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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국의 관세폭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지난달 하순 미국 무역위원회(USITC)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가정용 대형 세탁기에 50%의 관세할당(TRQ)을 포함하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행정부에 권고했다. 이 권고안에 명시된 관세할당이란 수입품에 부과되는 관세와 일정 수준의 수입량을 규제하는 쿼터(quota)가 복합된 무역정책이다. 즉 일정한 쿼터 물량을 설정해 놓고 그보다 적게 수입될 경우 관세를 부과하지 않거나 낮은 관세(in-quota rate)를 매기고, 쿼터보다 수입 물량이 많으면 고율(out-of-quota rate)을 부과하는 무역정책이다.
 
이번 권고안에는 세탁기 120만 대를 쿼터로 잡고 이 이상이면 50%의 관세를 부과하게 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세탁기 부품에 대해서도 5만 개의 쿼터를 설정했다. 이 권고안이 채택될 경우 쿼터 초과분에 대해서는 50%의 관세가 부과돼 수입억제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삼성·LG 등 우리 세탁기 제조업체의 타격이 불가피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강경한 조치는 지난 5월 미국 세탁기 제조업체인 월풀이 글로벌 세이프가드 청원을 내면서 비롯됐다. 월풀의 주장은 삼성·LG가 반덤핑 조치를 피하기 위해 생산기지를 베트남·태국 등 여러 나라로 옮긴 뒤 이들을 이용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통상마찰에는 세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먼저 미국이 반덤핑이 아니라 글로벌 세이프가드 조치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세탁기만이 아니라 한국의 글로벌화된 생산기지에서 생산된 제품 전체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다.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세탁기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세이프가드 조치지만 사실상 그 타깃은 한국 세탁기 제조업체다.
 
시론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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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세이프가드로서 추가적인 관세 부과나 일시적인 수입금지가 아니라 관세할당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미국 무역위원회 내부에서 쿼터 이내 물량에 대한 관세는 없는 거로 하자는 의견과 20%를 부과하자는 주장으로 양분됐었다고 한다. 다만 쿼터 설정으로 어느 정도 수준의 수입은 허용하겠다는 방침은 2002년 미국의 철강 세이프가드 채택 이후 일어났던 심각한 통상마찰을 이번에는 피하는 동시에 미국 소비자의 이익도 고려한 결과로 판단된다.
 
셋째, 세탁기뿐만 아니라 부품까지 포함됐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세탁기 부품에 세이프가드가 부과되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에 건설 중인 국내 기업의 미국 현지 공장 역시 미국산 부품을 더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국내 협력기업들의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번 권고안의 채택 여부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2월 초까지 결정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그 전에 현지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주의 고위 인사 및 정치인들과 협력해 미 행정부가 부정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뛰어야 한다. 만약 세이프가드 조치가 끝내 채택된다면 2002년 미국 철강 세이프가드 때와 같이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 나라들과 힘을 합쳐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야 한다. 과거 부시 행정부의 철강 세이프가드 조치에 우리는 EU·일본·중국·캐나다·브라질·뉴질랜드 등과 협력해 WTO에 제소한 끝에 패널 및 상소기구에서 모두 승소했다. 따라서 국제공조를 바탕으로 WTO에 제소한 뒤 미국 생산업체의 피해 여부와 수입증가 및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에 초점을 두고 우리 입장을 적극적으로 나타내야 할 것이다.
 
이때 우려되는 점은 다자무역체제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WTO의 다자무역체제가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규제하는 데 효율적이지 못했으며 오히려 분쟁해결기구 결정에 따라 미국의 통상정책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믿고 있다. 앞으로도 트럼프 행정부는 세탁기뿐만 아니라 태양전지·철강·알루미늄 등에 대해 일방적인 통상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WTO의 분쟁해결기구가 미국에 불리한 결정을 내릴 경우 이에 불복하는 실험을 단행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WTO 제소를 통상마찰 해결 수단의 최후 보루로 믿고 있는 우리로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 된다.
 
이제부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다자무역체제가 규범 중심으로 운영되지 않고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로 돌아갈 경우 어떻게 통상마찰을 해결할 것인가이다. 정부가 하루빨리 장기적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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