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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소설같은 대구 동화사 금괴, 복 비는 명소로

 
지난 1일 오전 대구시 동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6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대웅전 출입문을 돌아 뒤뜰로 향했다. 뒤뜰이지만 1.8m 높이의 석축과 배수로가 전부인 곳이다. 이 남성은 대웅전 뒷벽을 양손으로 쓰다듬더니 콘크리트로 된 바닥을 손으로 만졌다. 그러곤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합장했다. 5분여가 지나자 모녀지간으로 보이는 여성 2명이 조금 전 남성이 한 것처럼 대웅전 뒤뜰로 와 합장하고 복을 빌고 갔다. 불교 관련 그림을 그리는 대구 한 여류작가는 "대웅전 부처님 불상이 등을 기대고 있는 곳이 대웅전 뒤뜰"이라며 "풍수지리학적으로 기운이 좋은 곳, 바닥에 금괴가 묻혀 있다는 말이 있는 곳. 복을 비는 명소로 아는 사람들 사이엔 소문이 나 있다"고 전했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뒤뜰. 특별한 시설물은 없다. 김윤호 기자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뒤뜰. 특별한 시설물은 없다. 김윤호 기자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뒤뜰. 김윤호 기자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뒤뜰. 김윤호 기자

기운이 좋은 곳, 복 빌고 가는 명소로 동화사 대웅전 뒤뜰이 본격적으로 소문나기 시작한 건 금괴 이야기가 그 출발점이라고 한다.  
 
대웅전 뒤뜰은 금괴 40kg이 묻혀있다고 알려진 곳이다. 현재도 이 뒤뜰 콘크리트 바닥 바로 1.2m 아래에 금괴가 숨겨져 있을 것이란 '소문'이 여전하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김윤호 기자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김윤호 기자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 김윤호 기자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 김윤호 기자

동화사 금괴 이야기의 시작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 함경도에서 탈북한 40대 김씨가 남한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며 벌인 일이 그 시작이다. 2008년 12월 한국에 온 그는 탈북자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은 뒤 서울에 정착했다. 그는 이곳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2011년 초부터 대구에서 '보물찾기'에 나섰다고 한다. 보물은 20억원 어치가 넘는 금괴(40㎏)로 동화사 대웅전 뒤뜰에 묻혀 있다는 것이 당시 그의 주장이었다. 김씨는 북한에서 들은 내용을 근거로 금괴 찾기에 나섰다고 한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주변의 모습. 김윤호 기자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주변의 모습. 김윤호 기자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주변의 모습. 김윤호 기자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주변의 모습. 김윤호 기자

당시 그의 주장은 이랬다. 함경도에 살던 그는 고향이 대구 인근인 70대 이씨를 만나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둘 사이는 양부자 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씨가 그에게 금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이씨의 부모는 1950년 6·25전쟁이 나자 고향 대구로 피란을 갔다. 그곳에서 생활하던 중 북한군이 남쪽으로 밀고 내려왔다. 이씨 가족은 다시 피란길에 올랐다고 한다. 생활이 넉넉했던 이씨 부모는 이때 집 등 재산을 처분해 금을 사들인 뒤 동화사에 묻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찾으러 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이씨 가족은 북한으로 가게 돼 그곳에 정착했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주변의 모습. 김윤호 기자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주변의 모습. 김윤호 기자

대웅전은 문화재(보물 제1563호)다. 발굴하려면 문화재청에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보물찾기에 나선 김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당시 확인 작업에 나섰다. 금속탐지기 조사에서 뒤뜰 지하 1.2m에 금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땅속에 전선·통신선 등이 있긴 하지만 이와 다른 물체가 일부 감지됐다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당시 문화재청은 조건부 발굴 허가를 냈다. 금괴의 진실이 세상에 드러날 순간이었다. 하지만 금괴가 나올 경우 처리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면서 실제 발굴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동화사는 금괴를 발굴할 경우 복구 방법과 매장물 발견 시 처리방안을 김씨와 협의할 때까지 굴착작업을 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의견서를 냈다. 확실치 않은 정보로 보물인 대웅전을 훼손할 수 없다고도 했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주변의 모습. 김윤호 기자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주변의 모습. 김윤호 기자

소유권을 둘러싸고 당시 한국은행과도 엮였다. 한국은행은 '금괴 발굴 때 참관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문화재청과 동화사에 보냈다. 동화사에 매장돼 있는 금괴가 6·25전쟁 때 한국은행에서 도난당한 것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JTBC 탐사코드J, 대구 동화사 금괴의 비밀. [중앙포토]

JTBC 탐사코드J, 대구 동화사 금괴의 비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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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6·25전쟁 발발 이틀 뒤인 1950년 6월 27일 서울 본점에서 순금 1070㎏과 은 2513㎏을 우리 군의 트럭 1대에 싣고 경남 진해 해군통제부로 갔다. 하지만 당시 급박한 상황 탓에 순금 260㎏과 은 1만5970㎏은 옮기지 못하고 그대로 둬 28일 한국은행이 인민군에 접수되면서 약탈당했다고 한다. 동화사 뒤뜰에 있다는 금괴가 이때 도난당한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금괴가 한국은행의 것으로 확인되면 문제는 복잡해지는 상황. 이렇게 발굴 허가, 금괴 소유권 갈등 등으로 5년이 지난 현재도 삽 한번 못 뜬 상태로 멈춰있다. 도굴이나 훼손 등을 우려해 여러 대의 폐쇄회로TV(CCTV)만이 금괴가 있다는 땅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금괴. [중앙포토]

금괴. [중앙포토]

동화사 관계자는 "탈북자 김씨가 2012년 이후 연락이 없다. 다시 진실을 가릴 필요가 없는 단순 금괴 해프닝, 뜬 소문 정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금괴가 뭍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금괴 이야기 이후 지금까지 동화사 대웅전 뒤뜰은 기운이 좋은 곳, 운이 좋은 곳, 아는 사람만 아는 복을 빌고 가는 명소가 됐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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