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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크레타 사람과 탈원전

문희철 산업부 기자

문희철 산업부 기자

철학자 에피메니데스는 기원전 6세기 ‘크레티카’라는 시(詩)를 썼다. 이 시에는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이 있다. 에피메니데스 자신은 크레타 사람이다. 그가 크레타 사람이라면 그는 거짓말쟁이다. 본인이 거짓말쟁이라면 본인의 말도 거짓말인데, 그럼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에피메니데스가 크레타 사람이면서 동시에 크레타 사람이 아닐 수는 없다.
 
정부는 지난 10월 중장기 에너지 정책 목표인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내놨다. 로드맵의 2가지 뼈대는 원자력 발전 감축과 친환경 에너지 확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전환(탈원전)’으로 표기하면서, 2가지 사실을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판단한다. 또 정부는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2060년까지 원자력 발전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처럼,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과 원자력 발전을 감축하는 것은 모순이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면 에너지 효율을 높일 기술을 개발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은 오직 원자력 발전만이 벌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국내 전체 에너지 생산량 중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5%에도 못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화석연료 발전량을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려면 원전은 필수다. 또 친환경 에너지로 구분한 일부 에너지원은 사실상 ‘친환경’적이지 않다. 예컨대 정부가 신·재생에너지로 분류한 발전원의 75%는 폐기물·폐나무 등을 태워서 발전하는 바이오매스다.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을 배출하는 액화천연가스(LNG)도 친환경 에너지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또 석탄보다 발전 단가가 40%가량 비싸면서 100% 수입에 의존한다. 당장 친환경 에너지 발전량을 높이는 것도 무리가 있다. 한국은 일조량이 좋지 않아 태양광 발전에 한계가 있다. 또 바람이 세차지 않아 해상풍력발전도 제한적이다.
 
결국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려면, 원자력발전은 어쩔 수 없는 대안이다. 가격·환경오염·설비량 등 종합적인 관점에서 보면 에너지 전환의 연결고리는 원전뿐이다. 최근 방한한 스티븐 추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탈원전 정책이 환경·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학자라면 모두 아는 상식”이라고 했다. 상식을 외면하는 정부야말로 거짓말쟁이다.
 
문희철 산업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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