다처의 체형이다. [위키미디어카먼스]

마운틴고릴라 수컷의 몸집은 암컷의 두 배다. 전형적인 일부다처의 체형이다. [위키미디어카먼스]

지위가 낮은 수컷 둘이 서로 싸우는 데 쓰던 에너지를 암컷에게 가져다줄 먹거리를 찾는 쪽으로 전환했다. 먹거리는 짝짓기의 인센티브였다. 암컷은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수컷보다 믿을 만한 식량 공급자를 선호했고 수렵과 채집을 더 잘하는 수컷과 짝을 지었다. 결국 암컷은 엉덩이 피부가 부풀어 오르는 등 임신가능성(배란)을 나타내는 표지를 잃게 됐다. 자신의 파트너가 먹을 것을 구하러 밖에 나가 있을 때 다른 수컷들을 끌어들였을 표지 말이다. 러브조이의 가설에 대해서는 반론이 많다. 일부일처는 그보다 훨씬 뒤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2013년 4월 ‘진화인류학’저널에 캐나다 몬트리올대의 인류학자가 발표한 논문을 보자. 그에 따르면 사람과(科)에 속하는 우리의 첫 조상들은 침팬지처럼 상대를 가리지 않고 섹스를 했다. 그러다가 고릴라처럼 일부다처제로 이행했다. 많은 짝을 거느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다른 수컷과 싸움을 많이 하고 암컷을 지켜야 한다. 일부일처제는 일부다처제의 노고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으로 등장했을 것이다.
 
이런 일은 150만~2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의 시대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다른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 화석 증거에 따르면 에렉투스 여성의 체격은 남성에 근접하기 시작했으며 그 차이는 현대인과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에렉투스가 그 선조들보다 수컷 사이의 경쟁이 덜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보다 배타적인 짝짓기 행태로 이행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영장류는 암수의 체격이 비슷한 경우 일부일처인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진정한 일부일처제 동물이 아니라는 증거도 많다. 일부일처는 가능하며 많은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에게 미리 정해져 있는 짝짓기 시스템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수컷이 여러 암컷과 짝을 짓는 일부다처 동물의 특징이 많다.
 
첫째, 남성의 몸집이 여성보다 크다. 이것은 암컷을 독차지하기 위해 수컷들이 서로 다투는 일부다처 동물의 특징이다. 일부다처인 고릴라 수컷의 몸집은 암컷의 2배다. 대체로 일부일처인 긴팔원숭이는 암수의 체중이 거의 같다. 사람은 남성이 여성보다 20% 무겁다. 이를 해석하면 인간은 일부다처 성향을 가진 일부일처 동물이란 얘기다.
 
둘째, 소녀가 소년보다 성적, 사회적으로 일찍 성숙한다. 이 또한 일부다처 동물의 특징이다. 수컷이 암컷보다 늦게 사회적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나이 들어 덩치를 더 키우고 아마도 더 현명해진 다음에 말이다.
 

몽골의 칭기즈칸 수백명의 자녀 둬
셋째, 일부다처는 우리의 유전자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부계로만 유전되는 Y염색체는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의 DNA에 비해 변이가 적다. 우리 선조 중에 아버지의 숫자가 어머니의 숫자보다 적었다는 의미다. 특히 유명한 것은 몽골제국의 황제 칭기즈칸(1162~1267)의 유전자다. 2003년 태평양에서 카스피해에 이르는 아시아 지역에서 16개의 인구집단을 분석한 결과를 보자. 이에 따르면 조사 대상 아시아 남성의 8%(세계 남성의 0.5%)가 거의 동일한 Y염색체 염기서열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DNA에 축적된 변이를 분석한 결과 이 계통은 대략 1000년 전 몽골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은 칭기즈칸을 시조로 보고 있다.
 
그는 수백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낳으려면 추가 조건이 필요하다. 이들이 세대를 거듭해 아들을 많이 낳는 특이한 사건이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강한 권력을 지닌 남자가 많은 여성으로부터 자식을 얻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일부다처가 인류의 역사에서 대세였다는 또 다른 증거는 X염색체에서 나온다. 여성의 성염색체는 XX, 남성의 성염색체는 XY라는 점을 염두에 두자.
 
2008년 미국 애리조나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을 보자. 이들은 세계 6개 인구집단에 속하는 90명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태평양의 멜라네시아인, 유럽의 바스크인, 중국의 한족, 아프리카의 3개 종족이다. 그 결과 X염색체의 변이가 다른 염색체의 경우보다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부분의 여성이 자식을 낳았지만 남성은 일부만이 후손을 남겼다는 의미다.
 
그리고 서구의 문화가 식민지 확대 등으로 널리 퍼지기 전에는 일부다처가 일반적이었다. 외계인 동물학자가 지구를 방문해 이런 사실을 모두 알고 나면 어떤 결론을 내릴까.
 
인간에게 일부다처가 “자연스럽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인구의 대부분은 둘이서만 섹스를 하는 한 쌍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현상이 일반화했을까.
 
지난해 4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린 논문을 보자. 이에 따르면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일부일처를 시행하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자연선택에서 우위에 서게 된다. 연구팀은 수학적 모델을 통해 이를 보여 주었다. 핵심 요인은 성병의 영향과 일부일처주의자들의 일부다처주의자에 대한 처벌이다.
 
이 모델이 상정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규모가 큰 일부다처 사회는 남자들이 성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 그러면 번식성공율이 낮아지는 등의 폐해가 커진다. 따라서 일부일처제인 대규모 집단은 일부다처 집단보다 경쟁력이 크다. 집단의 크기와 일부일처에는 긍정적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드러났다. 이것은 성병 가설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예컨대 일부일처는 아버지의 자식 투자를 활성화한다. 자녀가 자신의 씨임을 더욱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육 참여는 인간에게 특히 중요하다. 태어날 때부터 도움이 필요하고 부모의 투자가 크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다처는 여성 입장에서 보면 번식 성공률이 낮아지기 쉽다. 그 이유는 주로 다른 아내와 갈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구 사회에 관한 한, 일부일처가 일반적인 이유는 또 있다. 성비가 비슷한 종의 경우 일부다처는 번식과 섹스에서 제외된 다수의 수컷을 필연적으로 낳게 된다. 좌절한 수컷들은 사회불안을 일으키기 쉽다. 따라서 일부일처는 힘센 개체들이 사회 평화를 위해 자신의 이점을 양보한 곳에서 발달한 것일 수 있다. 일부일처는 본질적으로 민주화를 강력하게 촉진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일부일처를 허용하고 심지어 강제함으로써 현대 사회는 여성, 어린이, 심지어 대다수 남성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서울대 졸업. 중앙일보 논설위원, 객원 과학전문기자,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역임. 2011~2013년 중앙일보에 ‘조현욱의 과학산책’ 칼럼을 연재했다. 빅 히스토리와 관련한 저술과 강연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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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