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섈 위 댄스! … 근육 경직 그들이 웃었다

파킨슨 환자 무용 치유 교실 ‘댄스 포 피디’
캐나다 국립발레학교에 가면 손모양 조각이 있다. 발레리나의 발도 아니고, 조각가의 손이다. 파킨슨병에 걸려 작업을 포기했던 한 조각가가 이곳의 ‘댄스 포 피디(Dance for PD·Parkinson’s Disease·이하 댄포파)’ 수업을 받고 다시 조각을 할 수 있게 되자 조각해 기증한 작품이다.  
 
파킨슨병은 근본적 치료가 어렵긴 하지만 학계를 중심으로 ‘댄포파’를 통한 운동기능 향상과 삶의 질 개선이 보고되고 있다.
 
‘댄포파’란 미국의 유명 안무가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MMDG)이 2001년부터 브루클린 파킨슨 그룹과 함께 파킨슨 환자를 위해 개발한 무용 교육 프로그램으로, 현재 20개국 140여 개 커뮤니티 그룹에서 시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이사장 박인자)가 무용수 직업전환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9월 처음 시작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환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현장을 중앙SUNDAY가 처음 공개한다.

 
‘댄스 포 피디’는 춤을 통해 신체 능력 향상은 물론 우울증 극복과 삶의 질 개선을 도모하는 예술 교육 프로그램이다.

‘댄스 포 피디’는 춤을 통해 신체 능력 향상은 물론 우울증 극복과 삶의 질 개선을 도모하는 예술 교육 프로그램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2시, 혜화동 예술공간 서울의 ‘스튜디오 마루’에는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어르신 20여 명이 모여든다. 노란 티셔츠를 입은 강사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운영하는 ‘댄포파’ 시범클래스에 참여하는 파킨슨 환자들과 강사 자격에 필수적인 50시간 실습 이수에 나선 무용가들이다.
 
“오른쪽 귀와 어깨를 최대한 붙였다 떼세요. 이번엔 왼쪽.”
 
평소 스트레칭 삼아 하던 동작이다. 의자에 앉은 채로 따라해 봤다. 그런데 정미영 강사 지시대로 왼쪽·오른쪽을 연결하고 엉덩이를 함께 앞뒤로 움직이니 그대로 춤이 됐다. 저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굳은 표정이던 어르신들도 어느새 빙긋 웃고 있다. “이런 동작 언제 많이 했죠?” “국민학교 때지.” 꼭 다문 입술도 즐거웠던 옛날을 기억하자 한순간에 열렸다.
 
이윤희 강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지난주엔 송편 만들어 보셨죠? 김장철이니 오늘은 즐겁게 김장을 해볼까요? 근데 제가 시집을 안 가서 김장을 안 해봤어요. 많이 가르쳐 주세요~.” 배추를 쪼개고, 소금을 뿌리고, 재료를 채썰고, 양념을 무치는 과정들이 정겨운 해금 연주와 함께 안무로 승화됐다. 평범한 부엌일이 그럴싸한 춤이 되니 환자들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판소리 ‘춘향가’에 맞춰서는 춘향이도 되어본다. 향단이와 그네도 타고, 몽룡을 만나 얼싸안고 덩실덩실. 그러고 보니 앉아만 있던 어르신들이 어느새 벌떡 일어나 스윙을 하고 있다.
 
이제 다같이 손을 잡고 작별인사를 나눌 시간. “몸의 일부에 내가 주고 싶은 것을 담아 전달하라”는 강사의 말에 서로 이마를 맞댄다. 누구는 살짝 포옹을 하며 “사랑합니다”라는 말도 건넨다. 너나없이 눈시울이 붉어진다.
 
춤으로 접근 … 파킨슨 환자 우울증 개선
강사와 수강자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수업을 진행한다. 전호성 객원기자 [전문무용수지원센터]

강사와 수강자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수업을 진행한다. 전호성 객원기자 [전문무용수지원센터]

파킨슨병은 치매와 더불어 대표적인 퇴행성 뇌신경질환이다. 전국적으로 9만 명 이상, 60세 이상의 1.47% 정도가 환자로 추정된다. 노령화 사회가 되면서 급증하는 추세로, 건강보험통계에 따르면 2004년 대비 2012년에 2.4배 증가했다. 치료는 약물요법 일변도다. 의학계에서 물리치료 및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파킨슨 환자만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인지능력은 그대로면서 신체기능만 저하되는 파킨슨병은 환자의 우울증이 가장 심한 병이다. 운동치료와 음악치료, 댄스치료 등 우울증을 해소시키는 심리적 처방이 절실한 이유다. ‘댄포파’가 주목한 점도 바로 환자의 정서와 심리다. 파킨슨 환자는 ‘댄포파’ 수업에선 환자가 아닌 무용수로 다뤄진다. 강사도 당연히 전문적으로 훈련된 무용가들이 맡는다. 무용가의 아름다운 움직임으로 심미적인 자극을 주어야 하고 창의적인 안무 능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업 장소도 의학적 처방에서 벗어나 무용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병원보다는 극장이나 무용단·무용학교·주민센터 등 커뮤니티 공간이 권장된다.
 
프로그램 디렉터 데이비드 레벤탈의 수업 모습.

프로그램 디렉터 데이비드 레벤탈의 수업 모습.

