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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군의 은인 고 마이클 루시 대령 흉상 제막

해군사관학교 학술정보원에서 세워진 마이클 루시 대령의 흉상. 그는 6?25전쟁 중 한국 해군ㆍ해병대 발전에 큰업적을 남겼다. [사진 해군]

해군사관학교 학술정보원에서 세워진 마이클 루시 대령의 흉상. 그는 6?25전쟁 중 한국 해군ㆍ해병대 발전에 큰업적을 남겼다. [사진 해군]

해군은 7일 경남 창원시 해군사관학교 학술정보원에서 거 마이클 루시 미 해군 예비역 대령(1912~98)의 흉상 제막식을 열었다. 정안호 해군사관학교장 주관으로 열린 행사에 브래드 쿠퍼 주한미해군사령관을 비롯한 한ㆍ미 양국 해군장병 100여명이 참석했다. 
 
루시 대령은 6ㆍ25전쟁 때 유엔군 예하 한국 해군으로 구성된 한국해군사령관(CTG 95.7) 겸 한국해군고문단장을 맡으며 한국 해군을 도왔다.   
 
제복을 입은 마이클 루시 대령. [사진 해군]

제복을 입은 마이클 루시 대령. [사진 해군]

 
그는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한 뒤 2차세계대전 때 미 해군의 최연소 구축함 함장을 맡으며 주요 전투에서 전공을 쌓았다. 1950년 7월 9일 중위 1명, 사병 5명과 함께 항공편으로 부산에 도착한 루시 대령(도착 당시 계급은 중령)은 1952년 5월 31일까지 한국해군사령관과 한국해군고문단장을 맡았다. 
 
 루시 대령은 전쟁 중 한국 해군이 북한군에 대한 정보 수집과 연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부대라는 점을 인식했다. 그래서 한국 해군을 유엔군 예하의 단일한 부대로 조직했다. 또 한국 해군과 해병대의 군수지원을 도왔다. 전쟁 중 한국 해군이 호위함ㆍ어뢰정ㆍ구잠함ㆍ구잠정 등의 전투함과 장비를 미국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받도록 주선했다. 제대로 된 전투함이 많지 않은 한국 해군으로선 큰 보탬이 된 전력들이었다.
 
마이클 루시 대령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태극무공훈장을 받고 있는 모습. 이때 그는 중령이었으며 51년 9월 대령으로 진급했다. [사진 해군]

마이클 루시 대령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태극무공훈장을 받고 있는 모습. 이때 그는 중령이었으며 51년 9월 대령으로 진급했다. [사진 해군]

 
특히 1950년 8월 포항 해상철수 작전은 그의 공로 중 손꼽히는 일이다. 당시 국군 3사단은 북한군에게 포위돼 해상으로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루시 대령은 2차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 정부가 민간에 양도한 상륙함(LST) 4척을 어렵게 모아 해상철수작전에 투입했다. 당시 국군 3사단에게 함포지원을 담당한 미국 해군 제3순양함분대는 상륙함 한 척도 없는 상황을 상정해 뗏목에 한국군 병력을 태운 뒤 다시 전투함으로 옮기는 철수 계획을 수립했다. 루시 대령의 모은 상륙함 4척은 8월 16일 포항 독석리 해안에 도착해 국군 3사단 병력 9000여명, 경찰 1200여명, 민간인 노무자 1000여명, 차량 100여대를 무사히 철수시켰다.
 
마이클 루시 대령이 지휘한 엑스레이작전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인천상륙작전' 포스터

마이클 루시 대령이 지휘한 엑스레이작전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인천상륙작전' 포스터

 
또 루시 대령은 인천 상륙작전 직전 한국 해군 첩보부대가 적진이었던 인천에 침투해 북한군 배치 현황, 보급 현황, 기뢰 매설 상황 등을 탐지하는 엑스레이 작전을 지휘했다. 엑스레이 작전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모티브가 됐다. 한국 해군사관생도들을 연락장교 직책으로 미국 해군의 전투함에 태워 함정운용술ㆍ전술 등을 배우는 기회를 마련했다. 전쟁 고아와 유가족, 부상 장병을 위해 구호품ㆍ생필품도 지원했다.  
 
 해군 초대 참모총장인 손원일 제독(제일 왼쪽) 과 마이클 루시 대령(왼쪽에서 둘째)이 훈련을 참관하는 모습. [사진 해군]

해군 초대 참모총장인 손원일 제독(제일 왼쪽) 과 마이클 루시 대령(왼쪽에서 둘째)이 훈련을 참관하는 모습. [사진 해군]

 
이런 공로로 그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태극무공훈장과 공로훈장을, 미국 정부로부터도 금성훈장 등 다수의 훈장을 받았다. 1952년 5월 31일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난 루시 대령은 1960년 전역했다. 미국 해군은 그에게 장성으로 명예진급한 뒤 전역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실무에서 일할 수 없다면 진급하지 않겠다”며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전역 이후에는 고향에서 공직에 종사했고 미국 적십자회장도 지냈다.
 
해군은 2012년부터 6ㆍ25전쟁 중 대한민국 수호와 해군 발전에 기여한 알레이 버크 제독,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등의 흉상을 세웠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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