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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철비' 정우성을 움직이는 건 사람이다

 
 
‘강철비’ 정우성 / 사진=전소윤(STUDIO 706)

‘강철비’ 정우성 / 사진=전소윤(STUDIO 706)

[매거진M] 악과 악 사이에서 제 살길을 찾아 발버둥 치는 비리 형사(‘아수라’), “내가 곧 역사야!”라고 소리치는 무소불위의 정치 검사 (‘더 킹’(1월 18일 개봉, 한재림 감독))를 지나
‘강철비’의 북한 특수요원 엄철우를 보며 비로소 다시 깨닫는다. 정우성(44)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밑천 삼아 연기하는 배우라는 걸.
 



━‘강철비’는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핵전쟁의 위기가 닥치는 상황을 가정한다. 사드 배치와 북미 갈등으로 한바탕 몸살을 앓은 2017년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를 정면 돌파하는 셈이다.
“통일과 민족,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화두 아닌가. 열강들의 이권 다툼과, 분단의 현실을 권력 유지에 이용하려는 세력들은 자꾸 그 고민을 복잡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강철비’는 정치적으로 좌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분단의 근본적인 문제를 돌이킨다. 남과 북은 본래 한 형제였는데, 어쩔 수 없이 나뉘었다는 점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북관계에서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다. 배우로서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
“용기는 필요 없다. 배우로서 주관만 있으면 된다. 배우는 영화로 말하는 사람이니까. 어떤 영화를 놓고 한쪽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좌파 영화’나 ‘국뽕 영화’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영화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강철비’ 정우성 / 사진=전소윤(STUDIO 706)

‘강철비’ 정우성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배우로서의 주관이라면.
“쉽게 가는 건 싫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새로운 도전이 재미있다. 빤한 거, 누가 해도 되는 작품이나 역할에는 매력을 못 느낀다.”
 
━북한사람을 연기하는 건 처음이다.
“‘백 선생님’이라고, 배우들한테 북한 사투리를 가르쳐 주시는 탈북자분이 있다. 그 분에게 사투리를 배우면서, 유럽이나 미국 감독들이 북한에 가서 찍은 다큐멘터리를 많이 찾아 봤다. 가만히 있다가도 체제나 이념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돌변해서 주체사상을 역설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엄철우는 냉철한 특수 요원이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북한의 특수 요원이라고 하면 액션영화의 캐릭터로 많이 다루지 않았나. 엄철우는 좀 다르다. ‘강철비’는 시작부터 엄철우가 궁지에 처한 모습을 보여 주며 시작한다. 정신은 주체사상으로 무장했지만, 먹고사는 현실은 너무 괴롭다. 그렇다면 그에게 주체사상이란 무엇인가. 그 공허. 그것이 지금 북한사람들이 처한 현실 아닐까.”
 
━극 초반, 엄철우가 아내(박선영)와 딸(엄인영)에게 고기를 구워 먹이고, 여느 아버지처럼 딸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참 애틋하다.
“엄철우의 모든 걸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북한 사람들도 집에서는 가족과 소소한 일상을 함께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 아니겠나. 그 뒤에 펼쳐지는 모든 상황에서 철우는 가족에게 돌아가야겠다는 생각, 그 희망으로 버틴다.”
 
‘강철비’ 정우성 / 사진=전소윤(STUDIO 706)

‘강철비’ 정우성 / 사진=전소윤(STUDIO 706)

━이 영화에서 엄철우의 액션은 죽기 살기, 그 처절함이다. 날렵하고 멋진 액션은, 또 다른 북한 요원으로 나오는 조우진의 몫이던데.
“그게 이 영화와 맞는 거니까. 우진이가 이 영화에서 액션 연기를 처음 했다. 그 모든 과정을 이겨낸 만큼 후회하지 않을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촬영할 때 고생을 많이 했거든. 여기서 생색 좀 내겠다(웃음). 나도 그 고생을 몸으로 받아 주느라 힘들었다(웃음). 춤도 누구와 추느냐에 따라 다른 것처럼, 액션도 누구와 합을 맞추느냐에 따라 다르거든.”
 
━북한 1호와 함께 한국으로 넘어온 엄철우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경계한다. 그런데도 한국의 곽철우와 사이가 깊어지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인간적이고 정 많은 사람인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수라’의 한도경, ‘더 킹’의 한강식 등 최근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였지만, ‘강철비’의 엄철우를 보며, 정우성의 연기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연민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맞다. 이 역을 제안받고 양우석 감독에게 이유를 물었을 때, 그렇게 말하더라. ‘엄철우에 따뜻함을 불어넣고 싶다’고. 나란 사람이 그런 감정을 좋아한다. 그래서 엄철우 같은 인물을 연기할 때는 그 따뜻함이 너무 지나치게 표현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히려 거리를 두기도 한다.”
 
━사람을 아끼고 가련하게 생각하는 그 마음은 어디서 온 걸까.
“글쎄(웃음), 물려받은 거 아닐까. 우리 어머니가 사랑이 많은 분이다. 다른 사람한테 민폐 끼치는 거 싫어하고, 자식한테도 예의를 지키려 하신다. 지금도 자식한테 뭘 받으면 신세 지는 거라 생각해서 꼭 ‘미안하다’고 하시고.”
 
 ‘강철비’ 정우성 / 사진=전소윤(STUDIO 706)

‘강철비’ 정우성 / 사진=전소윤(STUDIO 706)

━청춘스타 출신으로 따뜻함이 연기의 바탕인 정우성과, 연극계 출신으로 감정을 냉정하게 조절하는 연기를 하는 곽도원. 서로 다른 두 배우가 빚는 인간애의 드라마가 아주 정겹던데.
“이 영화의 미덕이 거기 있는 것 같다. 북한 특수 요원인 엄철우와 한국의 외교안보수석인 곽철우는 ‘적’으로 만나지만,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대한다. 전쟁이 터지기 직전의 상황, 각자의 임무와 체제에서 느끼는 긴장이 없을 수 없다. 북쪽 철우가 자신의 입장을 말하면 남쪽 철우가 그 긴장을 슬쩍 풀어 주고, 그러면 북쪽 철우가 거기에 살짝 말려 들어가는 절묘한 호흡이다. 의외의 ‘케미’라고 할까. 남쪽 철우가 북쪽 철우에게 ‘살 좀 쪄라’ 한마디 하는 장면이 있다. 편집본을 보는데 그 말에서 진심이 느껴져 가슴이 아프더라. 동료로서 또 인간으로서 곽도원이 정우성에게 지닌 애정이 자연스럽게 배어난 것 같다. ‘아수라’ 촬영 마치고, ‘도원이랑 또 한 편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20년 넘게 한국영화계 ‘주인공’의 자리를 지켜 왔다. 최근 들어 연기 안팎으로 그 누구보다 자신만의 생각과 자신감을 갖춘 배우로 무르익는 느낌이다.
“영화 촬영장은 내게 모든 걸 준 세상이다. 그 전까지 외톨이였던 내가 촬영장에서는 주인공으로 대접받았으니까. 20년 전만 해도 한국영화 촬영장은 정말 열악했다. 그곳에서 스태프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촬영장의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그때는 열정적인 감독들이 많았다. 그들 곁에서 ‘어떤 리더가 돼야 할까’ 배우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곳에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좋고 감사하다. 
배우로서 인기와 명성을 얻다 보면, 개인으로 머물 건지, 내 명성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때가 온다. 그 고민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영화 촬영장에서 내가 느끼고 받은 것을 어떻게 베풀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조금씩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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