국내 첫 시행을 위해 ‘댄포파’ 창립강사이자 프로그램 디렉터인 데이비드 레벤탈이 지난 9월 초 내한, 심포지움과 강사 양성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무용은 환자들을 잠시나마 파킨슨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많은 참가자들에게 치료에 도움이 되고 있지만 이 수업은 치료법으로써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예술적 경험 속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예술성과 우아함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죠.” 기계적인 치료 과정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삶의 질 자체를 높이는 목적을 가진 예술 교육이란 얘기다. 결과적으로 얻어지는 치료는 덤인 셈이다.
 
현재 소정의 과정을 마친 강사 25명이 9월 18일부터 시범클래스를 열고 무료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내년 봄부터 관련 연구를 위해 고려대 구로병원에 ‘댄포파’ 클래스를 개설할 예정인 고성범 고려대 신경과 교수는 “파킨슨 환자만을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이라 의미가 있다”며 “좌절감이 큰 환자들에게 정상인으로서의 마인드를 강조함으로써 스스로 설정한 일상생활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하는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빨리 생겼으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텐데”
‘댄포파’는 MMDG가 개발한 12단계 레슨 플랜에 따라 진행된다. 마크 모리스의 댄스 레퍼토리를 단순화한 전문 레퍼토리와 스토리텔링으로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창작 레퍼토리로 나뉘는데, 스토리텔링은 ‘댄포파’의 골격에 맞추되 각 나라 문화에 맞는 공통 경험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창작된다. 고립된 일상을 사는 환자들이 좋은 기억을 함께 나누며 기꺼이 움직이게 하는 구조다.
 
시범클래스에서는 팀을 이룬 강사들이 함께 안무를 짰다. 오리지널 댄포파에서 바비큐 문화를 팝 음악에 맞춰 춤으로 표현했다면, 우리는 국악에 맞춰 김장, 송편 빚는 움직임으로 재편하는 식이다. 환자가 대상이라고 어중간한 동작은 아니다. 심상 이미지 훈련을 통해 능력 이상의 이미지까지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흐름이다. “일부러 훈련하면 잘 안 되지만 이야기를 자연스레 표현하려 하다보면 움직이게 된다. 강사들의 아름다운 동작이 목표가 되게 자극해주는 게 핵심”이라는 게 강사들의 말이다.
 
호응은 뜨겁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혜화동 스튜디오에 오기 위해 중고차를 구입한 사람도 있고, 멀리 인천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강사들은 “어르신들의 표정 변화가 드라마틱하다”고 입을 모았다. 근육 경직 탓에 무표정이 특징인 환자들이 ‘댄포파’에선 울고 웃는다는 것이다. 수업 참여 이후 장애등급이 한 단계 좋아졌다는 장혜경씨는 “(이 프로그램이) 늦게 생겨 속상하다”고 했다. “빨리 생겼으면 내가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텐데 왜 이제 생겼나 싶어요. 건강할 때도 춤 춰본 적이 없으니 잘 못 따라하지만 처음보단 나아졌죠. 더 자주 하고 싶어요.”
 
보호자 박성균씨는 “서울대병원에서 매일 재활치료도 받고 있지만 ‘댄포파’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재활치료는 기계적인 운동이고 치료사와 일대일로 하거든요. 여기선 음악에 맞춰 같은 병 가진 환우들과 자연스럽게 섞이니 심적인 위로는 물론 경쟁심까지 생겨 더 열심히 하십니다. 아버님 우울증도 많이 좋아지셨어요.”
 
박인자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 
“일단 강사 양성 시급, 3년이면 전국 보급” 
올해 10주년을 맞은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은퇴 무용수의 직업개발을 위해 창업 아카데미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시작한 ‘댄포파’ 시범 클래스는 사실 겨울철 날씨와 예산 문제 탓에 지난달 잠정 중단하고 내년 봄 재개할 예정이었다. 38년간 무용계에서 쌓은 업적으로 지난달 옥관문화훈장을 수상한 박인자(사진) 이사장은 “환자들의 강력한 요청과 강사들의 열정으로 시범클래스를 계속 열기로 했다. 예산 문제는 자체 후원금으로 충당 예정”이라고 밝혔다.
 
‘댄포파’를 들여온 계기는.
“강사양성 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해 여러 가지 찾다가 발견했다. MMDG에 연락하니 아시아 지역에 아직 없어 굉장히 협조적이더라. 9월 워크숍 때는 홍콩·말레이시아 등에서 찾아오기도 했다. 우리가 아태 지역 거점이 될 수 있도록 현재 MOU 체결 단계에 있다.”
 
환자와 무용가가 윈윈하는 차원이다.
“무용인들은 활동 경력을 직업으로 살릴 수 있고, 환자는 신체 변화에 따른 우울감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의료계 협업이 필수적인데 4월 파킨슨 200주년 심포지움에 참여했더니 반응이 좋았다. 입소문을 타고 환자들의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내년 초 요양병원에서도 클래스가 개설될 예정이다.”
 
환자들이 클래스 확대를 간절히 원하던데.
“일단 강사 양성이 시급하다. 3년 정도면 전국으로 확산될 것 같다. 환자들이 6개월 이상 하면서 몸에 변화를 느낀다면 호응이 더 클 거다. 파킨슨협회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전국에 치매센터가 많고 복지 예산이 많지만, 파킨슨병을 위한 예산은 부족하다.”
 
외국에서는 무용단이나 발레학교 등에 개설된다던데.
“환자들이 병원보다 새로운 공간에서 무용수들과 어울리면 좋겠지만 우리 현실에선 어렵다. 국공립 무용단조차 연습공간이 부족하고 민간의 시설은 더 열악하다. 환자들의 접근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당분간 우리가 후원금으로 마련한 스튜디오에서 지속할 예정이다.”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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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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