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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만에 부활한 청년 조선 통신사, 조상 발자취 더듬다

지난 1일 오사카역사박물관에서 만난 한일 대학생들이 연락처를 주고받고 있다. [사진 국립해양박물관]

지난 1일 오사카역사박물관에서 만난 한일 대학생들이 연락처를 주고받고 있다. [사진 국립해양박물관]

‘祝 ユネスコ 記憶遺産登錄’(축 유네스코 기억유산등록). 1500명이 사는 일본 히로시마현 구레시의 작은 섬 ‘시모카마가리’ 마을에 붙은 현수막 글귀다. 지난 10월 31일 조선 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되자 조용하던 이 마을에 생기가 돌았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통신사 유물로만 꾸려진 자료관 ‘고치소이치반칸’을 찾는 관광객이 급증해서다.
 
고치소이치반칸은 1711년 막부(幕府)의 장군이 “조선 통신사 접대를 어느 지역이 잘했느냐”는 질문에 쓰시마 번주(對馬藩主)가 “카마가리의 대접이 최고”(카마가리 고치소이치반칸)라고 대답한 데서 유래했다. 조선 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 동안 12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된 조선의 외교사절단을 말한다. 한양에서 일본 에도(도쿄의 옛 이름)까지 왕복 3000㎞가 넘는 거리를 오갔다. 기간은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걸렸다.
 
서울대·고려대·경북대 등 전국 17개 대학생 30명 등으로 구성된 국립해양박물관 탐방단과 함께 기자는 지난달 28일 부산항을 출발해 지난 2일까지 시모노세키~가미노세키~시모카마가리~도모노우라~효고~오사카~교토 등 7개 도시를 찾았다. 통신사가 오간 바닷길과 비슷한 경로로 일본 각지를 방문해 통신사의 흔적과 유물을 확인하며 한·일 우호 관계를 되살리자는 의미의 행사였다.
 
지난달 29일 일본 야마구치현 가미노세키 종합문화센터에서 ‘ 통신사선 상관 내항도’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국립해양박물관]

지난달 29일 일본 야마구치현 가미노세키 종합문화센터에서 ‘ 통신사선 상관 내항도’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국립해양박물관]

탐방단은 지난달 30일 고치소이치반칸에서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인 내조 오보에 비젠 접대선 행렬도’를 관람했다. 길이 8m, 폭 14.5㎝인 종이 두루마리에는 통신사 일행의 모습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통신사 접대 때 낸 요리를 재현한 모형과 통신사 행렬 인형, 10분의 1로 축소한 통신사선(船) 모형도 있었다. 이를 구경하던 일본의 초등생 가미가 기레오(12)군은 “조선에서 일본까지 1000㎞가 넘는 바닷길을 항해했다는 게 신기하다”며 “배를 만든 기술과 능력이 놀랍다”고 감탄했다.
 
시바무라 다카히로 난도 문화진흥재단 사무국장은 “일본에 남아있는 45점의 조선 통신사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며 “유네스코 등재를 계기로 일본 정부가 이곳을 널리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문 기간 일본 각 지역의 민간단체는 통신사 유물 등을 관광 상품화하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등재된 기록물은 총 111건 333점. 이 가운데 일본(48건 209점)이 한국(63건 124점)보다 더 많다.
 
예를 들어 경치가 좋은 히로시마 현 후쿠시마시 도모노우라는 마을 전체를 100년 전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도다가쯔요시 도모노우라 조선 통신사 연구회 대표는 “통신사선이 기항했던 항구와 숙소로 사용한 사찰, 접대했던 영빈관 등을 그대로 보존하고, 옛 모습대로 마을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에는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는 뜻의 ‘일동제일형승’(日東第一形勝)과 바닷물이 바로 앞에 보이는 누각이라는 뜻의 ‘대조루’(対潮楼)를 쓴 종이가 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대조루에 걸린 현판은 1711년 조선 통신사 종사관이었던 이방언(1675~?)이 쓴 글씨였다.
 
교토시 키타구의 고려미술관에 소장 중인 통신사 유물 20점 가운데 3점도 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말을 타고 기예를 부리는 그림과 통신사 행렬도, 통신사를 맞이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 등이다. 이들 유물은 재일교포 고(故)정조문 씨가 일본 골동품 가게를 돌아다니며 모았다. 통신사 유물의 유네스코 등재에 재일교포가 힘을 보탠 것이다.
 
정씨의 아들 희수(59)씨는 “아버지는 일본인이 갖고 있던 한국 유물을 되찾자는 생각에서 한 점 한 점씩 수집했다”며 “한·일관계가 나빠지면서 10년 전부터 사라진 통신사 관련 기록이 일본 역사교과서에 다시 실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생 탐방단은 지난 1일 일본 대학생 20명과 오사카 역사박물관에서 결연했다. 일본 방문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게 하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이시다 리코(20·간사이대 공학부 1년)는 “정치적 이유로 나빠진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며 “한국 대학생과 꾸준히 교류하면서 통신사의 역사적 의미를 알려 나가다 보면 한·일 관계가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왕은지(22·신라대 역사교육학과 3년)씨는 “다음에는 일본 대학생을 초대해 한국의 통신사 유물을 함께 둘러보고 싶다”며 “통신사가 평화의 사절단이었듯이 한·일 대학생이 두 나라의 선린우호 관계를 이어나가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일본 학자들도 공감했다. 한·일 대학생 교류행사에 참석한 조선 통신사 일본 측 연구위원장인 나카오 히로시는 “임진왜란 등 전쟁 이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통신사가 파견되면서 200년간 평화적으로 교류한 것은 역사적으로 놀랄만한 일”이라며 “한·일관계 개선에 젊은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생 탐방을 기획한 국립해양박물관은 옛 해양 문화의 현대적 재현이라는 주제로 ‘통신사 사행 1만리 사진전’을 오는 22일부터 2018년 4월 1일까지 박물관에서 개최한다. 통신사 의미를 되살리는 행사를 계속 열 계획이다.
 
손재학 국립해양박물관장은 “조선 통신사 파견으로 한·일 관계가 선린우호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며 “한·일 대학생 간 교류의 장이 마련된 만큼 통신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일 관계 개선에 모두 힘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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