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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관두고 미국에 숙취음료 팔아서 석 달 만에 30억 벌었어요”

과음하고 난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후회한다. ‘어제 술을 조금만 마실 걸….’ 머리는 아프고 속은 쓰리고 출근을 해야 하는데 몸은 천근만근이다. 해장이 절실한 순간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숙취를 해소하는 나름의 비법이 한 가지쯤 있다. 꿀물을 마시거나 헛개나무를 달인 물로 속을 달래기도 한다. 얼큰한 콩나물국이나 북엇국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국가마다 나름의 해장 음식은 있다. 폴란드에선 우유로 쓰린 속을 달래고 그리스에선 버터를 활용한다. 이탈리아에선 토마토나 올리브오일로 숙취를 해소하지만 한국만큼 ‘해장 문화’가 발달한 국가도 없다. ‘해장국’이라는 명칭의 음식이 있고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약국에는 다양한 ‘숙취해소제’가 즐비하다.
 
햄버거나 피자로 해장한다고 소문난 미국에서 숙취해소 음료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교포 청년이 있다. 스타트업 82 LABS 이시선(27) 대표다. 우연히 방문한 한국에서 접한 숙취해소 음료에 매력을 느껴 테슬라모터스를 그만두고 지난 7월 미국에서 숙취해소음료 회사를 창업했다. 창업 3개월 만에 매출은 30억원을 찍었다. 40만 병이 넘게 팔렸다.  

 
숙취해소음료를 만들었다. 공과대학을 나온 것으로 아는데. 
“정확히 내가 개발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숙취해소음료를 마셔보고 흥미가 생겼고 관련 문서를 찾아봤다. 헛개나무가 숙취에 좋다는 내용이 담긴 중국의 고문서를 봤다. 한국에서도 헛개나무 얘기가 많았다. 최근 자료 중에서 2011년 미국 UCLA에서 숙취 관련 연구 논문을 쓴 의사가 있었다. 헛개나무 추출물이 숙취 해소 효능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보냈고 다음 달 바로 비행기를 타고 LA로 가서 얘기를 나눴고 제품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서양에는 해장이라는 개념이 딱히 없다. 미국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나.
“술을 마시면 다음 날 숙취가 있다는 사실은 한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 모두가 안다.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술 시장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소진된 물과 커피를 합한 것보다 술이 더 많이 팔렸다. 숙취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고 숙취 해소를 원하는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미국에선 해장을 어떻게 하나.
“해장이라는 개념은 따로 없고 기본적으로 물이나 이온음료를 즐겨 마신다.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주면 이뇨를 촉진해 몸속에 남아 있는 숙취 유발요인(아세트알데하이드)이 배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여러 인종이 섞여 있다 보니 ‘옥수수가 숙취 해소에좋다' 처럼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는 많은데 한국처럼 시장이 딱 형성된 것은 아니다.”
 
캔디‧젤리‧환 등 다양한 형태의 숙취해소제가 있는데 음료를 선택한 이유는.
“환‧파우더‧음료 형태로 샘플을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환이나 파우더는 약이라는 인식이 있어 섭취하는데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음료는 이온음료를 마시듯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마시는 모습을 보고 음료로 결정했다.”
 
미국에서 페이스북, 우버를 거쳐 테슬라에서 근무했다. 창업을 위해 퇴사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테슬라에선 1년 반 동안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했다. 제품 개발부터 연구·추진까지 해당 상품에 대한 모든 것을 맡았다. 재미있었지만 창업이 조금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오히려 회사 동료들이 투자도 하고 용기도 북돋워 줬다. 내 첫 투자자가 당시 팀장이었다. 만약 창업이 성공적이지 않다면 돌아가면 된다.”
 
퇴사한 회사에 다시 돌아간다는 건가. 그런 경우가 많나.
“내가 일하던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은 훌륭한 경력이 된다. 더 좋은 회사로 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거나 같은 회사로 돌아갔을 때 내 가치(연봉이나 직위)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테슬라도 마찬가지다. 혹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돌아오라고 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창업 준비를 했다.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요즘은 창업이 어렵지 않다. 이전에는 내가 어떤 제품을 만들려면 그 제품을 생산할 설비와 공장이 있어야 하고 자본금도 많아야 한다. 지금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 공장이 없어도 좋은 설비와 인력을 갖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가 많아서 내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준다. 자본금 조달도 ‘엔젤리스트’처럼 투자자와 연결해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하면 된다. 꼭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간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소액으로 샘플을 만들고 주변 사람 반응을 살폈다. 숙취해소음료는 유독 반응이 뜨거웠다.”
 
한국에선 많은 청년이 꿈이나 적성과 상관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우려가 크다.
“자란 환경이 다르니 단정해서 말하긴 어렵지만 내가 뭘 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뭘 잘할 수 있는지 고민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마음, 즉 열정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열정의 대상이 바뀌기도 한다. 일단 내가 관심 있는 분야와 가장 가까운 환경에 머물면서 그 분야에 몸담은 사람들을 살펴보는 거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을 알게 되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기회가 열린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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