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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연명의료 중단’ 시행됐지만 … 무연고자에겐 적용 안 된다

암이나 만성병으로 한 해 5만여 명이 병원에서 연명의료를 하다 숨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2012년)를 분석한 결과다. 이들은 숨지기 한 달 전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 등을 했다. 임종 단계에 접어들면 이런 행위를 해봤자 되돌릴 수 없다. 현대의학을 총동원하면 더 살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건 죽음 시기를 연장해 환자에게 고통을 안긴다.
 
그래서 20여 년 논쟁 끝에 지난해 2월 연명의료결정법을 만들었고 내년 2월 4일 정식으로 시행된다. 이에 앞서 지난달 23일부터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6일 현재 3611명이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향서를 작성했다. 5만여 명 중 상당수가 불필요한 고통을 받지 않고 웰다잉(well dying)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웰다잉에서 제외된 사람이 있다. 바로 행려환자나 독거노인 같은 무연고자들이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에는 이들이 연명의료를 중단할 근거 조항이 없다. 이들은 법이 시행된 후에도 여전히 연명의료로 내몰리게 됐다.
 
지난 5월 말 63세 노숙자가 한 국립대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위장관 출혈로 인한 쇼크였다. 심폐소생술 등의 응급처치를 한 뒤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열흘 정도 지나자 큰 고비는 지났다는 진단이 나왔다. 집중치료실에서 치료해도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돼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여전히 의식은 없었다. 그는 요양병원에서 열흘 정도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다가 쓸쓸히 숨졌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병원 측이 이 환자의 관할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아 가족을 수소문했으나 무연고자임이 밝혀졌다. 먼 조카뻘 친척이 있었지만 연락이 안 됐다. 과거에 치료받은 병력도 없었다. 그는 20일 정도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 등의 연명의료를 받았다.
 
가족은 있지만 사실상 무연고자인 경우도 있다. 기초수급자 남성(55)은 알코올중독이다. 중증 간경화가 악화해 올 2월 중순 응급실로 실려왔다. 거의 의식이 없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져 인공호흡기 치료를 했다. 병원 측이 주민센터에 문의했더니 자녀가 2명 있었다. 연락이 갔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환자는 5주 정도 중환자실에서 연명의료를 하다 숨졌다.
 
연명의료 중단은 본인이 결정하는 게 원칙이다.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라는 문서를 작성하면 된다. 의사를 표현할 수 없더라도 가족 2명이 “남편(아버지)이 평소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면 된다. 환자의 평소 뜻을 몰라도 가족 전원이 합의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연고자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무연고자 사망자는 1833명이다. 2012년 1021명에서 매년 증가한다. 최근 5년 7565명이다. 일부는 집에서 고독사한 상태로 뒤늦게 발견된다. 상당수는 병원에서 숨지고, 적지 않은 사람이 연명의료를 할 것으로 추정된다. 권지현(충남대병원 사회사업팀장) 의료사회복지사는 “최소한 한 달에 1건 이상 무연고자가 위독한 상태로 실려와서 인공호흡을 하는 연명의료를 하게 된다”고 말한다.
 
무연고자 연명의료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교수는 “무연고자도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도록 도와야 한다”며 “병원 윤리위원회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면 이게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종교계·법조계는 “제3자가 무연고자의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권리가 없다. 병원 윤리위에 맡기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맞선다.
 
2009년 5월 대법원이 연명의료 중단 허용 판결을 한 이후 사회적 논의 끝에 무연고자의 연명의료 중단을 담은 법률이 만들어졌다. 2015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연명의료결정법률안에는 ‘법정대리인이나 가족이 없는 환자는 병원윤리위원회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며 이 조항을 삭제했다.
 
최근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위원장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에서 논란이 재현됐다. 무연고자의 존엄사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복지부가 쟁점 안건으로 위원회에 올려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중재안이 나온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병원윤리위원회만이 결정하면 남용할지 모른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복지부 산하 국가연명의료관리기관(국가생명윤리연구원)이 추가로 확인하는 절차를 두면 좋을 듯하다”며 “무연고자도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권지현 팀장은 “최근에는 가족이 있어도 관계가 단절된 ‘현대판 무연고자’가 증가한다”며 “이들이 응급실에 실려왔을 때 연명의료 관련 의사를 확인하고 의식 불명이면 가족을 찾아서 그들의 뜻을 확인하는 역할을 사회복지사가 하는데 이런 절차를 연명의료결정법 하위 법령에 담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명의료 중단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해도 회복하지 못하며, 급속도로 악화해 사망이 임박한 상태의 임종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 네 가지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담당 의사와 전문의 1명이 판정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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