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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무르~아무르~ ” 춘향가 … 37세 입양아의 프렌치 판소리

한 살 때 프랑스로 입양돼 그곳에서 자란 신미진씨. 지난 8일 서울 종로구의 연습실에서 판소리 춘향가에 들어 있는 창(唱) ‘사랑가’를 부른 뒤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노랫말을 프랑스어로 바꿔 불렀다. 한국국적을 회복해 이중국적을 갖고 있는 신씨는 5년 전부터 한국인 친엄마를 찾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한 살 때 프랑스로 입양돼 그곳에서 자란 신미진씨. 지난 8일 서울 종로구의 연습실에서 판소리 춘향가에 들어 있는 창(唱) ‘사랑가’를 부른 뒤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노랫말을 프랑스어로 바꿔 불렀다. 한국국적을 회복해 이중국적을 갖고 있는 신씨는 5년 전부터 한국인 친엄마를 찾고 있다. [우상조 기자]

‘프랑스에 입양된 동양인.’ 주변 사람의 눈에 그는 늘 이방인이었다. 그 ‘굴레’가 불편했다. 양부모는 자주 다퉜다. 은행원인 양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다. ‘나는 누굴까’ 하는 정체성 혼란과 불우한 환경 속에서 방황했다. 거식증과 폭식증을 오가며 10대를 보냈다. 20대 땐 우울증을 앓았다. 삶을 포기하려 한 적도 있었다. 스물한 살 때 독립해 이후 홀로 살아 왔다. 양부모와는 수년 전부터 남남처럼 살고 있다. 30대에 시작한 친엄마 찾기는 계속 벽에 부닥쳤다.
 
한 살 때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된 신미진(37·프랑스명 미진 시메옹)씨. 그는 벼랑 끝에서 ‘판소리’를 만났다. 지난해 친엄마를 찾기 위해 네 번째로 한국에 왔을 때였다. 판소리 공연을 보고 특유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곧장 판소리 수업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판소리를 프랑스어로 번역해 부른다. 자신을 옭아맨 ‘굴레’가 오히려 독특한 꿈을 안겨줬다. ‘불어 판소리꾼’이라는.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연습실(소을소리판)에서 만난 신씨는 춘향가에 들어 있는 창(唱) ‘사랑가’를 흥겹게 불렀다. “아무르 아무르 아무르 투 에 몽 아무르(Amour amour amour tu es mon amour,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했다. “판소리는 멜로디가 너무 좋아요. 스토리가 풍부하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샹송과 정서가 비슷해요.” 그가 말했다.
 
신씨는 노력파다. 수업 내용을 녹음해 틈틈이 들으며 복습한다. ‘득음’을 위해 거의 매일 북한산에 올라 두 시간씩 노래한다. 실력은 빠르게 늘었다. 지난해 아마추어 소리꾼 경연대회 ‘나도야 소리꾼’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최근 서울 성북구청의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데뷔 무대를 갖기도 했다. 내년 가을엔 한국과 프랑스에서 ‘불어 판소리’ 공연을 할 계획이다. 그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민혜성(45·무형문화재 이수자)씨는 신씨를 두고 “‘연습벌레’다. 부족한 점을 지적하면 다음 수업시간에 싹 고쳐서 나타난다”고 평했다.
 
처음엔 판소리를 한국어로 불렀다. 판소리 때문에 한국어도 배웠다. 그는 “판소리 영어 가사로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한 후 한국어 가사를 외웠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하지만 서툰 한국어 발음 때문에 만족할 수 없었다. ‘프랑스어로 한국의 판소리를 부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그는 ‘사랑가’를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문화가 반영된 언어를 번역하는 게 어려워요. 예를 들어 ‘업고 놀자’를 프랑스어로 직역하면 의미 전달이 안 돼요. 그래서 ‘몽트 쉬르 몽 도(monte sur mon dos, 내 등 위로 올라와)’라고 표현했어요.” 지난해까지 파리에서 살았던 그는 ‘판소리의 나라’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어 졌다. 최근 한국 국적을 회복해 이중국적자가 됐다.
 
한 살 때의 신씨 모습. 입양기 관에 보관돼 있던 사진이다. [사진 신미진씨]

한 살 때의 신씨 모습. 입양기 관에 보관돼 있던 사진이다. [사진 신미진씨]

그는 2012년 처음 한국에 왔다. 친엄마를 찾고 싶어서였다. 입양기관의 서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생후 4개월 때 버려졌다. 충북 청주시의 한 고아원에 있다가 입양기관으로 보내졌다. 신미진이란 이름도 고아원에서 지어줬다. 청주시 사직동의 버스정류장에서 한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면서 아기를 맡기고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연이 신씨의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는 “나와 같은 고아원에 있다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입양기관으로 보내진 다른 아이에게도 똑같은 사연이 적혀 있었다. 어쩌면 나에겐 다른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동부의 프랑슈콩테대에서 수학·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후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뒤늦게 배우가 되고 싶어 틈틈이 연극 무대에 단역이나 조연으로 섰다. 하지만 그는 점점 친엄마를 찾는 데 매달렸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아르바이트를 해 돈이 모이면 한국에 왔다. 경찰서에 유전자(DNA)를 등록하고, ‘엄마를 찾는다’는 전단도 뿌렸다. 하지만 번번이 친엄마를 찾지 못하고 프랑스로 돌아갔다.
 
서울 성북구청이 지난 2일 주최한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프랑스어로 창(唱) 『사랑가』를 부르는 신미진씨. [사진 성북구청]

서울 성북구청이 지난 2일 주최한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프랑스어로 창(唱) 『사랑가』를 부르는 신미진씨. [사진 성북구청]

그는 아직 친엄마를 만나지 못했지만 판소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깨달았다고 한다.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고, 내 외모가 어떤지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그에게 ‘이제 당신은 누구인가요’ 하고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판소리를 좋아하는 미진, 춤과 연극을 좋아하는 미진, 웃는 미진, 우는 미진. 그리고 꿈꾸는 미진, 살아 있는 미진.”
 
※신미진씨가 소리하 는 모습은 인터넷 중앙일보 (joongang.joins.com)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미진씨가 소리하 는 모습은 인터넷 중앙일보 (joongang.joins.com)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씨는 요즘 수녀원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묵주 만들기 아르바이트를 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연습실에서 그는 집과 가족이 없어 막막한 자신의 상황을 판소리로 표현했다. 판소리 ‘흥부가’에서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나는 대목을 개사해 노래했다. 그는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면서 해외 입양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어린 시절 입양아 친구가 양부모에게 매 맞아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물론 행복하게 사는 친구들도 있지만 국적과 외모가 다른 데서 오는 정체성 혼란은 필연적이죠. 이렇게 잘살게 된 나라(한국)에서 해외 입양을 보내는 것은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요즘 매일 밤 이런 기도를 한다고 했다. “세계에 판소리를 알리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친엄마를 만나 꼭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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